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 '바리오 아덴트로 III' 완료되면 의료공공성 완전 실현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2) - 바리오 아덴트로의 배경

베네수엘라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북쪽, 캐리비언 해에 위치하고 있는 나라로서 콜럼비아, 구야나, 그리고 브라질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전 스페인 식민지로서 아마존의 일부를 포함하는 9십만 평방 킬로미터의 영토를 점하고 있는데, 23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이다.

인구는 2천5백만이며 이 중 3분의 1이 15세 이하, 원주민은 1.5%를 차지한다. 85%가 도시지역에 거주하며, 2003년 현재 평균수명은 여성이 75.7년, 남성이 69.9년이다. 흔히 질병을 선진국형(주로 심혈관계 질환, 암, 외상 등)과 후진국형(전염성 질환, 폭력, 자연 재해 등)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베네수엘라에는 두 가지 모두가 나타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영웅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 볼리바리안 혁명이라 불려지는 과정을 통해 베네수엘라에서는 다양한 사회정책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 칼럼의 주제인 미션 바리오 아덴트로는 이들 중 하나이다.

볼리바리안 혁명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

2000년 현재, 베네수엘라의 빈곤율은 전체 국민의 50%. 22%는 (빈곤에 의해 사망할 수도 있는) 심각한 빈곤 상태에 놓여있다. 1980년에서 1989년 사이에 빈곤율은 150% 증가하였으며 전체 베네수엘라 어린이 중 3분의 1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었다. 같은 시기에 살인율은 한 달 200명, 실업률은 13%, 불안정 노동은 전체 노동인구의 50%, 그리고 15-19세 아동의 미취학율은 60%에 이르렀다.

범죄, 특히 살인율은 다른 지표들보다 소득불평등에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위에 서술한 상황들은, 물론 전적으로는 아니지만, 90년대에 베네수엘라에서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프로그램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러한 개혁의 결과로 국가의 권한이 축소되고 사회정책은 국소화되어 빈민들만을 위한 것이 되었다. 탈중심화와 사유화를 통해 보건 및 사회정책을 담당하는 국가 부서들이 불능상태가 된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이외에도 천연가스, 철강, 금, 다이아몬드 등을 생산하며 좋은 지정학적 위치, 종교적 다양성, 사회적 유동성, 안정적 민주주의, 높은 정치 참여도 등을 특징으로 하고 극단적인 국가주의나 종교 분쟁이 없다는 잇점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곳곳에서 부정과 부패, 경제불안과 빈곤의 증가, 그리고 사회적 소외에 기인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베네수엘라의 최근 정치사

 1958년~1998년: 40년 간 민주정부가 지속됨. 마지막 20년 간은 부패, 경제불안, 빈곤의 증가와 사회적 소외로 특징지어짐.
 1988년 암파로 학살: 군인에 의해 어부들이 학살됨. 이 일을 계기로 정보기관과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심화됨.
 1989년 카라카조1: 페레즈 대통령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반대하는 대대적 시위. 시위는 폭동으로 번졌으며 카라카스와 기타 도시들에서 약탈과 총격이 일어남. 3,000~3,500명 사망.
 1992년: 차베스에 의한 것을 포함한 일련의 군부 쿠테타. 모두 실패.
 1993년: 페레즈 대통령, 대법원에 의해 국부 유출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후 국회에 의해 탄핵됨.
 1998년: 반‐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기치로 내건 우고 차베스가 56.4%의 지지로 대통령 당선.
 1999년~2004년: 친정부 및 반정부 시위가 빈번해짐. 카라카스는 정부를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정치적 구역들로 명확히 나눠지게 됨. 흔한 오해와는 반대로 차베스 정권 이후 억압과 폭력이 감소했다는 실증적 증거가 있음.
 1999년: 전국민 투표를 통해 볼리바리안 헌법이 통과됨.
 2000년: 59.7%의 지지로 차베스 대통령 재선
 2002년 4월: 반‐차베스 쿠데타 48시간 만에 실패
 2002년 12월~2003년 2월: 반대파들에 의한 총파업이 일어남. 석유 생산 중단 등을 통해 베네수엘라 경제에 심한 타격.
 2004년 8월: 대통령 탄핵을 목표로 한 국민투표 실패.

