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의 노래’와 ‘증오의 노래’

[정대성의 독일통신](2) - 불안의 시대를 파고드는 독일의 신나치 록 음악

“꿈이 노래를 잃으면 제 마음을 묶는 사슬이 되는 법이다.
혁명이 사랑을 잃으면 추하고 가공할 폭력이 되는 법이다.
사랑을 잃은 폭력이 노래를 좋아하면 그 노래 역시도 사슬이 되는 법이다.”
- 이청준 <흰 옷> -


‘노래하는 혁명가’와 ‘전자기타를 든 테러리스트’ - 역사와 감옥 속으로 들어가다

칠레, 1973년 9월.
2001년 ‘영원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노래하던 미국의 심장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던 때로부터 꼭 28년 전의 그 날인 9월 11일, 남미 대륙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세상에서 가장 긴 나라’ 칠레의 대통령궁도 전투기의 폭격으로 화염에 휩싸인다. 칠레 민중의 염원을 등에 업고 3년 전 합법적으로 정권을 잡은 민중연합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미국을 등에 진 군부 쿠데타에 맞서 ‘기관총을 들고’ 결국 장렬한 최후를 마친다.
  아옌데 대통령 최후의 사진. 가운데가 아옌데 대통령
4일 뒤, 노래와 기타로 아옌데와 함께 하며 선거를 통한 민중연합 정권의 창출에 기여한 칠레 민중의 벗이자 ‘노래하는 혁명가’ 빅토르 하라도 수많은 동료와 함께 무참히 학살당한다. 시체 더미 속에서 발견된 하라의 몸은 총탄 자국 투성이고, ‘해방 세상’의 염원을 기타에 담아내던 두 손은 처참하게 부러져 있었다.
‘노래하는 혁명가’ 빅토르 하라는 ‘해방의 무기’인 노래와 함께 그렇게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독일, 2005년 3월.
록 밴드 <란처>가 연방 법정에 선다. 죄목은 ‘범죄단체 결성’이다. 밴드 멤버들이 모여 총질이라도 도모한 것일까. 아니, 그들의 ‘무기’도 노래이다. 하지만 ‘검둥이의 선거권은 목 메달고 배에 총알을 박아 버려’ 같은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극단적으로 인종 차별적인 노래 가사이다. 나아가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 진드기, 그 더러운 것은 어서 모조리 사라져야 해’ 같은 외국인 증오를 드러내 놓고 부추기는 섬뜩한 가사도 스스럼없이 무기로 사용했다. 30여년 전 빅토르 하라가 부러진 손으로 내려놓은 ‘무기로서의 노래’를 이들이 다시 집어든 것이다. 그것도 정 반대 방향에서.
밴드 이름부터가 ‘병사’란 뜻으로 나치 냄새 깨나 풍기는 이 그룹의 노래 가사에 대해 연방 판사는 ‘죄다 범죄감’이라고 밝힌다. 담당 검사는 그룹 <란처>가 미국을 비롯해 스웨덴,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의 극우파 네트워크를 통해 음반을 만들어 배포했으며, 예술가라는 포장은 순전히 가면이고 ‘전자 기타를 든 테러리스트’가 자명하다고 단언한다. 법정은 이 밴드의 목표가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증오심을 퍼트리고 극우파적으로 선동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룹의 보컬이자 작사자는 결국 3년 4개월의 중형을 선고받는다.
‘전자 기타를 든 테러리스트’ <란처>는 ‘증오의 무기’인 노래와 함께 그렇게 감옥 속으로 들어간다.

