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술동맹에 드리운 블랙스완

[요즘 경제]


한미 정상회담 이후 ‘경제안보동맹’이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기존의 대북 안보동맹에 중국을 겨냥한 경제기술동맹이 새롭게 더해진 것이다. 방한한 바이든의 첫 행선지가 평택 반도체 공장임을 보면, 아마도 후자가 더 큰 동맹개념으로 부상한 듯 보인다. 이것을 단순히 한미 관계로만 보면, 한국이 미국에 반도체, 전기차 공장을 지어주는 대신 북핵 억지력을 보장받는 식의 안보와 경제의 거래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과연 미국이 반도체와 전기차를 만들 돈이 없는 나라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양국 간 투자협정의 틀을 만들기 위함인가? 아니다. 이미 한미 FTA가 있지 않은가? 지금 시작된 경제기술동맹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질서의 근본을 바꾸려는 미국의 첫 행보다. 그리고 이것은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의 흥망성쇠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지배 질서의 변화를 좀 더 긴 시간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변화의 분기점은 바로 2008년 금융위기다.

위기 이후 10년 미·중 갈등의 격화

2008년 폭발한 세계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에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그 후 우리는 십 년 넘게 위기라는 말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이런 위기 국면에서 지배계급은 양적완화와 초저금리로 상징되는 완화적 금융통화정책과 G20이라는 국제 공조 체제로 대응했다. 당시 미국의 대대적인 통화 완화 정책과 더불어 중국의 초대형 경기부양책이 이런 위기에 대응하는 국제 공조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2010년부터 긴박했던 위기 국면이 차츰 소강상태를 보이면서 국제 공조 체제는 점차 이완되기 시작했다. 환율 및 기후협약 등 민감한 사안을 두고는 서로 첨예한 대립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2011년 오바마 행정부 당시 힐러리 클린턴이 천명한 ‘아시아 중심(Pivot to Asia)’ 외교 노선은 오늘날 벌어지는 미·중 G2 양강 체제의 전략적 갈등을 예고한 것이었다. 사실상 현재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은 10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지금 바이든 행정부의 전략적 외교 노선을 관장하는 핵심 관료들은 당시 오바마 행정부의 관료였다.

이런 미국의 외교 노선 변화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종래의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의 양상이 크게 변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 이후 가속화된 미·중 간 경제 융합체제, 즉 중국의 값싼 물건이 미국으로 흘러가고 중국이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 국채를 사는 ‘수출달러 환류시스템’이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중국은 달러 체제에 종속된 대미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전략적 구상을 시작했고, 미국은 중국을 아시아의 패권을 위협하는 잠재적 경쟁자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중 간 얽혀 있는 경제체제는 무 자르듯 쉽게 나눌 수 없다. 오바마 시절부터 해외로 나간 기업들을 국내로 되돌아오게 하는 정책들을 추진하고, 에너지 패권을 쥐기 위해 셰일오일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일대일로로 상징되는 중국의 부상을 막을 순 없었다. 트럼프 시절에도 미·중 무역 갈등이 폭발하면서 미국은 중국에 엄청난 관세를 부과했지만,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더 크게 늘었다.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의 첨단산업 기업들을 미국에서 퇴출하는 조치들은 이제 미·중 갈등이 단순한 무역 갈등이 아닌 세계 경제질서의 미래 패권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전쟁임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된 경제기술동맹은 미국이 구상하는 이 신질서에서 중국을 배제시키거나 혹은 종속시키기 위한 선전포고라 할 수 있다.

위기 관리체제의 불안정과 새로운 시험대

한편 전대미문의 2008년 금융위기는 탈출구를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 역시 어둠 속에서 벽을 더듬거리며 발을 내딛는 불안한 모습이었다. 수년 후 금융위기는 진정됐지만, 금융완화정책의 수혜로부터 소외된 기층 대중의 불만이 쌓여갔다. 세계 각국은 불평등과 양극화라는 커다란 사회적 갈등과 마주하게 됐다. 8년 전 피케티라는 젊은 경제학자의 불평등에 대한 지적이 세계적으로 커다란 울림을 준 배경엔 이런 폭발 직전의 사회적 갈등이 있었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구 국가에선 이런 갈등을 자양분 삼은 극우파가 주요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했다. 프랑스의 르펜과 미국의 트럼프로 상징되는 극우적 내셔널리즘의 발호는 서구 국가의 국제적 위기 관리체제의 안정성을 흔들었다. 여기에 잘못된 편견과 악의적 선동에 의한 인종주의적, 종교주의적 갈등 구도가 더해지면서 이념과 더불어 문화적 갈등이라는 복잡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런 정치 사회적 갈등과 달리 지배계급의 위기 관리정책의 한 축인 완화적 금융통화정책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화해 갔다. 물론 10여 년의 긴 시간대를 한 장면씩 스냅 사진으로 찍어서 들여다보면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미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한 국제금융 공조 체제는 국내외적 정치 갈등에 비해 정책의 연속성이 나름 탄탄했다. 그러면서도 종래의 이념적 경제 교리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적인 정책 실험들이 진행됐다. ‘상시적 양적완화’, ‘마이너스 금리’, ‘평균 인플레이션 목표제’, ‘장기국채 금리조정’ 등,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은 최종대부자라는 숨은 조력자의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시장 개입 정책을 추진했다. 이들 중앙은행의 매입 자산규모가 GDP 대비 사상 최대를 이루면서 중앙은행 전성시대라는 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여기서 보수적인 입장이 확고한 한국은행만은 예외다.)