한편, 보건의료부문의 문제도 심각하였다. PAHO (2003)에 따르면, 최근까지 약 60%의 주민들이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거나 받는다고 해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수술이나 외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야 하고, 의료장비가 부족하거나 쓰레기 및 하수 시설이 미비하였다. 특히 의료기관도 부족하고 전체 보건의료인 중 전업으로 일하는 사람이 반도 되지 않았으며 (46%), 의사 중 절반 이상이 제일 잘 사는 다섯 개 도시에서 진료 중이었다.

* 공공보건지출은 1993년 GDP대비 2.1%에서 1996년 1.9%로 줄었다. 이는 세계 평균인 5%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 전염성 질환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 뎅그열 1997년 1만7천 건, 설사 1989년 2십7만5천 건에서 1991년 4십9만5천 건으로 증가.
* 빈곤에 관련된 질환이 크게 증가하였다 : 말라리아, 결핵, 콜레라, measles, amebiasis.
* 사회계급별 평균수명의 격차가 심각해졌다 : 가장 부유한 층 70.1년, 가장 가난한 층 58년. 빈민은 부유층에 비해 전염성 질환에 의한 사망률이 3배.
* 90년대 의료비는 2천 퍼센트 증가. 의약품의 93%는 민간부문에서 거래됨.

미션 : 새로운 형태의 사회 정책,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

세계보건기구, 국제 금융 기구들, 그리고 초국적 기업들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해 노동으로부터 자본 쪽으로(!) 부가 재분배되고, 이에 따라 민중의 건강 수준은 악화되는 이러한 배경에서 차베스 정부는 사회적 채무(social debt)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한 사회 개혁을 시작하게 된다.

사회적 채무란 국가의 공적-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개념으로서 말하자면 수백만의 민중에게 사회적 권리와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극심한 불평등과 예방가능한 질환들 때문에 이들이 겪는 고통과 사망 등을 국가가 사회적으로 진 빚이라 이해한 것이다. 사회적 채무의 해결은 사회적 정의의 원칙 하에 모든 이의 사회권과 인권을 보장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한 실질적인 계획이 미션이다.

미션이라고 불리는 이 사회 프로그램들은 주민참여를 독려하고 그 목표를 더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관계부처의 외부에서 혹은 관계부처와 협력하여 창안되었다. 기록적으로 높은 석유 수입에 기반해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많은 수의 사회 프로그램들을 진행할 수 있었다.


바리오 아덴트로

1999년 12월, 심한 홍수로 인해 베네수엘라 역사상 최악의 산사태가 일어나 1만5천에서 2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주요 시설이 파괴 및 마비되고 우리 돈 4조 원 정도의 피해를 입었는데 이 재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쿠바 정부가 의약품과 의사들을 지원하였다.

2003년 4월과 6월 사이, 산사태 최대 피해지역 중 하나에서 일차의료프로그램을 실험적으로 시행하면서 베네수엘라 의사들에게 참여 요청을 보내고, 동시에 사회프로그램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돼 있던 카라카스의 슬럼 지역에서 진료활동을 할 50명의 쿠바 의사들을 고용하였다.

이 실험적 프로그램을 주로 이러한 일차의료가 이 지역에서 가능한 지, 지역주민의 참여 수준은 어떠한 지를 평가하는 동시에 쿠바에서 온 의사들이 지역에 적응하는 것을 독려하고 어떤 질병이 이 지역에 가장 흔한 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최초의 지역 보건 위원회 또한 이 프로그램의 결과로 성립되었다.

이 실험이 성공하자 차베스 대통령은 이 프로그램을 베네수엘라의 다른 지역들로도 확장하기로 결심한다. 2003년 6월에서 8월 사이, 500명의 쿠바 의사들이 참여하게 된다. 2003년 9월과 12월 사이, 베네수엘라와 쿠바 정부는 협정을 맺고 의사, 간호사, 치과의사, 물리치료사, 스포츠의사, 의료교육인 들이 대거 베네수엘라로 건너오게 되어 2003년 말에는 1만 명 이상의 쿠바 의사들이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지역들에서 진료하게 되었다.

