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프로젝트 : 에피소드 1

[프리퀄prequel]

  #001 사만다의 가족, 평택 내리공원, Pigment Print, 80x120cm, 2022

하나의 장면을 층층이 파헤쳐나가는 것과 더불어 그 장면을 바꾸어내기 위해 틀 밖에 서 있던 어느 관찰자는 현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여러 가지 숫자와 지도는 그의 도구이자 나침반이 되어 주었다. 군중으로 가득한 어느 날, 아스팔트 위에서 그는 나에게 책 한 권을 건넨다. 그가 써 내려간 이야기가 내게 보람되기를, 아니면 유용한 냄비 받침으로 쓰이길 바란다고도 적혀있었다.

캘리포니아라는 존재를 들여다보고자 여정에 올랐지만, 그 방대한 규모와 스펙터클에 넋을 잃고 말았다. 어쩌면 나의 위치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그 주변을 떠돌며 모아온 이미지가 파편처럼 존재한다. 이들은 '하나의 장면'이 될 수 있을까. 선명한 이미지 뒤에 감춰진 서사를 독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바다에서 바다로, 섬에서 섬으로, 다시 뭍으로. 제국이 확장되는 동안 희미해져 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반대 주민으로, 전투 경찰로, 복무 군인으로 그렇게 묘사되고 간주되었다. 하나로 설명될 수 없는 이 존재들을 해체하고 깊이 이해해보려는 시간이 긴 여정의 지도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하나의 에피소드는 하나의 커다란 세계이다. 묻힌 개인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캘리포니아의 민낯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006 전진현, 군산 선연리 하제마을, Pigment Print, 80x120cm, 2022

전진현 씨는 군산의 하제포구에 살고 있다. 그곳은 노랑조개의 주산지였고, 한때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고 할 정도로 부유한 어촌이었다.

30년간 진행된 새만금 간척사업은 주민의 생활 터전인 바다와 갯벌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군산과 부안을 잇는 33.9km의 방조제가 축조되는 동안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갔고, 2022년 현재 물막이 공사가 끝난 시점의 마을은 대부분 사라졌다.

마을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떠나간 데에는 미군기지의 영향도 컸다. 군산 미 공군기지 WOLF PACK은 일제강점기 일본군 육군 비행학교를 기반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기지는 철조망 하나를 두고 마을과 경계해 있으며, 미군과 국방부는 2005년 아파치 헬기부대 부지와 탄약고 안전거리 부지 확보를 명분으로 주민의 토지를 강제수용하기 시작했다.

기지가 확장될 때마다 주민들은 밀려났다. 전진현 씨는 마을을 떠나 막상 갈 곳이 없고 생활도 막막한 상황에 다다르자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002 정영택, 군산 선연리 하제포구, Pigment Print, 80x60cm, 2022

마을을 떠난 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저는 바다 일을…. 직접적인 바다 일을 하진 않았고. 이제 저희 엄마 아빠가 여기서 가게를 하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가게 일을 돕고 이제 뭐 몇 년 전부터는 저도 수산물 쪽에 일도 같이하고. 지금은 엄마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쪽 일도 하게 되고 그렇죠.

어렸을 때는 딱히 제가 도와주는 건 없고 엄마 아빠가 워낙에 바쁘셨어요. 저희가 이쪽에 배가 예전에는 200여 척 정도로 많았어요. 이 앞에 보이는 지금은 새만금 사업으로 강이 되었지만, 사실 여기가 다 바다, 이 앞까지도 다 배가 여기까지 여기예요. 다 배가 있던 자리. 여기까지 다 배가 있던 자리라 저기 끝까지 한 200여 척? 그렇게 배가 많아서.

지금은 이제 면세유 개념이잖아요. 기름을 넣어주는, 수협 면세유. 그때는 그런 게 없어서 저희는 이제 호남석유라는 데서 와서 탱크를 놓으면 이쪽 옆에다가 그 쇠로 된 드럼통을 쫙 세워놓고 엄마 아빠가 기름을 받아. 일주일에 몇 번씩 기름차가 와요. 두세 번 정도 오면 이렇게 해서 기름 쫙 받아놓고 그것을 저희가 발로 뒹굴러가지고 엄마 아빠가 뒹굴러가지고 배에다 기름을 다 넣어주셨죠.

