미국 뉴욕주의원 된 간호사, “사회 돌보는 사회주의자”

[지금, 여성사회주의자] 파라 수프란트 포레스트,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주의회 최전선으로”

“비좁은 원룸에서 남편과 아이 둘이랑 부대끼며 사는 이주민 여성이 있었죠. 그는 당뇨병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단속에 걸릴까 봐 혈당을 낮추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어요. 잡혀가기라도 하면 인슐린을 맞을 수 없으니까요. 인슐린은 냉장 보관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줘야 하죠. 그런데 이따금 전기가 나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어요. 월스트리트 같은 곳은 모르는 일이죠. 워킹푸어나 강제퇴거, 영리병원과 인종차별…. 그가 맞닥트린 문제만 세더라도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죠. 그 여성과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한 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하나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사회주의자가 됐죠. 간호사여서 더 그랬을까요. 사회가 건강해지려면 사회주의가 불가피하다고 봐요.”

[출처: www.facebook.com/Phara4Assembly]

간호사 출신의 31세 사회주의자 파라 수프란트 포레스트(Phara Souffrant Forrest). 그는 지난 6월 치러진 민주당 뉴욕주 하원의원(제57선거구) 예비선거에서 현직 월터 모슬리 후보를 10.4%p 차로 따돌리고 승리했다. 민주당이 우세한 선거구여서 주의원에 당선한 것과 다름없는 결과였다. 포레스트는 아이티 이민가정에서 태어나 간호사로 성장했고 세입자노조와 민주적사회주의자(DSA)에서 활동한 아웃사이더다. 그런 그가 승리하자 뉴욕의 빈민과 계약직 노동자, 세입자들은 제 일처럼 기뻐했다. 사회주의자가 뉴욕주의회에서 활동한 지 100여 년 만에 성취한 승리였다는 점에서 언론의 관심도 컸다. 더구나 그는 동료 사회주의자 4명과 함께 동반 승리해 더 많은 이목이 쏠렸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현직 간호사가 주의회에 진출해 사회적 반향이 컸다.

미국 사회는 포레스트의 승리 전부터 이미 간호사들의 집단적인 행동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환자의 건강권을 지키지 못하는 미국 체제를 가장 가까이서 대면한 이들이 바로 간호사였기 때문이다.

사실 사망자만 20만 명 이상을 낸 코로나19는 미국 사회 의료 불평등의 기록을 매일 경신해가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은 코로나19에 더 취약했고, 높은 의료비 때문에 감염이 됐어도 치료를 받기 어려웠다. 경기 악화로 가장 먼저 피해를 본 이들도 가난한 계층이었다. 유색인종, 한부모, 워킹푸어, 실업자, 홈리스 등 이름만 달랐지 모두 생계가 빠듯한 노동자계급이었다.

코로나19 최전선에서 주의회 최전선으로

그런 미국 사회는 코로나19의 최전선에서 일한 의료노동자도 소홀히 했다. 지난 9월 3일 국제앰네스티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최소 7천 명 이상의 의료노동자들이 숨졌고 미국에선 1077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간호협회(ICN)에 따르면, 6월 기준 간호사만 6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러한 의료노동자의 사망은 의료계 내 계급·계층에 따라서도 엇갈렸다. 공공의료 저널 〈랜싯〉에 7월 31일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보건의료 종사자의 감염률은 일반인보다 3배 이상 높았는데, 흑인, 아시아 등 소수인종 의료진의 감염률은 5배까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노동자와의 시위 장면 [출처: www.facebook.com/Phara4Assembly]

이 같은 상황에서 의료노동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의료 노동자 충원과 개인보호장비 지원을 요구하며 싸웠다. 8월 31일 위기감시기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선 코로나19와 관련해 5월 24일부터 약 3개월간 전국 500개 이상의 지역에서 약 1천 건의 시위가 발생했는데, 60건 이상을 보건노동자가 주도했을 만큼 적지 않은 시위를 벌였다. 대표적으로 1월 28일, 시애틀에 위치한 스웨디쉬 병원에선 병원 역사상 처음으로 간호사를 포함해 모두 8천 명의 노동자가 파업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테네시, 캘리포니아, 일리노이주 등에서 간호사들의 파업과 시위가 계속됐다.

