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체스판’을 벗어날 가능성은 아직도 멀었다

[한반도 줄넘기] 제 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 무엇을 남겼나?

10월 한미관계, 나아가 남북관계와 동북아 정세의 향방을 가름 할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10월 14일(현지시간) 미국에서 한·미 국방부장관(서욱 국방부 장관과 에스퍼 국방부 장관)이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그런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의 결과물인 공동성명은 심각한 내용은 담고 있다.

[출처: 국방부TV 화면캡처]

한반도 비핵화에서 북한 비핵화로

제3항은 ‘한반도 비핵화(북핵 폐기+미국에 의한 남한 핵우산 폐기)’가 아니라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썼다. 작년 공동성명(제 51차 한미안보협의회 공동성명)에는 “양측은 검증 가능한 방식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올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를 통한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정착”으로 표현이 바뀌었다. 이런 변화는 비핵화의 의무를 북한에만 지우겠다는 것으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합의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다.

유엔사의 역할 인정

제 5항에는 “양 장관은 유엔사가 67년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성공적으로 유지하는 데 기여해 왔으며 대한민국의 주권을 완전히 존중하는 가운데 그 임무와 과업을 수행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고 쓰여 있다. 그런데 유엔사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기보다는 이를 막아왔다. 유엔사의 역할은 정전 관리라는 군사적 역할에 국한돼 있음에도 유엔사는 철도연결과 남북경협 등 남북교류를 사사건건 방해하는 월권행사로 한국의 주권을 침해해 왔다. 게다가 미국은 2014년부터 ‘유엔사 재활성화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유엔사 강화 조치(조직·회원국·인력 확대 등)를 취해온 한편, 2019년부터 유엔사를 중국을 견제하는 동아시아판 나토(NATO)로 성장시킬 가능성까지 모색하고 있다. 미국은 전작권 전환 이후에도 정치·군사적 상위체인 유엔사를 통해 한국군에 대한 통제를 지속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유엔사의 역할을 인정하는 굴욕적 합의를 해줬다.

사드 장기배치 추진

제 6항에는 “성주기지 사드 포대의 안정적인 주둔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적인 계획을 구축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현재 임시배치 상태인 사드를 정식으로 장기배치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중국-러시아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 뻔하다. 그 결과 동북아에 신냉전질서가 형성되면서 한반도는 미중 경쟁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지속 재확인

제 8항은 “동맹의 대비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연합연습 및 훈련의 지속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북한은 북미정상회담과 트럼프에게 보낸 김정은 친서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북한을 위협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문제삼아 왔다. 이로써 북핵문제 해결의 입구로 얘기되는 이른바 쌍중단(북핵실험 중단-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당)조차 한미양국은 이행할 의지가 없음이 다시 확인됐다.

오리무중이 된 전작전 전환과 미국산 무기판매 활로 확보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이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제11항을 통해 양국은 “양 장관은 전시 작전권이 미래 연합사로 전환되기 전에 상호 합의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에 명시된 조건들이 충분히 충족되어야 한다는 점을 재확인하였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즉 이 문구는 전작권 전환은 ‘시기’보다 ‘조건’이 중요하며, 조건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미국이 이해가 관철된 것이다. 이미 한·미는 ‘△한국군 핵심군사능력 확보 △북한 핵·미사일 위협대응능력 확보 △전작권 전환에 부합하는 안정적인 한반도 및 역내 안보환경 충족’ 등 세 가지 ‘조건’을 평가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즉, 이번 합의는 예정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조건 충족’은 미국산 무기 판매와 연결된다. “에스퍼 장관은 (한국군의) 보완능력의 제공을 공약하면서, 구체적 소요 능력 및 기간을 결정하는 데 있어 우선적으로 한국의 획득계획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서 장관은 한반도의 방위에 필요한 한국군의 적절한 방위 역량을 획득할 대한민국의 공약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북한의 핵/미사일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이에 대비하기 위한 방위역량 기준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전작권 환수를 위한 ‘조건충족’은 전작권 전환시기를 계속 늦추고, 미국산 무기구매를 강요할 악순환 고리를 만들 뿐이다. 미국으로선 ‘꿩먹고 알먹는’ 격이다.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

