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여성, 노동의 기록]

사무장님 잘 지내세요? 제 인생을 바꾼 그 순간을 함께한 연이 끊긴 지도 오래됐네요. 저는 지난주에 2008년 행담도휴게소를 계기로 시작한 성희롱 예방교육 전문 강사 여섯 번째 보수교육을 받았어요. 그러고 보니 벌써 14년 차 전문 강사 경력을 갖게 됐네요.

보수교육을 받을 때마다 어김없이 2007년 행담도휴게소가 떠올라요. 고속도로 휴게소, 그것도 서해안고속도로의 상하행선이 모두 만나는 가장 큰 휴게소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한참 똘똘 뭉쳐 신나게 활동하고 있을 때였지요. 당시 휴게소에 들어갔던 서부지구협의회 의장 동지가 다급하고 심각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어요.

“조 부장, 행담도휴게소 상황이… 아무래도 조 부장이 들어와야 할 것 같아.”

지금 같으면 단박에 무슨 상황인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아들었을 텐데. 그때는 의장과 조직부장이 들어가 있는데 왜 갑자기 나를 부르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지요. 재차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의장 동지는 같은 말만 반복하며 당장 들어오라고 했어요. 의아함과 뭔지 모를 긴박감을 가득 안은 채, 택시를 잡아타고 서산에서 당진의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달려갔지요.

그때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사무장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나요. 앙다문 입술에서 느껴지던 결심과 그와 반대로 자꾸만 흔들리며 젖어 들던 눈빛, 날카롭지만 덜덜 떨리던 목소리. 무슨 정신으로 사무장님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그때 생각만 하면 지금도 눈물이 왈칵하고 심장이 떨려요.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정신없이 사무실로 돌아와 떨리는 손으로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지고, 민주노총과 지역 여성단체에 전화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저 역시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어요. 제 기억에 당시 민주노총에는 여성위원회나 여성위원장이 없었어요. 아니, 어쩌면 도움을 누구에게 어떻게 요청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을 수도 있어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으니 스스로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가 가장 많은 법조문과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의 지침 등을 찾아 외웠던 때인 것 같아요. 그렇게 고용노동부 진정서와 국가인권위원회 진술서, 위임장, 온갖 법조문과 자료를 바리바리 싸 들고 휴게소로 들어가 전체 여성 조합원들을 소집했었지요.

넓은 노동조합 회의실에 가득 찬 20대 초반부터 60대까지의 여성 조합원들에게 진술서와 위임장을 건네며 본인이 겪었거나 목격한 내용을 적어달라고 요청했어요. 그렇게 모인 수십 장의 진술서와 위임장을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갔어요.

사무장님의 진술이 하나하나 확인되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지요. 그렇게 본인 진술과 증언으로 23명의 고소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전체 여성 조합원에게 가해진 장장 6년간이 성희롱과 성추행이 생생한 목소리로 토해져 나오던 순간, 속이 뒤집히고 분노에 잡아먹히는 기분이었어요.

계산대 발판 아래 쭈그려 앉아 쳐다보던 눈길도, 야유회 가는 버스 안에서 입을 맞추던 것도, 회식이 끝난 뒤 같이 자자며 기숙사까지 쫓아오던 발길도, 가슴을 찔러대던 무전기도, 아르바이트 청소년부터 60세가 다된 조합원까지 누구 하나 폭력의 대상이 아닌 사람이 없었지요.

절대다수가 여성인 식당에서도 권력을 가진 자는 남성이었어요. 음식을 만드는 그 손으로 섬세하게 깎아 들고 다니던 성기 모양 당근을 보며, 많은 동지가 다시는 당근을 먹지 않게 되었다고도 했습니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상적이고 대범하게 행해진 폭력들보다 더 온몸을 떨게 했던 건, 끔찍한 두 명의 가해자 중 한 명이 노동조합 임원이라는 것이었어요.