포레스트도 이러한 의료노동자들과 함께 여러 시위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는 시위에 참가하면서도 선거를 통한 정치세력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미국 의료 현실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정치인이 부재한 결과라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주의회 선거를 앞두고 “너무 오랫동안 노동자 계급은 의회와 단절돼 있었다. 우리는 그 무지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이제 코로나19 전선에서 주 정부의 최전선에 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바퀴벌레와 쥐, 경찰이 출몰하는 아파트

포레스트가 사회주의자가 된 데에는 그가 자라난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 미국의 다른 밀레니얼 세대의 많은 청년들처럼 버니 샌더스의 선거운동에도 영향을 받았다.

그는 노동자계급 다수가 사는 뉴욕시 크라운 하이츠에서 태어났고, 지금 그가 사는 아파트도 그 지역에 있다. 그의 부모나 이웃 모두 노동자계급이다. 포레스트의 엄마는 가정 건강관리사이고, 아빠는 제빵사로 현재는 퇴직했다. 새 아빠는 택시드라이버이다. 그런 포레스트는 어려서부터 불균형한 권력 관계에 익숙했다. 크라운 하이츠에서 힘 있는 사장과 집주인, 정치인들이 유색인종과 택시운전사, 재단사, 그리고 그의 어머니로부터 어떻게 돈과 힘을 빼앗는지 ‘잘’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 속에서 포레스트는 간호사가 되기 전부터 세입자 활동에 참가했다. 가난한 동네의 낡디 낡은 아파트 소유주는 집세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에게 가차 없었고, 한편에선 바퀴벌레와 쥐, 경찰이 들락거리며 이들을 괴롭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포레스트는 유색인종과 여성의 주거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세입자 권리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6살 때 이미 이웃 세입자의 아이가 부실공사 탓에 납에 중독되자 집주인에게 이 책임을 묻기 위해 싸웠을 만큼 일찍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포레스트가 출마를 결심한 것도 세입자 운동을 하다가 겪은 일 때문이었다. 바로 이번에 그가 물리친 월터 모슬리에게 맞섰다가 쇠고랑을 찾던 일이 그 계기였다. 그는 지난해 6월 ‘모두를 위한 주택 정의(House Justice for All)’ 캠페인에 참여하며 주의원인 모슬리 집무실 앞에서 임대법 개혁을 요구하는 집회를 벌이다 현장에서 60명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연행됐다. 포레스트는 당시 시위대가 연행되던 때 모슬리를 포함해 대다수 의원이 방관만 했던 것을 눈으로 보게 됐다. 그리곤 구치소에서 나와 버스로 귀가하는 도중 “누군가는 일어서야 한다”며 “아무도 없다면 나라도 나설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하고 출마를 결심했다.


포레스트가 출마를 결심하자, 400여 명이 자원봉사자가 되겠다고 잇따라 등록했다. 그리고 지난 3월 초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대면 선거 운동을 중단하기 전까지 선거구에 위치한 2만1,000개 가구의 문을 두드렸다. 대면 선거운동이 중단되자 지역 네트워크나 광고의 힘을 발휘할 수 없는 포레스트는 걱정을 하면서도 다시 꿋꿋이 선거운동을 해나갔다. 자원봉사자들은 전화통에 불을 내듯 눌러대기 시작했고 매일 수백 통의 우편물도 발송했다. 선거 후원금도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10만 달러(약 1억2천만 원) 이상을 모금했다. 상대편 후보와는 다르게, 부동산 기업을 포함해 기업 후원금은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는데도 적지 않은 금액을 모았다.

포레스트가 나서자 여러 여성 정치인과 단체들이 그의 출마를 환영하며 적극 지지했다. 뉴욕주의회는 부유한 기득권층이 장악하고 가난한 백인, 여성과 유색인종 노동자들의 삶을 도외시 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포레스트와 같은 유색인종 여성노동자는 입후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결국 미국 연방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와 뉴욕주 하원의원 줄리아 살라자르, 배우 신시아 닉슨이나 페미니스트 집단 ‘진보를위한유색여성들’ 등 페미니스트와 여성단체들의 지지가 이어졌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 기득권층과 동맹을 맺었던 간호사노조 뉴욕주간호사연합(NYSNA)으로부턴 외면당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뉴욕주 민주당 기득권층이 하나가 돼 후원한 현직 모슬리를 10%p 이상의 큰 차로 꺾고 승리했다.