제7항인 “양 장관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증진시키기 위해 정보공유, 한미일 안보회의(DTT)를 포함한 고위급 정책협의, 연합훈련, 인적교류활동 등 한미일 3자 안보협력을 지속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도 눈에 띈다. 이는 한일관계를 사실상 군사동맹 형태로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실제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면서, 올해 미국·인도·일본·호주 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비공식 안보회의체인 ‘쿼드(Quad)’를 공식 국제기구, 즉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같은 다자안보동맹으로 공식기구화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나아가 이를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더한 '쿼드 플러스'로 확대할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번 공동성명에 “한미일 3자 안보협력 지속”이 들어감으로써, 미국의 '쿼드 플러스' 구상은 탄력을 받게 되었다. 설사 '쿼드 플러스'에 한국이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는 미국의 이해에 의해 일차적으로 좌우되는 미-일-한의 서열적 군사동맹에 한국이 편입됨을 의미한다.

방위비분담금 대폭 인상 가능성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제 19항은 “에스퍼 장관은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이 조속히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현재의 협정 공백이 동맹의 준비태세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에 주목하였다. 양측은 ”방위비분담금 협상이 공평하고 공정하며, 상호 동의 가능한 수준에서 조속히 타결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였다”고 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현수준 유지 삭제

이번 공동성명의 특징 중 하나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주한미군 현수준 유지” 문구가 삭제됐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는 방위비분담금 인상과 주한미군 주둔을 연계시켜 한국에 대한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는 것이다. 에스퍼 장관이 모두 발언에서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을 보장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빠른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에서 이를 추정할 수 있다. 또 하나는“인도태평양에서 최대 경쟁자는 중국”이라는 미국방분야 정책보고서에 근거해 미국방부가 인도태평양 지역의 미군 재배치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이미 올해 7월 에스퍼 장관은 ‘미군의 역내 재배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도태평양 역내에서 효율적인 중국 봉쇄를 위해 미군을 재배치할 수 있고 그 일환으로 주한미군 일부를 감축할 수 있음을 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보수진영의 우려와는 달리 주한미군 철수의 일환이거나 주한미군을 통한 대한반도 영향력 행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중국 포위전략이라는 큰 전략 아래 주한미군의 일부를 재배치하는 것이고, 남한을 대중국포위전략에 끌어들이는 전략과 함께 추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카터정부 시절 미국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지은 책인 ‘거대한 체스판’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에게 세계는 자신들의 세계지배를 위한 거대한 체스판이다. 미국에게 한반도는 체스판의 일부인 동아시아판 중 일부이고, 남한은 미국이 두는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미국의 이해가 관철된 공동성명에 합의하였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제 조치(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무기체계 고도화 중단, 유엔사의 월권행위 반대)로 나가지 못했다. 사드 장기 배치와 한미일군사동맹 강화에 합의하여 미국의 대중국 봉쇄전략에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 구체 인상액은 한미 간 쟁점이지만 방위비분담금 인상 그 자체의 기정사실화를 합의해 주고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기로 함으로써, 미국에 더 많은 국민혈세를 퍼주게 생겼다. 전작권 환수의 조건 마련을 운운하며 전작권 전환시기를 연기하려는 미국의 이해에 막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임기 내 전작권 환수도 물 건너 갔다.

촛불정권을 자임하는 현 정부의 퇴행을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를 통해 우리는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남한이 미국의 체스게임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희박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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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카터정부 시절 미국 외교안보특별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지은 책인 ‘거대한 체스판’에서 드러나듯이, 미국에게 세계는 자신들의 세계지배를 위한 거대한 체스판이다. 미국에게 한반도는 체스판의 일부인 동아시아판 중 일부이고, 남한은 미국이 두는 체스판 위의 말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