‘범죄 선동은 범죄가 된다’

  극우 민족민주당의 시위에 가담한 '란처'의 보컬

독일에서 음악 그룹이 ‘범죄단체’ 결성 죄를 선고받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는 필시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일 듯하다.
물론 밴드 <란처>의 음반은 독일 음반가계에서 합법적으로 살 수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약 10만장에 달하는 이들의 음반이 이미 독일에서 유통되고 있다고 본다. 그 대부분이 불법 복제 음반으로 주로 학교 파티나 청소년 모임에서 틀어진다고 한다.
또한 <란처>는 여러 극우파 록 그룹 가운데 단연 간판 격인 밴드로 이들의 선동은 실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몇 년 전 신나치 성향의 청년들이 베트남인 둘을 폭행으로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법정에서 피고들은 범행 당시 <란처>의 노래를 불렀다고 진술했던 것이다. 그밖에 신나치의 다른 외국인 폭행사건 현장에서도 이 밴드 노래가 불려졌음이 밝혀졌다. <란처>를 범죄단체로 판결한 판사는 이 밴드가 그러한 폭행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질책했다.
그렇다면 ‘예술적’ 표현도 범죄가 되는가?
‘음악은 범죄가 아니다!’
법원의 판결에 항의하는 신나치 시위대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 자체로 보면 참 흠잡을 데 없는 말이다. 하지만 독일 법정은 예술이 다른 사람들의 인권 침해나 공공연한 차별을 넘어 범죄 행위까지 선동한다면 ‘범죄가 된다’고 지극히 ‘상식적으로’ 판결했던 것이다.

독일 극우 록 밴드 - 1990년대에 폭발적으로 팽창

독일에서 1989년에 10여 개에 불과하던 극우파 성향의 록 밴드는 불과 10여 년만인 2001에 200개를 넘어서며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옛 동서독 지역을 불문하고 독일 전역에 골고루 퍼져 있는 상황이다.
이들 극우파 밴드는 그 이름부터가 극단적이고 과격하다. <아리안 혈통> 같이 나치를 곧장 연상시키는 이름을 비롯해 <진군>이나 <피와 명예>, <살기> <폭탄> <독재자> <강자의 권리> <증오 공동체> <돌격대> <테러 99> 같은 명칭들은 한눈에 이들의 성향을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이에 비하면 앞서 말한 ‘병사’라는 이름은 다소 평범한 느낌까지 든다.
또한 이들은 음반 표지에 나치 문양이나 나치 병사를 등장시키기 일쑤고 전투 장면이나 유혈 낭자한 폭력 장면을 흔히 이용한다. 그들은 짧은 군인 머리나 빡빡 머리를 좋아하며 문신 새기기를 즐기며 전투화를 선호한다.

외국인과 좌파 - 극우 밴드의 공적 1,2호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무기인 ‘증오의 노래’로 무엇을 주장하는가? 극우파 록 그룹이 발휘하는 영향력의 원천은 앞서 독일 법정이 지적하듯 무엇보다 노래가사에 있다. 특히 성장기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선동적이고 폭력적인 가사는 이들 극우파 그룹을 이해하는 척도이자 판단의 핵심 열쇠임에 틀림없다.
그룹 <란처>의 노래 ‘병사’는 “우리의 혈관에는 바이킹의 피가 끓는다. 우리는 아리안족 청년들의 목소리다”라고 외치며 나치의 망령을 스스럼없이 불러낸다. 극우파 록 그룹의 노래가사에서 또한 빠질 수 없는 것이 폭력 찬미이다. <강타>라는 그룹은 ‘독일 청년’이라는 곡에서 “우리의 얼굴은 증오로 가득 차 있고 폭력이 우리를 기쁘게 한다”고 노래하며, “유대인은 인간이 아니니 딴 생각말고 때려 죽여라”고 소리친다.
나아가 신나치 그룹들에서 ‘독일’은 단지 하나의 나라가 아니라 ‘신성한 존재’ 그 자체이다. ‘독일을 위한 투쟁’이 그들의 전부이며, “신성한 것은 사람들이 언젠가 불태워버린 책도 인간도 아니고, 오로지 조국 그 하나이다”(<0815>의 노래 ‘우리의 조국은 신성하다’).
이제 이들은 조국의 영광을 가로막는 적들을 만들어 낸다. 좌파는 “공산주의 돼지 새끼”(<란처>)이거나 “아나키스트 돼지 새끼”(<0815>)이고 이주자는 “외국인 돼지 새끼”(<돌격대>)이거나 “터키인 돼지 새끼”(<민족의 분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의 공적 1호는 ‘외국인’이다. 그들에게 외국인은 범죄자이고, 마약상이며, 포주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지되고 “우리나라에서 나가”(<돌격대>)야 한다.
공적의 2번째 자리는 ‘좌파’의 몫이다. “우리는 너희를 증오한다, 너희는 쓰레기일 뿐이거든. 우리는 너희를 증오한다, 너희는 좌파 기생충일 뿐이거든”(<겨자 머리>).
이처럼 독일 극우파 록 밴드의 ‘무기’인 노래가사는 외국인이나 좌파 및 유대인에 대한 증오나 폭력 선동을 비롯해 나치 시대를 연상시키는 독일 민족의 영광에 대한 찬미로 가득하다.