그러나 미국의 전 중앙은행장도 실토했듯, 중앙은행의 정책만으로 위기관리를 온전히 진행할 순 없다. 샤워기에서 강한 물을 내 뿜을 순 있어도, 그 물을 각자의 그릇에 골고루 담는 것은 또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금융시장의 성장과 달리 정치 사회적 갈등은 갈수록 심각해졌다. 주식, 부동산 등의 자산 가격은 금융완화 정책의 최대 수혜를 받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이로부터 소외된 대중의 불만은 누적될 수밖에 없었다. 한국 사회도 지난 대선에서 보듯 ‘벼락 거지’로 상징되는 부동산 정책 실패, 불공정 담론, 코로나 손실보상 등이 사회갈등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는 위기 관리체제의 시험대였는데, 이에 대응하고자 중앙은행은 샤워기를 무제한으로 틀었고, 여기에 국가 재정의 물탱크도 대량 방류했다. (물론 여기서 재정 준칙에 얽매인 한국 정부는 예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우왕좌왕했던 장면과 달리 매우 신속하고 대대적인 긴급조치 속에 거시적 경제 상황은 빠르게 안정됐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나뉘면서, 정치 사회적 갈등은 더욱 커졌다. 국제적 차원에서도 국제 공조가 아닌 각자도생의 길을 걸으면서 의료자원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경제회복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인플레이션 급등은 이 양극화에 기름을 부었다. 애초 중앙은행의 완화정책의 목표는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디플레이션 압력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오미크론 경제봉쇄로 예상치 못한 공급 위기가 발생하면서 위기 대응의 복잡성이 발생했다. 중앙은행의 샤워기를 잠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모든 면에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고, 이로 인한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제 기술동맹에 드리워진 회색 그림자와 블랙스완

포스트 코로나 담론에서 주되게 등장하는 신산업-신기술혁명 등이 이런 위기 국면을 타개할 장밋빛 전망으로 곧잘 제기된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로 포장되고, 바이든이 치켜세운 삼성전자가 미래 먹거리를 책임져 줄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장밋빛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기업규제를 완화하고 노동개악을 감내하길 요구받고 있다. 하지만 당장 현실을 돌아보면 무엇을 어떻게 감내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과연 그 불확실한 미래의 혜택이 내 손에 쥐어질지는 막막하다. 신자유주의 20년 동안 내내 하던 똑같은 말들이라 전혀 새롭지 않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드리웠던 어두운 구름이 걷히길 고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기술동맹이라는 엄청난 외풍이 배를 다른 쪽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아직 불확실하고 두렵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의 쇠퇴가 남긴 자국들은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국제적 대립과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블랙스완(검은 백조)이라는 말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등장할 때 종종 사용되는 경제용어다. 희박한 가능성이라 점쳤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사태 역시 블랙스완의 한 장면이다. 이로 인한 식량 위기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기 속에 세계적인 곡물 기업들은 최대 수익을 내고 있고, 저개발국가들은 식량난에 내몰리고 있다. 대립과 갈등이 전면화된 시대, 중국을 배제하기 위한 정치 이념적 명분의 경제기술동맹이 어떤 예기치 못한 블랙스완을 불러들일지 매우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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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드리웠던 어두운 구름이 걷히길 고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기술동맹이라는 엄청난 외풍이 배를 다른 쪽으로 밀어 넣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갈지 아직 불확실하고 두렵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지배 질서의 쇠퇴가 남긴 자국들은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국제적 대립과 갈등을 더욱 증폭시켰기 때문이다. 블랙스완(검은 백조)이라는 말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등장할 때 종종 사용되는 경제용어다. 희박한 가능성이라 점쳤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사태 역시 블랙스완의 한 장면이다. 이로 인한 식량 위기가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기 속에 세계적인 곡물 기업들은 최대 수익을 내고 있고, 저개발국가들은 식량난에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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