  #003 최경순, 군산 미룡주공아파트, Pigment Print, 80x60cm, 2022

예 그렇게 돌려서 손수 다…. 배 기름이 오면 쇠다 보니까 녹이 나서 막 빵구가 나면 막 기름이 새는 거죠. 그러면 얼른 가서 빨랫비누를 가지고 이렇게 그걸 메꾸는 거예요. 예전에 엄마가 했던 그런 생각들이 나요. 빨랫비누를 가지고 그걸 메꾸면 그 막 삭아서 드럼통이 삭아서 기름이 새는 자리가 바로 메꿔져요. 어 그렇게 했었어요. 그렇게 예전에는 정말 너무 바빴어…. 나오는 것도 많았고.

주민분들이 강제수용에 반대하고 정부를 상대로 싸우지는 않으셨나요?

연말이 되면 택시 회사들이 달력을 가지고 홍보 차원에서 오시잖아요. 택시가 정말 쉴 새 없이, 여기를 또 시내하고 머니까 택시비도 많이 나오잖아요, 그분들한테는 좋은 고객인 거죠. 그래서 연말이 되면 선물도 갖고 오시고 동네에 달력도 갖고 오시고 회사들이 경쟁하다시피 좀 그랬어요. 예전에는 그러니까 그렇게 다들 뭐 다 잘살았어요.

이 동네는 여기가 노랑조개 서울에서는 명주조개라고 하거든요? 뭐 부산 이런 데는 명지라고도 하데요? 노란색 조개가 주산지였어요. 저희 학교 다닐 때도 마을 곳곳에 명지조개를 까서 건조해서 말리고. 그 철사에 다 꿰어 말리고 그렇게 판매를 가공을 해서 팔고. 이런 게 많아서 조개껍데기 산이 참 많았어요. 저희 키보다도 훨씬 높은 산. 일반 산만큼의 높이로 된 조개껍데기 산들이 참 많았어요. 냄새도 많이 났죠. 여름이라 냄새도 많이 나고. 그런데도 많았어요. 뭐 조개도 조개지만 조개껍데기도 많았고 정말…. 정말 예전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어종이 여기에서 그렇게 나오는 데가 여기만큼 많이 나오는 데가 있었을까 생각할 정도로. 뭐 물고기 종류도 그렇고 조개 종류도 그렇고 정말 여러 가지 사는데 정말 풍족한 곳이었죠.

  #004 여상훈, 군산 선연리 하제마을, Pigment Print, 80x60cm, 2022

이 풍요롭던 마을에 도대체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가장 큰 거라고 하면 어 안정을 찾지 못하는 거죠. 왜 그러냐면 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국방부 이 사업도 단시간에. 원래는 단시간에 하기로 한 게 지금 10년이 넘는 동안 끌어온 거예요. 국방부에서.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면 저희가 가게를 하는데 사람들이 많을 때는 장사를 할 수 있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차츰차츰 나가면 저희는 가게를 접을 수도 없고 이거를 생계를 해왔는데 안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고. 지금은 거의 없으니까 아예 없다시피 하니까 그렇지만…. 그런 생활들.

그리고 뭐 끊임없이 국방부에서 나가라 뭐 해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고 협박 아닌 협박들. 또 이런 일이 있으니까 동네에서도 그런 얘기들이 사실이 아닌 얘기들이 흘러나와요. 지금 안 나가면 돈을 너네는 못 받는대. 뭐 우리 젊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어른들은 불안한 거죠. 그러니깐 상당히 어른들의 그 불안 심리를 이용하더라고요.

제가 보니까 왜 그러지, 우리가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지, 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거지. 그건 있을 수도 없어 하는데 어른들은 믿더란 말이죠. 정말 그렇게 되면 어떡하지 우리 돈도 안 주면, 이제 와서는 여기서 살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는데, 그러면 어떡하지 그런 불안 심리들?