‘무기로서의 노래’ - 세계로 퍼져나가는 극우 밴드

  신나치 록그룹의 자켓 이미지

비록 독일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지만 극우파 록 밴드는 사실 오늘날 유럽 전체를 망라하는 현상이다. 북유럽의 스웨덴이나 핀란드를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를 넘어 동유럽 나라들까지, 극우파 록 밴드가 음반을 내고 정치적 극우파들의 ‘음지의 나팔수’로 활동하지 않는 나라는 눈을 씻고 찾아야 할 정도이다. 물론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극우파 밴드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세계적으로 극우파 밴드는 독일과 마찬가지로 특히 90년대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외국인이나 유대인, 정치적 좌파에 대한 증오와 폭력적인 수사로 가득한 수많은 불법 음반들을 쏟아내며 증오와 폭력을 선동하고 있다. 독일의 신나치 밴드 <돌격대>가 “노래는 탱크보다 위험한 우리의 무기”라고 외치듯, 극우파 록 밴드의 노래는 목적의식적인 강력한 선동이자 정치의식의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의 시대’가 극우 밴드와 극우 정당을 살찌운다

극우파 밴드 노래의 대표적인 소비자는 30세 이하의 남성들이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극우파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들의 노래는 듣는다. 노래를 통해 감정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무장하고 정치적인 일체감을 가지기 위해서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은 극우파 록은 “인종 전쟁을 위한 음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들 음악이 주로 극우파나 인종차별주의자 세계에서 유통된다고 해서 무시할 수는 없다. 독일에서 이들 밴드를 듣거나 음반을 가진 학생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극우 록 음악은 금지되어 있고, 또한 바로 그것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더 흥미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독일 연방 법정의 유례없는 이번 판결은 현재 가뜩이나 극우 세력의 발호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극우 신나치 밴드의 이런 선동적인 노래가 특히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데 제동을 걸려는 의도로 보인다.
더불어 이번 판결은 음지에서 ‘예술의 가면’을 쓰고 청소년들을 선동하는 극우 록 밴드뿐 아니라, 5백만 실업자라는 ‘불안의 시대’를 사는 독일 국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애꿎은 외국인이나 유대인에게 돌리며 세력을 키우려는 극우 정당을 겨냥한 매서운 경고가 되어야 할 듯하다.

빅토르 하라의 ‘해방의 노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빅토르 하라

‘노래하는 혁명가’ 빅토르 하라의 ‘해방의 꿈’은 비록 칠레 인민연합 정권의 ‘천일의 꿈’과 함께 비극적으로 막을 내리며 역사로만 남았지만, 그가 남긴 노래들은 오늘도 여전히 ‘못 다한 해방’을 노래하고 있다. 하라의 노래 <민중이 일으키는 바람>이 아직도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있기 때문이다. 꺼지지 않는 ‘민중의 바람’이 아직도 그를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민중의 바람이 나를 부르네
민중의 바람이 나를 부르네
영혼이 나를 울리는 사이
시인은 그렇게 ‘민중의 길’을
노래할 것이네
언제까지나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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