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죽거리의 서천 가는 길, 몸이 트인다

[에뿌키라의 장정일기](4) - 5월 14일 딴죽거리의 일기

왼발의 무게가 오른발로 자연스레 옮겨지지 않습니다. 걷는다는 걸 느낍니다. 몸은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발로 바닥을 차야지만 앞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제 걷는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심장은 뛰고. 양손은 번갈아 앞뒤로 흔들며. 무릎은 굽혔다가 펴야 합니다. 그리고 걷는 데는 힘이 듭니다. 내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는 걸 점점 뚜렷하게 느낍니다. 오늘은 그렇게 40km를 왔습니다.

내 몸은 혼자 걷지 않습니다. 혼자 걷는다면 이렇게 걸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함께 걷다가 쳐지면, 같이 노래를 합니다. 친구들의 노래는 신기하게도 내 몸을 이끌어줍니다.

딴죽거리가 걷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옛 이름을 찾았습니다. 대학교 다니던 때 세상에 딴죽 걸겠노라고 필명을 만들고는 매일같이 학교벽에 대자보를 붙였습니다. 분노도 있었고 눈앞의 대상을 내 말로 녹여버리겠다던 치기도 있었습니다. 그 모두가 좋았지만, 어느덧 말한다는 사실에 몸도 마음도 비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말하면 더 공허해지는 이상한 시기에 지금의 연구실을 찾았습니다. 연구실에서는 세상을 향해 소리지르는 법이 아니라 조리 있게 친구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 건네는 법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6년이 지났습니다.

얼마 전에 지금 같이 걷는 친구들과 대추리에 갔었습니다. 5월 4일. ‘행정대집행’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대추분교 앞에서 주민들과 함께 누워 이 곳에 그저 있겠노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경찰은 한 명 한 명을 떼어 끌고 갔습니다.

그 때 내 몸은 참 별 것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별 생각을 하고 별 말을 지껄여도 결국 몸은 진입하는 시간을 다만 몇 초 정도 늦출 뿐이며, 기껏 목소리를 더해 조금 더 소란스럽게 만들 뿐이구나. 결국은 이렇게 지켜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구나. 건방진 생각이었습니다. 바로 옆에서 600일을 넘도록 버텨 오신 그 주민분들을 보고도 말입니다. 아직 저는 제 몸을 잘 모르나 봅니다. 몸이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나 봅니다.

다시 걷습니다. 오늘은 새만금에서 떠나 온 길이 서천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걸을수록 몸은 지치지만, 더 잘 감동합니다. 마음에 몸에 솔직해져 갑니다. 지금껏 300리 길을 걸어온 내 다리에 감사하고, 함께 구호를 외칠 수 있는 내 입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힘을 주는 친구들의 여러 표정에 감사합니다.

제 몸은 소리지르고 있습니다. 그것을 말로 옮기면 무엇이 될지 모르지만, 발이 수 만 번 바닥을 딛고 거쳐 온 길 위에서 만난 하늘과 나무와 물과 바람과 인정이 제 몸에 묻어나, 몸도 뭔가를 말하게 됩니다.

제 몸은 친구들과 함께 걸을 수 있습니다. 걷지 못하는 몸이 되더라도 친구들과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장정 동안 몸에게 배우고 있습니다. 함께 걷는 친구들이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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