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은 자기 조절능력을 갖췄나

[이종회 칼럼] 4. 전쟁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4. 전쟁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얼마 전 WTO 사무총장 파스칼 라미는 경제위기를 대처함에 있어 보호무역이 강화된다면 전쟁으로 갈 것이며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WTO DDA를 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1929년으로 시작된 대공황이 보호무역을 매개로 하여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던, 그가 악몽처럼 떠올리는 전쟁의 역사는 반복될 것인가.

미국에서 자동차살리기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전세계도 마찬가지다. 물론 WTO 협정을 위반하지 않기 위해 구제금융이든 보조금이든 어떻게 불러도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살리려는 노력은 가상할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다. 앞서 언급했듯 전세계 생산설비는 수요에 비해 3천만대 이상 과잉이어서 시장을 확보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이 될 것이다. 돈 들여서 살려놓았는데 어느 누가 자기 시장을 내주겠는가. 필시 관세를 높여 다른 나라의 자동차가 못 들어오게 막는 것이 다음 수순이다. 결국 보호무역체제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패권국의 보호무역은 계속

대공황 직후 미국이 자국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2만개 이상 수입품에 최고 4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 홀리 관세법을 통과시키자, 주요 당사자였던 유럽도 보복관세를 매기면서 관세전쟁 즉 무역전쟁이 시작되었다. 지금과 닮아있지 않은가. 이후 불길은 곧 유럽국가들 사이의 관세전쟁으로 옮겨 붙었고, 이렇게 가속화된 위기가 결국은 히틀러의 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는 배경이 된다.

보호무역을 2차 대전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판단하고, 관세율을 인하하고 회원국끼리는 최혜국대우를 베풀어 관세의 차별대우를 제거하고, 수출을 늘리기 위한 여하한 보조금의 지급도 금지하기로 합의한 것이 GATT이다. 그리고 공산품으로 제한되어 있던 GATT체제에 농산물, 서비스와 지적재산권 분야 등을 포함하는 우루과이라운드가 합의되고 세계교역질서를 창설한다는 명목으로 WTO가 출범하였다.

그런데 12월 중순, 이견을 조율하는데 실패하여 WTO DDA 타결은 물건너갔다. 씨애틀, 카타르 도하, 칸쿤, 홍콩에서의 각료회의를 거치면서도 핵심 쟁점이었던 농산물은 물론, 공산품까지 그리고 서비스부문은 제대로 논의도 못 해본 채 주저앉은 것이다. 이미 한국원정대가 대거 몰려가 휘저었던 홍콩 각료회의가 끝난 후 향후 몇 년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당시에는 EU무역대표부 수장이던 파스칼 라미가 언급했던 바다. 그리고 GATT체제의 연장이랄 수 있으며 자유무역을 상징하는 WTO DDA의 지금의 결말은 그에게 전쟁을 연상케 했을 것이다.

WTO는 전세계 138개국(홍콩각료회의 당시)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FTA는 체결국가에게만 배타적으로 적용되는 규정이어서, 둘 다 자유무역을 상징할지라도 WTO와 FTA는 서로 배치된다. 그리하여 FTA는 주로 지역블록을 구축하는 매개로 체결되어 왔으며, 가장 진전된 지역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지금의 EU를 있게 한 EEC가 사실은 FTA보다 더 강력한 관세협정으로 시작되었고, 북미는 FTA를 매개로 NAFTA로 묶여 있다. 그리고 미국의 반대로 더딘 진행을 보이고 있지만 한, 중, 일 그리고 ASEAN이 FTA로 ASEAN+3를 완성해가고 있다. 단지 좌파정권이 주를 이루는 남미국가들은 FTA가 아니라 민중무역협정(People's Trade Agreement)로 하나되고 있음이 차이일 뿐이다.

쇼비니즘과 보호무역은 동전의 양면

그런데 2차 대전 이전에는 과잉축적, 과잉생산의 위기를 해소하는 1차적인 창구가 식민지였다. 강화도조약의 핵심내용이 ‘일본과 조선 간의 무역에 있어 관세가 없고, 결제통화는 엔으로 하고, 조선에서의 일본인은 일본법의 적용을 받는 치외법권을 인정’하는 조항들이 핵심이었던 것이 이를 얘기한다. 따라서 관세전쟁, 자본전쟁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제국주의 국가 사이의 보호무역체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식민지를 포함한 제국주의 국가블록 사이의 보호무역체제가 강화됨으로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런데 자본의 공황시기를 계기로 블록체제가 강화되고 있는 것, 즉 WTO로 대표되는 다자주의가 주저앉고 FTA를 매개로 하는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있음은 파스칼 라미가 얘기하는 또다른 전쟁의 그림자이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고 징조만으로 결과를 점치기는 어렵지만,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핵무기가 있어서 자본이 스스로 ‘조절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다. 나 역시 과잉된 논리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조절능력이 1차 대전이라는 엄청난 참화를 겪은 후 알면서도 2차 대전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자본운동의 본질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끊임이 없어야지만 넘어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을 찾으려면 이주노동자를 색출해 축출”해야 한다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이라는 한나라당의 토론회를 보면서 전율을 느끼게 된다. 당시에도 그러했듯 이주노동자에 대한 태도가 시금석이기도 하지만, 민족, 국가이데올로기는 보호무역체제의 동전의 양면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