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민생법안 표류가 차라리 민생에 도움

임시국회 주요 민생법안, 민생위협법안이 대부분

오늘부터 한 달 간 임시국회가 열린다. 6,7일에는 교섭단체 대표 연설이, 8-9일과 12일에는 정치.통일. 외교안보, 경제, 교육.사회.문화 분야의 순으로 대정부 질문이 예정되어 있다. 본회의는 2월 23,28일, 3월 5,6일 네 차례 열려 주요 법안을 처리한 뒤 폐회하게 된다. 임시국회는 열린우리당 의원의 집단 탈당과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 등으로 벌써부터 순조롭지 않을 것을 예고한다. 열린우리당은 법안 처리를 앞두고 사전 당정협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한나라당도 당 정체성 논란 등 대선 주자의 움직임에 휩쓸려 잡음이 끊이지 않는 분위기다. 보수언론은 민생 문제를 비롯한 국정 현안이 뒤로 미루어질 것을 우려하며, 정쟁보다 민생법안 처리에 집중하라며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민생법안으로 거론되는 주요 법안은 민생을 다루는 법안이란 점에서 틀린 말은 아니다. 통과되는 법안 하나하나는 인민의 삶 전반에 크고작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민생법안이 실제 민생을 위한 법안인지는 의문스럽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주요 법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은 민생을 위협하는 법안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민생법안 대부분이 민생을 위한 법안이 아니고 지배계급이나 자본분파의 이해를 도모하는 법안이라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다뤄질 법안으로 특히 주목받는 것은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통합법),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공정거래법), 사회보험료의부과등에관한법률(사회보험법), 주택법, 국민연금법, 사립학교법, 기초연금제, 노인수발보험법 등을 꼽을 수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은 은행, 종금사, 증권사, 선물회사, 자산운용사, 신탁회사, 보험사, 여신전문회사 및 서민 금융기관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지는 현행 금융서비스를 은행, 금융투자회사, 보험사, 여신전문회사 및 금융기관 등으로 크게 4개로 통합 재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러한 시도는 법안 내용이 공개된 최초부터 해외 초국적자본운동을 보장하는 신자유주의 금융정책의 완결판으로 비판받은 바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 투기자본은 투자은행으로서의 규모를 갖추기 위해 특화상품 개발과 증권사간 치열한 인수합병 경쟁에 돌입하게 되고, 국내 금융자본 역시 시장 점유를 위해 외국자본과의 합작, 판매계약 등에 나서게 된다. 즉 외국에서 핵심인력이 유입될 뿐만 아니라, 특수고용인 판매권유대행자 수가 늘어나는 한편 단순 위탁매매 업무를 담당하던 상당수의 인력의 도태가 예고된다. 즉 금융산업의 발전이란 해외 투기자본의 운동을 보장하는 금융시장으로서의 기능이 발전하는 것이요, 고용 확대란 특수고용노동자의 확산이 초래됨을 의미한다.

공정거래법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대상 기업을 축소, 지주회사의 상장 자회사 지분 요건을 완화하는 것으로, 그동안 자본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내용을 담고 있다. 한나라당은 조건없는 폐지를, 열린우리당은 적용대상 기업집단 기준 상향과 출자한도 상향 조정 입장으로 약간의 입장 차이가 있지만, 자본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4대 사회보험 보험료의 부과,징수 등 업무를 사회보험료징수공단에서 통합 처리한다는 내용의 사회보험법은 사회보험노동자의 고용 문제로 직결되는 것으로, 4대 사회보험노조 등이 강력 반발해온 법안이다.

2008년부터 연금지급액을 낮추는 등 급여 수준과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이른바 '더내고 덜받는' 국민연금법은 조종 폭에 대한 가입자의 동의 절차를 밟지 않은 데다, 보험료율 인상도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어 불신이 가중되고 있다. 기초노령연금도 본래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장차 목표급여율이 법률이나 부칙에 분명히 명시될 필요가 있으며, 기초노령연금 지급범위도 최소한 노인의 80%로 설정해야 하고, 장애인 지원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노인수발보험법은 그동안 개인 및 가족의 책임으로 내맡겨졌던 노인수발을 사회적으로 책임진다는 도입 명분이 무색한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본인 부담 가중과 공공인프라 확충방안이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수발노동자의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노인수발에 대한 시장화 메카니즘 형성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민간노인수발기관은 '노인수발시장' 형성을 통해 얻는 이익을 챙기게 돼 거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 역시 불안정노동으로 몰고 갈 것이 우려된다.

임시국회에 올라온 법안 중에는 물론 민생법안의 이름에 걸맞는 법안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 정당과 언론 등이 주목하고 있는 주요 법안 대부분은 민생을 위한 법안이기는커녕 민생을 불안하게 하고, 법안과 관련된 각 분야 사회구성원들의 고용과 생존을 위협하는 기조를 공통 맥락으로 하고 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이전투구가 계속돼 차라리 하루라도 법안 처리가 늦추어지는 게 민생에 도움이 되겠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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