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열풍, 팍스 아메리카나도 규제?

[칼럼] 스트리트 킹과 AFKN

“용의자가 흑인, 동양인이면 즉각 쏴 죽이고 백인이면 집에 데려다 준다”
지난 17일 개봉한 새 영화 ‘스트리트 킹’의 형사 톰이 한 말이다. 톰이 마약상에게 ‘곤 니치와’라고 인사하자, 마약상은 “우린 일본인이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건 모욕”이라고 한다. 마약상은 한국말로 욕 하면서 죽어간다.

형사 톰 역할을 한 할리우드 톱스타 키애누 리브스가 홍보차 한국에 왔다. 배급사인 21세기폭스의 한국자회사는 기자시사회에서 일부 기자들에게 인종차별 장면을 보도하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심지어 각서를 받았다.

어디 스트리트 킹 뿐일까. 더스틴 호프만이 나온 <아웃브레이크>에선 원숭이가 한국 국적의 태극호를 타고 미국에 세균을 감염시킨다. 마이클 더글라스 주연의 <폴링 다운>은 ‘한국 놈들은 미국서 돈을 벌면서 일체의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고 욕한다. 조 모튼이 주연한 <다른 혹성에서 온 친구>에선 외계인이 이른 새벽 뉴욕에 와 처음 만나는 지구인이 미국에서 야채상을 하는 한국인이다. 밤낮 안 가리고 돈벌이만 하는 돈의 노예, 한국인을 그린다. 케이블TV OCN에선 오늘도 행성의 파편이 떨어진 아수라장의 미국 도심에서 택시를 탄 한국인 커플이 “I Wanna Shopping”이라고 택시 운전사를 채근하는 브루스 윌리스의 <아마겟돈>을 방영한다.

뭐니뭐니 해도 한국 비하와 왜곡의 원조는 AFKN(주한미군방송)이다.
AFKN에서 1974년 방영한 인기 드라마 ‘매쉬’는 한국 전쟁 중 미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한 코미디였다. 드라마 구조상 한국인도 많이 나왔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말을 했다. 할리우드에서 제작할 때 중국인 엑스트라들을 썼다. 1970년대 한국 청소년들은 집에 오면 ‘제너럴 호스피털’ ‘가이딩 라이트’ 같은 오후 통속극, 이른바 ‘소프 오페라’에 빠졌다. 선정적인 장면들은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을 자극했다.

MBC 기자 유재용은 ‘세서미 스트리트’와 드라마 ‘라이언스 호프’를 보며 영어를 배웠고,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를 보며 소년기를 보냈다고 고백했다.(AFKN 키드의 미국 들여다보기, 유재용, 나남, 2007. 10) 시트콤 ‘코스비 가족’은 우리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우울한 70년대의 일상을 잠시 잊고 아메리칸 드림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영화 괴물의 봉준호 감독도 AFKN의 심야영화를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봤다고 했다.

AFKN의 전신은 라디오방송 AFRS다. AFRS는 1950년 10월3일 냉전의 최전선 한국 땅에서 선무공작용으로 태어났다. AFRS는 북한의 항복을 촉구하는 맥아더의 성명을 첫 방송으로 내보냈다. TV 방송 AFKN은 1957년에 시작했다. KBS보다 4년 빠른 한국 최초의 TV방송이었다. 한국 정부는 전 국민의 공동 소유인 지상파 2번을 당당하게 주한미군에 내줬다.

AFKN은 선정성과 한국 문화의 무지로부터 출발한 왜곡과 비틀기로 비판받았다. 비판에 직면한 우리 정부는 20여 년 전 AFKN 프로그램을 규제하려 했다. 당시 주한미군은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내세우며 반대했다. 팍스 아메리카의 극우주의를 확대재생산하기 위한 이념적 이유였다. 거꾸로 주한미군은 지난해 말 국내 케이블TV 사업자들의 AFN-K(2001년 바꾼 이름)의 한국 가정 재송신을 금지해 달라고 한국에 요청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한국 가정에선 주한미군방송을 볼 수 없다. 미국 방송제작자들이 최근 한국에서 부는 미드 열풍 때문에 한국에 수출할 프로그램을 AFN-K가 먼저 방영하는 걸 막으려는 상업적 이유 때문이다. 국가도 국경도 없는 세계자본주의의 무서운 두 얼굴이다.
덧붙이는 말

이정호 님은 전국공공노동조합 교육선전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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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 , 팍스 아메리카나 , 스트리트 킹 , AFK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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