그러니깐 그분들은 그런 거를 많이 이용하더라고요. 동네에서도 그렇고 그러니깐 어느…. 물론 사람이 하는 일들 일이죠. 이제 뭐 어디에서 나왔든 간에 사람들이. 어쨌든 이용을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거겠죠. 그런 일들이 많이 있고 그래요. 지금도 저만 남아 있는 저한테도 너는 끝까지 버텨서 못 받을 거야, 뭐 못 받는다고 했어. 뭐 아주…. 저는 뭐 그 선을 저는 넘었으니까 그냥 버티는 건데 그러니까 버틴다는 표현은 그렇지만 그들의 잘못이 있으니까 나는 그들의 잘못을 그들이 인정하고 그다음에 정확한 보상을 받고 나가야겠다는 거지. 저의 목적은 여기서 버텨야겠다는 목적은 아니에요.

  #005 박왕기, 군산 선연리 어촌계사랑방, Pigment Print, 80x60cm, 2022

어떤 점이 가장 안타까우세요?

여기는 새만금 새만금 사업이 먼저 이뤄지면서 새만금 사업으로 인해서 피해 본 거는 생계하고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먼저 그게 시작이 됐고, 몇 년 후엔 또 이쪽 또 국방부에서 이주를 해야된다, 실상은 여기도 평택처럼 미군이 쓰고자 하는 거예요. 미군이 어떤 뭐 헬기를 들여오던지 처음에는 여기를 아파치 헬기장이 들어오기로 한 곳이에요.

그래서 길 가다 보면 지금 철조망이 쳐져 있는 데가 원래 아파치 부지로 상정이 되었던 데거든요. 근데 그러니까 그들이 필요해서 했던 거. 물론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죠. 국민이지만 국가에서 필요해서 우리를 이제 나가라고 하는 건데 거꾸로 어떻게 방향이 어떻게 되느냐 진행이. 이주를 하면서 탄약고가 들어오는데 너네를 안전한 곳으로 이주를 하려고 그래, 너네를 위해서 그런 거야 하면서 타이틀이 탄약고 어… 탄약고 주변 어… 주변 지역 안전지대로 이주를 해준다는 타이틀이. 그렇게 바뀌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깐 이게 주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서 이제 완전히 보상체계가 달라져 버리는 거죠. 사실은 그들이 필요해서 우리를 내쫓는 상황인데, 사실은 그런데 뭐 우리한테 보상을 줄 때는 너네를 위해서 하는 거니까 너네 빨리빨리 나가 이렇게 돼버린 거예요 상황이.

예전에는 또 여기 위가 미군기지가 윗동네와 연결이 되어 있어요. 거기 이제 모래밭탕이라는 데가 있었고, 제가 어렸을 때 모래밭탕이라고 했었어요. 그 모래밭탕에 아마 그쪽으로 침출수 이런 게 있었던 것 같아. 기름이나 이런 미군 쪽에. 그 요즘에 뭐 익산에 어느 마을 장전마을인가 해가지고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조사하고 그랬잖아요? 이 동네는요 그 마을보다 더 암으로 많이 돌아가셨어요. 그 주변 분들이 어떤 데는 정말 조사를 해야 될 데는 정말 이 동넨데 너무나 묻힌 거죠. 너무나 묻힌 거고 뭐 어떤 해는 어떤 해 여름인가 한 3, 4년 전 여름인가는 뭐 일주일에도 상이, 장례가 뭐 일주일 사이에도 2건. 이렇게 계속 일주일 사이에서도 그렇게 엄청나게…. 그러니까 막 그 주변에 다 암으로 이 동네 분들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 되게 많아요. 이상하다는 거죠. 생각할 때도…. 살 때는 잘 몰랐어. 근데 이주를 하고 할 때 되니까 다 암으로 다 돌아가시는 거야.

근데 그 이유를 어디에다가 뭐 물을 만한 이런 사람도 없을뿐더러 뭐 여기는 또 미군 비행장이 있어서 지금은 그나마 조용한 편이에요. 지금은 조용한데 예전에는 밤낮이 없어요. 그 비행기가 이륙하고 착륙하고 이게 밤낮이 없고 더더욱 또 훈련기간에는. 그래서 이제 전화를 하다가 통화를 하던 중에 비행기가 뜨면 통화가 안 되니까 이따가 통화하자고 그리고 외지인들 친척분들이라도 오시면 잠도 못 주무시는 거죠. 우리는 일상이 돼서 그래서 이제 오래전에 아산병원하고 해가지고 검진을 다 했어요, 이 동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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