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위, 잇단 택배 과로사에 기껏…

[1단 기사로 본 세상]“주 5일 근무제 도입 검토를 ‘제안’한다?”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날마다 16시간씩 택배물품을 나르던 40대 택배기사가 지난 8일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배송 중 택배차 운전대 앞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옮겼으나 몇 시간 만에 숨졌다. 누가 봐도 과로사로 의심된다.

그는 날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에 출근해 공짜노동(분류작업)을 몇 시간씩 하고서야 배달에 나섰다. 퇴근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밤 9~10시를 넘겼다. 그는 이렇게 주 6일을 일해야 했다.

팔순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아들이 죽어가는 병실에서도, 죽은 뒤 빈소에서도 아들의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아버지는 계속 걸려오는 고객의 전화에 일일이 응답해야 했다. 고객들은 ‘왜 택배가 오지 않냐’고 물었다. 늙은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아들이 병원에서 생사를 오간다는 말을 생면부지의 고객에게 직접 전해야 했다.

그는 불과 한 달 전에 대리점장의 요구로 산재 적용제외 신청을 했다. 특수고용직의 4대 보험 임의 가입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는 분명 대기업 CJ대한통운의 물품을 배달했는데 CJ대한통운과는 아무 관련 없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산재보험 혜택도 못 받고, 배송 사고의 책임을 오롯이 물어야 했다.

코로나19로 택배 업무가 급증한 올해 8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그중 5명이 CJ대한통운 물품을 배달했다.

장례식이 끝나자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13일 택배기사의 과중한 업무를 해결한다며 주5일 근무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세계일보 10월14일 12면)

일자리위원회는 우체국 택배기사들이 이미 주5일 근무하고 있고, 직고용을 활용하는 쿠팡 등의 사례를 참고해 택배 종사자들의 주5일 근무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앞서 두 문장의 주어는 ‘일자리위원회’인데, 서술어는 ‘제안한다’와 ‘고민할 필요가 있다’로 애매하게 표현됐다. 군색하기 이를 데 없다. 하다못해 ‘추진하겠다’는 표현조차도 못 썼다.

정부가 발표한다고 말을 들을 재벌이 아니다. 대통령이 청와대 안에 현황판까지 만들어 꼭 챙기겠다고 약속한 바로 그 일자리위원회가 “제안한다”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정부가 특수고용직을 쥐어짜면서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던 재벌 유통사에 집권 3년이 넘도록 어떤 시그널을 줬는지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세계일보 10월 14일 12면.

문재인 정부가 단 한 명의 국민도 챙기겠다는 대통령 말처럼 행동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다. 올 들어 무려 8명의 택배기사가 죽었는데도, ‘택배기사 주5일 근무제를 제안한다’니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일자리위원회가 예로 든 우체국 택배의 주 5일 근무에 대해 전국집배노조는 토요일 택배를 전면 폐지하지 않는 한 무늬만 주 5일제라고 입을 모은다. 쿠팡이 정규직을 많이 채용했다는 일자리위원회의 주장도 최근 나온 ‘쿠팡 집단감염 부천물류센터, 노동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면서도 일자리위원회는 “택배기사는 특고 신분으로 일하더라도 대부분 한 택배사와 전속적인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이라며 “택배사들이 기사의 안전과 건강 보호를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전속’성은 끝까지 챙긴다.

정부가 이러니 언론도 대부분 엊그제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특고 고용보험 도입에 대한 업계 의견’ 조사결과를 앞다퉈 보도하면서 특고 사회보험 도입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중앙일보 10월13일 B3면 ‘업계 88% 특수고용 종사자 고용보험 의무가입 반대’)

유통기업들은 특수고용 노동자와 아무 관련도 없다고 강변해왔는데, 상의는 이런 기업 151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결국 특고 당사자 의견은 정부도, 기업도, 언론도 다 외면하고 있다.

  중앙일보 10월 13일 B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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