하루 평균 진료수는 26건이며 이들은 왕진, 교육, 건강증진, 공공보건단체의 지역 대표들 훈련과 같은 일도 함께 진행한다.

2003년 12월에는 바리오 아덴트로 대통령직속위원회가 설립되어 전국적 일차의료 프로그램 시행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보건사회개발부장관 뿐 아니라 노동부, 에너지광산부 장관도 참석하며, 국영석유회사(Petroleos de Venezuela) 대표, 바리오 아덴트로 시민사회 대표, Fondo Unico Social 대표, 시장(市長)들과 지역단체 대표들도 함께 한다.

이 위원회 결정에 따라 2004년 말까지 5,000개의 의원이 지어졌으며, 2백5십만 가구, 1천만 명에게 직접적인 의료서비스를 완전 무상으로 제공하게 되었다. 지난 6월에는 가난한 지역에 병원을 설립하는 바리오 아덴트로 II가 시작되었으며 향후 2년 내에 종합병원 시스템을 완전히 개혁하는 바리오 아덴트로 III를 완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베네수엘라는 200년 역사상 처음으로 진정한 공공보건 시스템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바리오 아덴트로가 넘어야 할 과제들도 있다. 진료수가 엄청나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지난 기사 참조) 그러한 의료서비스를 통해 과연 건강수준이 증진된 것인지, 이미 건설되어 있는, 그렇지만 비효율적이고 불평등한, 기존의 의료시스템과의 관련성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여전히 모자란 지역 사회 일차의료는 어떻게 확대해나갈 것인지, 쿠바의 의료인력을 베네수엘라 의료인력을 대체할 방법과 계획은 어떤 지 등. 이와 관련해서는 이후에 차차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다음부터는 바리오 아덴트로 건설에 참여했던 정부 관료, 콘술타리오(진료소)에서 진료 중인 베네수엘라인 의사, 그리고 환자들과의 인터뷰 내용을 약 5회 정도에 걸쳐 연재하려 한다. 생생한 육성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쿠바 의사들

쿠바는 필리핀과 함께 수출을 목적으로(라고 표현하면 약간 어색하지만) 의료인력을 생산하는 나라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민간의료가 발달한 필리핀의 경우 의사들은 주로 미국 등 선진국으로 이주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쿠바의 경우 세계 약 40개의 저개발국에서 인술을 펼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이 모두 사회주의이거나 공산주의 국가들은 아니다.

카라카스는 매우 정치적인 도시인데, 신기하게도 콘술타리오 내에는 어떤 정치선전문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해 베네수엘라를 여행 중이었던 한 오스트레일리아인은 ‘쿠바 의사들은 매우 프로패셔널하기 때문에 정치적 목적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위해 다른 나라들로 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바리오 아덴트로 초기, 월급 600불 정도에 의사들을 리크루트하였는데, 50명 정도의 베네수엘라 의사들만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도 그럴 것이 베네수엘라의 의료비는 미국과 맞먹는 정도이다. (neoscrum님 블로그에 가면 카라카스 물가를 찾아볼 수 있는데, 평균 임금은 낮은 반면에 물가는 서울과 같거나 더 비싼 수준이다.) 당시 쿠바 의사들은 한 달에 200달러를 받기로 하고 베네수엘라로 이주하였는데 현재는 월급이 조금 올랐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바리오 아덴트로가 시작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물론 쿠바의 의료인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공의료부문 개혁을 시작한 베네수엘라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라틴 아메리카에는 쿠바의 의료인력이 지척에 있음에도 그 동안 그런 정책을 시작하지 않은 다른 나라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말

1 이 칼럼의 내용은 주로 Sergio Rueda, Carles Muntaner and Francisco Armada, VenezuelsBarrio Adentr : A new kind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and participatory democracy in health care (가제와 MSDS,Health advances in Venezuelan Revolution을 기초로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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