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만 살리면 뭐하나?

기업 살리기 VS 노동자 살리기, 노동자에게 듣는다

  날이 환한 저녁 5시 30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주간 노동자들이 퇴근 버스를 타기 위해 계단을 오르고 있다.

세계 불황의 여파는 곳곳에 미치고 있다. 불황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저마다의 목소리도 터져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재계, 주류 언론은 ‘기업 살리기’를 외치고 진보진영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직접 지원확대를 얘기한다.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선 12월 국내 자동차 산업은 일제히 가동률을 낮췄다. 자동차 산업 감산에 따라 터져 나오는 주류 언론 논조는 ‘감원’ ‘임금 동결’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다.

경제위기 해법으로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있고 살 수 있다.’는 고통분담론을 현장 노동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표적 대기업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노동자들은 말한다.

“고통은 이미 분담하고 있다.”고 “임금의 3~40%를 차지하는 연장근로 수당이 삭감돼 이미 고통분담 아니 전담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통분담론이 결국 ‘노동자 죽여, 기업 살리기’라며 비정규직과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 클 것이라며 반발한다.

경제위기는 서민경제 뒷전이던 정부의 책임
주말도 없이 밤낮으로 일만 하며 살았다
11월만 해도 잔업 특근 빼곡했는데 하루아침에 없어져 실질임금 삭감돼


의장부 김00씨, 40대 초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근무한지 13년 되는 김씨는 중학생 자녀 둘에 유치원생 아이가 있다. 그는 때론 귀족 노동자라 손가락질 받기도 한 정규직 노동자다. 야간수당을 받는 교대근무와 잔업, 특근을 다했을 때 그는 세금을 제하고 월 3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세 아이 교육비와 노부의 병원비와 보험료를 우선 지출하고 나머지를 생활비로 쓴다. 비정규직에 비해 형편이 낫다는 그도 세 아이에 노부 모시며 적금은 쉽지 않다.

“토, 일요일 없이 특근, 잔업하면서 회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한 달에 특근 3, 4개를 해야 생활이 유지가 된다. 가정과 등 돌리고, 부모 역할도 못하고 아내와 살가운 대화 한 번 맘 편히 못 나누고 밤낮으로 일만 하면서 살아온 세월이다.”

일만 하고 산 김씨에게 경제위기라고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는 자동차 감산 문제는 대놓고 말은 못해도 그를 속 터지게 만든다. 98년 IMF 외환위기 시기를 겪어본 터라 불안감도 크다. 소위 강성노조라 불리는 “현대차노조”가 있지만 경제위기라 불리는 시기에는 노조조차 고용과 임금을 보장되는 ‘안전망’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자동차 감산이다, 세계 경제가 안 좋다 말하는데 솔직히 답답하다. 우리는 묵묵히 일만 했고 가진 사람들이 배 채우다 그렇게 된 건데 이제는 구조조정 한다고 한다. 말이 안 된다. 정부는 경제 살리자고 하며 여전히 서민경제는 뒷전이고 부자 10%만을 위한 정책만 편다. 10%가 나라 살리는 것도 아닌데……. 서민 부담이 줄어야 경제가 살아나는 건데, 돈 많은 사람들은 국내에서 돈 안 쓴다. 세금 탈세 얘기도 다 돈 있는 사람들 얘기다.”며 정치한다는 사람들도 ‘서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각성해야 한다.’ 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자동차 노조가 고통분담에 동의했다는 언론의 보도를 빌어 경제위기에 따른 ‘고통분담론’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더욱 언성을 높였다. IMF이후 경제가 호황을 누렸을 때도 10년 가까이 흑자를 기록하던 현대자동차는 그때도 매년 “회사가 어렵다”는 죽는 소리만 했다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우니 회사는 노조가 모든 것을 양보하라고 할 것이다. 회사는 그런 식으로 요구하면 안 된다. 노동자들을 살리기 위한 정부와 회사의 전향적인 자세가 더 중요하다. 고용을 보장하고, 실질임금을 보장하고, 복지도 축소시키면 안 된다. 회사는 흑자이면서 매년 어렵다는 소리를 했고 노동자가 매년 파업을 해야 마지못해 임금을 인상했다.”

이어 그는 회사의 경영에도 정면으로 문제제기 했다. “불과 한 달 전인 11월에 회사가 주, 야 4개씩 특근 8회를 계획했는데 노조가 체육대회 한다고 2개 빼달라고 했다. 그 때 회사는 물량이 많다며 억지를 부렸는데, 눈 뜨고 일어나보니 잔업, 특근 하지 말라고 했다. 회사 경영 이래도 되나? 회사 살려 논 노동자는 안중에도 없다. 무책임한 거다.”

언론의 자동차 감산 연일보도는 인원감축 임금삭감을 위한 수순
회사가 말하는 위기감 못 느껴, 아직 야단법석 떨 단계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더 힘들 터


엔진부 박00, 20대 후반

2004년에 입사한 박씨는 미혼이고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다보니 임금 중에서 아무래도 생활비와 경조사비가 많이 들어가는 편이다. 기본급이 터무니없게 낮아서 특근과 잔업을 하지 않으면 임금 차이가 많이 나지만 엔진부에서 이제 5년차 근무하는 박씨는 잔업, 특근이 없는 회사 생활을 한지 오래됐다.

엔진공장이 물량이 없는 이유에 대해 그는 회사에서 노동 강도를 올려 빠른 시간에 물량을 뽑는 것과 물량 이관으로 아산공장에서 대형차 엔진만 생산되는 문제를 꼬집었다.