뉴욕은 오랫동안 민주당 기득권층이 지배했다. 선출직 공직자인데도 누가 될 것인지 미리 정한 것 마냥 민주당 기득권층은 모두 선거 전에 이미 당선할 후보를 알고 있었다. 이제 포레스트는 노동자계급의 뉴욕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뉴욕주에서 ‘모두를 위한 공공의료보험’과 그린 뉴딜, 노동권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가 지금 그가 매일 고민하고 있는 일들이다. 특히 노동자계급이 뉴욕 의료제도를 누릴 수 있도록, 또 의료노동자의 노동권이 향상될 수 있도록 공적 기능을 어떻게 강화할지 노조와 여성조직, 세입자와 이주민 단체와 머리를 맞대고 골몰하고 있다. 그에게 민주적 사회주의는 “우리 전체 사회의 권력이 노동자 계급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근본적인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의 선거 구호처럼 ‘노동자계급 뉴요커를 위해 싸우는 간호사’로서 그가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어떻게 일굴지 지켜볼 일이다.

참조
https://pharaforassembly.com/
https://www.teenvogue.com/story/phara-souffrant-office-running-assembly-nyc-coronavirus
https://indypendent.org/2020/06/as-pandemic-continues-brooklyn-voters-have-a-chance-to-put-a-socialist-nurse-in-power/
https://www.labornotes.org/2020/08/viewpoint-pro-labor-candidates-are-upending-new-york-politics-where-are-unions

미국 의료불평등 더 심화한 코로나19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권은 더욱 곤두박질 쳤다. 더욱 심화한 미국 사회의 의료불평등은 코로나바이러스 진단부터 시작해 죽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월 18일 미국 연방의회는 가족우선코로나바이러스대처법을 제정하고 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무료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허점이 많아 진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응급실비 같은 조항이 붙으면 진료비가 훌쩍 뛰어올랐기 때문이었다. 미국 의료전문 카이저패밀리재단이 최근 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응급치료까지 받은 사람은 1명당 2만 달러(약 2374만 원), 일반 치료를 받은 사람은 1인당 1,300달러(약 1543만 원)를 써야 했다. 물론 보험이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코로나19로 실직한 사람이 수두룩해 현실은 암울하기만 한 상황이다.

미국 의료보험은 기본적으로 직장의료보험이어서 일자리를 잃으면 의료보험 혜택까지 받지 못한다. 그런데 경기가 악화하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터지면서 대량해고가 늘어났고 결국 실직자가 대거 증가해 무보험자가 속출했다. 미국 보건단체 패밀리즈유에스에이(Families USA)가 지난 7월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감염이 폭증한 지난 3월 이후 미국 전국에서 3개월 동안 약 540만 명의 노동자가 건강보험을 잃었다. 이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손실율이며 연간 평균 증가율보다 39%p 많은 수치였다. 또 보험이 없어 치료를 연기하거나 거르는 사람의 수가 7%에서 28%로 4배 증가했다. 이외에도 코로나19 증상이 있더라도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전체 14%였지만, 저소득층과 청소년, 소수자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22%로 늘어났다.

더구나 미국 노동계층 중 상당수는 코로나19 전 이미 막대한 의료부채를 지고 있던 상태여서 부채 규모는 더욱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CNBC〉 2월 13일자 보도에 따르면, 코로나19 피해가 확산하기 전에 이미 미국 노동자의 32%가 의료 부채를 가지고 있었으며 절반 이상이 디폴트 상태에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죽음도 소득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지난 6월 25일 미국 의료기관 유클라 헬스(UCLA health)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소득 불평등도가 가장 높은 주들은 낮은 주들에 비해 코로나19 관련 사망자 수가 더 많았다. 소득 불평등이 가장 높은 뉴욕주에서는 10만 명당 51.7명이 사망한 반면, 소득 불평등이 가장 낮은 유타주의 코로나19 관련 사망률은 10만 명당 0.41명에 그쳐 약 125배의 차이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