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된 정치’의 시작에 경종을 울리며

[레인보우] 윤석열과 혐오의 선동정치

지난 3월 9일, 결국 못된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내내 세상이 시끄럽다. 당선인도 당선인이지만 그 정치판을 어떻게든 자신을 중심으로 장악하려고 안달인 이준석 때문에 더욱 골치가 아프다. 바야흐로 못된 정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가 이들을 그냥 나쁜 정치인도 아닌 ‘못된 정치인’으로 부르는 이유는 의도적으로 못된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못된 방식으로 협상의 기준점을 멀리 던진다. 실은 100원짜리 물건인데 5,000원으로 가격을 높여 부르면 상대방도 그 기준에서 흥정에 휘말리게 되듯, 아예 터무니없어 보이는 이슈를 선점해 던져버리는 방식으로 협상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던지면 성평등 정책의 방향을 토론하기 어려워지고, 일단 어떻게든 여성가족부를 수호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들의 행보에는 어떤 원칙이나 상식, 정치인으로서의 신념 같은 것이 없다. 이준석에게 중요한 것은 반대급부를 자극해 장악력을 가지는 것뿐이다. 국민의힘이라는 정치 집단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없다. 이는 윤석열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그저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위치를 지키려 할 뿐이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이 속한 정치 집단 내부에서도 자주 갈등을 빚지만 이런 갈등과 자극은 오히려 이들에게 관심을 끄는 자양분이 된다.

나쁜 정치인은 그저 나쁜 정치를 행할 뿐이지만 못된 정치인은 여론의 반응을 계산하고 의도적이고 못된 방식으로 이슈를 장악하며 통제력을 가지려 한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언제든 말을 바꾸며 자신이 대중의 불만을 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의도적으로 ‘올바른 것’, ‘착한 시민이면 참고 받아들이며 적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에 균열을 내고 이를 정치 이슈로 만든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기득권 대중이 가져온 불만을 정치적 영향력에 이용한다. 물론 이때의 ‘기득권 대중’이란 교차적일 수 있다.

가령 소득이나 학력이 낮을지라도 남성이고 비장애인이라면, 여성이면서 고학력 중산층 이성애자라면 이들이 이주민, 난민,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노숙인 등 특정 집단에 가지는 불만은 못된 정치인의 이슈화 방식에 얼마든지 동원될 수 있다. 이전 권위주의 정부들이 자신의 의도에 반하는 이들을 무력으로 쓸어버리려 했고, 과거 민주화 운동의 이력을 지닌 자유주의 정부들이 제도화와 체제 내화를 통해 분리와 배제의 전략을 썼다면, 이들 못된 정치인들은 어떠한 책임 있는 정책이나 대안도 없이 계속해서 대중의 불만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동력을 만든다.

위기가 심화하고 대중의 불안이 증폭할 때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를 적극적으로 조장해 통제력을 확보하는 정치 전략은 이미 오랫동안 반복돼 온 방식이다. 하지만 못된 정치인들에게서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이 기득권 대중의 반지성적, 반인권적 주장에 언어를 부여하고 정치적 정당성과 합리성을 부여해주는 방식으로 제도를 뒤흔든다는 점이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오랜 투쟁으로 쌓아온 인권의 언어를 전유하고, 겨우 이뤄낸 제도적 합의의 기준점을 깨트림으로써 제도 자체를 크게 후퇴시킨다. 이런 식의 정치가 결국 어디로 향할 것인가. 지금 복사판처럼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유사한 방식의 선동 정치를 보면 알 수 있다.

플로리다주 의회는 지난 3월 이른바 “Don’t Say Gay(게이라고 말하지 말라)”라고 불리는 ‘교육에 관한 부모의 권리 법안(Parental Rights in Education Bill)’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부모의 권리를 명분으로 학교에서 교사나 제3자에 의한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수업을 금지하도록 한다. 기본적으로 ‘유치원에서 초등학교 3학년까지’라는 연령 기준을 두고 있으나 ‘주의 표준에 따라 연령이나 발달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방식으로’라는 문구를 포함함으로써 얼마든지 확대 적용할 여지를 두었다. 또한 부모는 언제든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사실상 학교 교육에서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게 만든다. 수년간 성교육에 불만을 지닌 부모들의 불만을 동기 삼아 법적 절차로서 승인하고, 성소수자를 명시적으로 탄압하는 동시에, 성소수자에 대한 말하기를 소송 대상으로 삼으며 성소수자 자체를 금기의 영역으로 만든다. 이와 유사한 전략을 먼저 시도한 것이 바로 러시아의 푸틴 정부였다.

푸틴은 2013년 ‘건강 및 발달에 유해한 정보로부터의 어린이 보호’법에 ‘비전통적 성관계 선전 금지’라는 조항을 넣어 교육 자료를 포함한 모든 표현물에서 성소수자에 관한 내용은 언제든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시도가 어린이 보호, 부모의 권리 같은 명분으로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행위부터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 집단 전반에 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안전과 안보, 보호 같은 것을 명분으로 한 공식적인 통제 전략은 경제적, 정치적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지닌 러시아 대중의 정서를 자극하며 푸틴의 영향력을 키웠고 끝내 그의 정치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불안을 자극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 대상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으로부터 시작해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탄생한 이 못된 정치에 심각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불만과 혐오의 정서를 자극해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 정치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든 최악의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

“선거에서 나치는 44%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지만 돌격대들이 일어서자 좌파든 우파 정당이든 비겁하게 변절하여 히틀러 독재 정권을 ‘합법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제바스티안 하프너, <어느 독일인 이야기: 회상 1914~1933>

태그

이용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문경락

    . 불안을 자극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 대상은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으로부터 시작해 어디로든 향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탄생한 이 못된 정치에 심각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불만과 혐오의 정서를 자극해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 정치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언제든 최악의 결과에 도달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