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계급투쟁의 역사는 풍부해”

[인터뷰]아그네스 쿠, “다른 아시아 역사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이 10회로 막을 내렸다. 동일한 제목의 책을 펴낸 아그네스 쿠가 왜 여성 게릴라 운동에 주목하고자 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는지를 만나서 들어보았다. 10회 연재를 허락해 주고 많은 도움 준 아그네스 쿠에게 감사드린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왜 말라야 공산당에 주목하게 되었나

내 가족의 배경 때문이다. 내 가족은 중에 국보법으로 구속된 가족들이 있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정치 문제는 터부시 되었다. 부모님들은 내게 학교에 들어갔을 때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말라고 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범죄자 취급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이런 편견에 대해서 많이 걱정하셨다. 나도 이런 정치적 박해로 내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난 호기심이 많다. 싱가폴, 말레이시아 그리고 중국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많았다.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로 중국을 떠나 싱가폴로 오면서 중국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계셨다.

난 영어학교를 다니긴 했는데, 싱가폴에서 중국어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의 경우는 중국 공산당에 대해 알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영어학교를 다니면 이런 것이 단절되게 된다. 중국어로 교육을 받게 되면 좌파 운동에 관심이 많아지고, 영어로 교육을 받게 되면 영국에 많은 호감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89년에 우연히 말라야 공산당 출신의 사람들을 알게되었다. 매우 우연이었는데, 이 기회를 통해 평화정착촌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난 이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람들은 테러범이라는 평가를 받아왔고 나도 그 연장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모험과 호기심, 두려움을 가지고 1999년에 그들을 만나기 위해 갔다. 마을을 방문한 후 내가 싱가폴로 들어가면 잡힐까, 구속될까 두려웠다.

그런데 내가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을 만났을 때, 공포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사람들도 똑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테러범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정착촌은 매우 깨끗했고, 공동체 방식으로 마을을 운영하고 있었다. 집은 깨끗했고, 일반적으로 모든 집들이 관리가 잘 되고 있었다.

내 첫 번째 인상은 모든 집들이 관리가 잘 되고 있다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모두 아주 단촐한 옷을 한 농부들의 모습이었지만, 아주 잘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러나 일단 말을하기 시작하면 보통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았다. 많은 정치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된다. 정치적인 의식성이 느껴진다.

이것이 처음 느낌이었다. 난 이런 강한 인상을 받으면서 나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 싱가폴과 말레이시아에 대한 존재도 다시 보게 되었다. 내가 누구인지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의 반이 폭력적으로 정부와 학교, 그리고 부모님에 의해 단절되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왜 ‘여성’ 게릴라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가

남성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건 쉬운 일이다. 남성들은 시간도 많고, 교육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항상 바빴다. 집안일도 해야 하고, 농사도 지어야 하고, 딸, 아들, 손자, 손녀들을 돌봐야 하기도 하다.

내가 자신들의 역사를 한번 써 보는 것이 어떠냐고 했을 때, 항상 ‘바쁘다, 교육을 못받았다, 말할 게 없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사실 말할 게 더 많다. 여성들은 자신에 대한 신뢰감이랄까 그런게 부족했다.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물어보라고 떠넘기기 일쑤였다.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일단 그들이 말하기 시작하면 말할게 참 많았다는 걸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뷰 하면서 매우 즐거웠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에 자신감을 가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99년에서 2003년까지 4년이 걸렸다. 인터뷰가 2000-2003 2년간 준비하는 시간이 걸렸다는 이야기다. 그들의 경험이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치료가 되기도 한다.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치료도 된다. 우리는 침묵하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이건 매우 큰 진전이다.

내가 목격한 것은 남편도 없이, 남성 지도부도 없이 그들이 인터뷰에 응해서 했다는 것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은

내 책에 있는 한 여성은 인터뷰할 때, 신랑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매우 재밌다. 끼어들기도 하고, 고쳐주기도 하고, 갑자기 둘이서 싸우는 일도 있었다.

한 여성이 인도네시아에서 아이 낳는 것에 대한 당의 정책이 너무 엄격했다고 불평한 적이 있었다. 매우 정치적인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산모에게 충분한 음식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 갑자기 남편이 끼어들어서 “당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면 안돼”했다.

그러자 그 여성이 “이게 내 경험이야 당시에는 진짜 엄격했다고” 되려 이렇게 말했다. 젠더, 남성과 여성, 당과 여성 이런 점에서 여성의 이야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글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싱가폴,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아시아의 일반적인 태만, 중국, 한국의 역사 나아가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까지도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연결고리들을 잘 보지 못하고 있다.

좌파 운동의 공동의 역사, 동남아시아 좌파 운동의 역사에서 2차 대전을 겪을 당시 계급 지향적인 운동이 매우 강했다. 한국의 독자들이 다른 아시아 국가의 역사와 민중들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동남아 지역의 활동가로서 나도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을 해 왔고, 자본주의를 넘어 자유로운 세상을 향해 투쟁해 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 내 바람은 상호존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도네시아가 매우 가난하게 보일지라도, 말레이시아가 반민주적으로 보이고, 캄보디아가 후퇴하고 있더라도 이런 국가들이 매우 풍부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한국인들도 인식해야 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많은 것들이 서로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먼저 이런 상호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이 책이 발간 된 이후 바통마을 정도를 빼고는 정착촌들을 방문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무슬림 무장세력들로 인해서 그렇게 되었다. 내 바람은 곧 이 마을들을 다시 방문해 이들의 소식을 확인하는 것이다. 최근에 들은 좋은 소식은 소개된 여성게릴라들이 태국 시민권을 얻었다는 소식이다. 이 책을 발간할 당시만해도 그렇지는 않았다. 이건 이런 여성 게릴라로 소개되었던 사람들이 외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반가운 소식이다.

앞으로도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역사에 대해 계속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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