그와 함께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조합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을 때 어떤 마음으로 보고 계셨을까요. 그 끔찍한 고통과 역겨움의 시간을 어찌 견뎌내셨을까요. 어째서 모두 성폭력의 고통보다 노동자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고통이 더 중요하고 시급하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무섭게도 담담하게 그 고통을 토해내던 사무장님과 조합원들을 안고 통곡이라도 했을 텐데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됐으니, 민주노총에 대한 신뢰가 생겼으니,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제는 말해도 될 것 같다던 사무장님을 안고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했을 텐데요.

길고 끔찍한 싸움을 하면서 참 많이도 울었지만, 우리 독하고 단단하게 잘 싸웠어요. 긴 싸움 끝에 국가인권위가 현장 조사를 하고, 회사가 과태료를 물고, 가해자들이 해고된 후에도, 끓어오르는 답답함에 끝 모르고 헤매던 저와 달리 사무장님은 또 다른 싸움을 하며 지쳐가고 있었던 걸 몰랐어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렇게 사무장님을 혼자 두지 않았을 텐데요.

가장 큰 피해자인 사무장님이 노동조합 만들어 분위기 좋던 일터를 냉랭하게 만든 가해자로 따돌림당하며, 피해를 수군대는 사람들에게 끔찍한 2차 가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알았어요. 가해자와 사측과 싸우던 때와 달리 피폐해지는 사무장님을 보고 나서야, 배신감으로 병이 생긴 후 휴게소를 떠나겠다며 세상 초월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하던 사무장님을 보고 나서야 가해자를 쫓아내는 데 급급해 보지 못했던 피해자가 보였어요.

사무장님이 휴게소를 떠난 후 머릿속이 질문으로 가득 찼었지요.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그 가해자는 또 어딘가에 가서 일을 하겠지. 나는 가해자를 처벌한 게 아니라 또 다른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만들어낸 게 아닐까. 끔찍한 폭력을 방관한 더 많은 제3자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가해자를 잘라냈지만, 피해자마저 잘라낸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한 걸까. 피해자들이 살아남을 방법은 무엇일까. 왜 함께 싸운 조합원들조차 긴 시간이 끝난 후 화살을 피해자에게 돌렸을까. 그리고 그 피해자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었을까.

가해자만 쫓아내면 피해자는 아무 일 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안일함이 사무장님을 쫓아낸 것이라 참 많이도 울었답니다. 그 책임감과 죄책감, 자괴감 끝에 찾은 것이 성희롱 예방교육 전문 강사 교육이었어요. 그때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되면서 또 얼마나 가슴을 치고 울었던지요.

여전히 사람이 북적이는, 그러나 이제는 아는 얼굴 하나 없는 행담도휴게소에 갈 때마다, 노동조합 사무실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를 볼 때마다 단단했던 사무장님이 생각나요. 계산대의 여성 노동자를 볼 때마다 피해를 얘기하며 부르르 떨던 사무장님이 생각나요.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함께 들고 있던 피켓도, 성추행 가해자를 처벌하라고 쓴 현수막도, 손님에게 나눠주던 유인물도 어제처럼 떠올라요.

지난 14년 동안 교육도 하고, 많은 여성 노동자와 함께 싸우고 이기기도 했는데, 여전히 사무장님과 휴게소 여성 노동자들이 당했던 폭력이 계속돼요.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도,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서도, 심지어 민주노총 안에서도 여성에 대한 폭력이 계속돼요. 하지만 지치지 않을게요. 사무장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할게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할게요. 앞으로도 사무장님에 대한 부채감으로 더 단단하게 스스로를 벼리며 곳곳의 폭력 피해 여성 노동자들 곁에 설게요.

지난 14년 모두 당신 덕분이었어요. 모든 피해자가 당신처럼 단단하게 자기 입으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러나 당신과 다르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요.

건강하세요. 그리고 우리의 인연은 제 마음대로 이렇게 이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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