이어 언론에서 연일 보도되는 자동차 감산 문제를 묻자 그는 “아직은 별로 위기감을 못 느낀다.”고 전했다. 회사가 손해 보는 상황도 아니고 아직 그런 말 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언론에서 “야단법석 떠는 측면”도 있다며 이것이 “인원감축을 위한 수순”이라는 것이다.

의장부 김씨와 마찬가지로 박씨 역시 “노조의 고통분담은 현재 회자가 흑자인 상황에서 양보하고 말고 할 게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이어 자동차 감산과 정부, 회사가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고통분담에 따른 해법으로 그는 “주간연속2교대가 노동자들의 입장으로 빨리 안착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주변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주간연속2교대 관련 노조 합의에 불만이 많은” 상태이고, “노조가 이 상태를 유지하다가는 올해도 또 안 될 가능성”이 있기에 불안해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언론플레이, 강성노조 잡아야 구조조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자본의 계산
회사는 장기간 흑자, 올해도 흑자, 현대 그룹은 돈 많아!


의장부 김*씨, 30대 초반

차체 내 조립 업무를 담당하는 K씨는 자동차 감산문제가 언론에서 보도될 때 잔업, 특근으로 일하느라 정신이 없어 흘려들었다. 공장에서 잔업, 특근이 지난주부터 없어지자 이제 피부로 와 닿는다고 전했다. 임금도 따져보니 대략 한 달에 70만원이 넘게 덜 받게 된다.
그가 보기에는 자동차 감산문제가 대두되니 공장에서 IMF 외환위기를 경험한 2000년 이전 입사자와 외환위기를 경험하지 않은 2000년 이후 입사자들의 불안감 정도가 틀린 것 같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안감은 더 심한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본급만 가지고 생활하기란 불가능하며, "연일 잔업, 특근을 뛰며" 생활비를 벌었다. 정규직 노동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잔업, 특근이 없어지면 "경제 위기를 체감하는 정도가 더 클 것"이다.

자동차 감산 문제 언론 보도에 대해서 그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언론의 보도는 노조 탄압 분위기를 잡아가려는 수순인 것 같다. 경제위기라고 떠들면서 자동차 감산을 말하는 것은 자본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 하려는 명분으로 보인다. 강성노조를 먼저 잡아놔야 순차적으로 정리해고가 가능하다는 분위기 조성인 것 같다. 실제 경제 위기의 여파는 지금 당장 판단하기 어려운 지점 아닌가.”

또한 노조의 고통분담 논리와 회사의 현장 탄압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회사가 경제 위기를 틈타 ‘기초 질서 지키기’ 따위로 노동자들을 옥죄어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체 경기가 안 좋아지면 버틸 장사는 없겠지만 회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신뢰는 바닥이다. 하지 말라던 해외공장 짓고, 해외로 돈 빼돌리고……. 과잉생산, 과잉투자 해서 경제 위기 상황을 낳은 것은 노동자가 아닌 자본이다.”며 그는 주간연속2교대의 정착이 현재 자동차 노동자들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회사가 조건이 좋을 때도 주간연속2교대는 노조의 입장으로 합의되지 않았는데 경제 위기가 들먹어지는 상황에서 과연 주간연속2교대가 올바르게 정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올해 주간연속2교대를 노동자의 입장으로 합의하지 못한 노조를 비판하기도 했다.

경제 살리기 아닌 노동자 살리기 해야
부품사 노동자들 타격 더 심할 터, 주간연속2교대, 결국은 노-자간 힘 싸움


의장부 K씨, 30대 후반

뒤늦게 아이가 생겼다는 김씨는 그동안 무리 없이 생활했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패배의식에 빠져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걱정하고 신세 한탄한다고 그와 동료들의 삶이 나아질 것 같진 않다.

"경제위기랍시고 3시 10분 쉬는 시간에 나오던 간식도 이제는 안 나온다. 곧 있으면 회사에서 연월차도 쓰라고 강요할 것 같다."

의장부 박씨와 마찬가지로 그가 보기에 회사의 정책도 이상하다. 11월까지만 해도 잔업, 특근이 꽉 잡혀 있었는데 회사는 12월이 되자 잔업, 특근이 없앴다. “이게 말이 되는가?” 경제 위기가 지금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그가 보기에 회사와 정부가 짜고 노조 길들이기에 나선 것 같다. 회사, 정부가 말하는 게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기업이 살기위해 허리띠 졸라매고 구조조정 한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의 근본 문제는 자본의 문제다. 1년에 천만대 이상 과잉생산 해놓고 왜 노동자보고 고통 분담하라는 것인가.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노동자 살리기를 해야 한다.”

현대자동차 아산공장도 그렇지만 부품사들의 타격이 더 심할 것 같다. 원청사가 부품사에게 더 많은 CR(납품단가인하)을 요구할 것이 뻔하다. “부품사들은 원청 때문에 부품 단가가 깎였다고 부품사 노동자들에게 말 할 것이고, 이는 임금 동결, 삭감, 정리해고 등 고스란히 부품사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전가될 것이 뻔하다. 2, 3차로 넘어갈수록 실질생계 문제는 더욱 심각할 것이다.”

주간연속2교대와 관련해 그는 “예전에 경기가 좋았을 때 합의했으면 더 잘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은 순진한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중요한 것은 회사의 이데올로기에 말려들어가다 보면 월급제이건 주간연속2교대건 소용없는 말이라는 것이다. 매 순간이 노-사간의 힘 싸움이며, 경제 위기를 노동자들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자동차 노동자들은 주간연속2교대를 노동자의 주장으로 빠르게 안착시켜야 한다. 노동자는 회사가 시킨 데로 일한 것 밖에 없다. 자본과 정부의 과잉생산으로 경제 공황의 위기까지 앞두고 있는 것이다.”(정재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