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우리집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2)

몸에도 좋지 않은 술! 얼른 마셔서 없애버리자.... 어젯밤 밤새 술을 먹고 - 그런 일을 흔히 외박이라고 하지. 동트는 새벽 밝아오면 붉은 태양 솟아온다, 라는 진리를 쓰린 속으로 몸소 체득하고 돌아온 날. 에라 모르겄다! 오전에 차에서 뻐드러져 한 시간쯤 잤다. 푸드득, 병든 닭만큼 정신을 차리고 겨우 오후 일을 했다.

저녁에, 퇴근 시간이 넘었는데도 사람들이 집구석에 갈 생각을 안 해서 난 딱 시방 죽겄소. 오로지 죽지 않겠다는 그 일념으로 삐틀빼틀 집으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집으로 기어 들어오긴 했다.

그런데, 문 밖 복도에는 얌전하게 배달된 식기들이 놓여져 있었다. 꼭 내가 없을 때를 골라 맛있는 걸 먹다니.....
뭘 시켜 먹었어?
나는 침을 꼴딱 삼켰다. 하지만 내 침 넘어가는 소리가 너무 작았나 보다.
모기 들어와. 문 닫아!
문 닫아, 모기 들어와!
모기 들어오기 전에 문 닫아!
나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그러나 문을 닫기가 무섭게,
모기 들어왔어. 문 열어
문 열고 모기 내보내!
모기 내보내고 문 닫아!
모기 나가고 나면 문 닫아!
난 이 삼초도 안 돼, 겨우 차린 정신이 귓가에서 울리는 모기소리처럼 잉, 잉, 빠져나갔다. 식구들의 빛나는 눈초리는 하나같이 모기에게 꽂혀 있었지 나에게 향한 것은 아니었다.

뭘 시켜먹었냐고? 밥 없어서 순대국 사먹었다, 왜?
남았어?
안 남았다, 왜?
좀 남겨놓지....
좀 남았다, 왜?
그럼 좀 주시지.....

가스렌지 위에 뚝배기 두 개가 올려져 있었다. 열어보니, 밥을 말아 퍼질대로 퍼진 국물에다 이빨로 이쪽 저쪽 베어먹고 남긴 깍뚜기에다 불어터진 순대에다, 대파에다, 고춧가루에다, 아뭏튼 그런 것들이 둥둥 떠다녔다.

은설아, 지홍아! 누가 줄래?
오, 기특한 내 새끼들. 아빠를 줄려고 순대국을 남겨 놨구나. 나는 약간은 뭉클한 심정으로 렌지에 불을 켰다.

그건 내 꺼야. 안 돼!
은설이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그나마 깨끗하다 싶었는데.....
나는 다른 뚝배기에 불을 붙혔다.
그건 내 꺼야, 안 돼!
지홍이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싸늘하게 말했다.
왜 안 돼?
아침에 먹어야 돼!
이것들이 진짜! 나는 약간 뭉클했던 심정이 약간 열이 뻗치는 감정으로 바뀌었다.
아빠한테 이깐 국물도 못 줘?
누가 못 준대.
그럼?
아침에 줄께.
정말 못 됐다. 아빤 저녁도 안 먹었는데.....
내 꺼 먹어!
역시 그래도 큰딸 은설이가 양보했다. 단, 수박을 잘라준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국을 데워서 밥을 말은 국물에 다시 밥을 말아 먹고 있는데, 화장실 겸 욕실에 들어간 애들이 다투기 시작했다. 애들은 화장실 겸 욕실에서 자주 티격거렸다.
5학년 짜리가 감히 3학년 앞에서 까불고 있어?
누나인 은설이에게 동생인 지홍이가 으름장을 놓았다.
잔소리 그만하고 양치질 해!
엄마의 말씀을 들은 척도 않고 지홍이가 거실로, 지홍이를 잡으러 은설이가 거실로, 쫓아나왔다.

양치 했냐고?
응. 했어?
언제 했어? 빨리 하고 나와!
했다니까.
언제?
어제, 일년치!

내가 먼저 화장실 겸 욕실로 들어가 화장실을 보고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 대충 물만 끼얹고 나와 거실에 쿠션베게를 베고 누웠다. 너무너무 피곤했다. 애들을 상대하기도 귀찮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력도 없었다. 죽은 듯이 누웠으나, 죽지 않은 듯이 목이 말랐다.

은설아, 물 좀 떠와!
돈 없어!
은설이는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은설아, 아빠 시원한 물 한 컵만 떠와!
돈 없어!

나는 슬슬 목마름이 가시고 목구멍에서 후덥지근한 열이 달아 올랐다.
지홍아, 물 좀 떠와라.
돈 없어!
짜식아. 물 떠오라니까!
나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쳤다.
아, 글쎄. 돈 없다니까!

은설이와 지홍이는 둘이 똑같은 목소리로 역정을 냈다. 나는 할 수 없이 일어나 내 손으로 냉수를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까불지 말고 각자 제방으로 꺼져!
나는 누울 자리를 펴고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을 방으로 쫒아버렸다. 막 드러누워서 보니, 복도쪽 창문이 열려있었다.
애들아, 창문 좀 닫아라.
어느 누구도 대답이 없었다. 일어나기 정말 싫은데.... 아내는 홱 등을 돌려 돌아누웠다.
애들아, 창문 좀 닫으라니까! 아빠 말 안 들려?
내가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며 아주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치자, 마치 그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도, 은설이도, 지홍이도, 나를 뺀 우리집 식구들이 모두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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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학 , 임성용 , 달리고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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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무해

    이글 너무 철지난 글이네요. 내용도 빈약한 이글 양심 좀 있어봐요. 글 주인인 임성용씨가 대답하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 멀리서

    평범한 노동자 가족의 일상이 잘 들여다보입니다. 가식없이... 어떤 비애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여기에 어디 판에 박힌 전형성을 요구할 건 아닌것 같습니다.

  • dlatjddyd

    임성용입니다. 저는 글 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는 아닙니다. 제가 화물차 운전을 하고 있는데, 일하면서 겪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연재하기로 하고 샘플로 보내준 글들이 게재되었습니다. 저도 이 문제를 염려하고 이야기를 했는데, 전달이 잘 안된 모양입니다. 날씨도 안 좋은 봄에 자꾸 여름 이야기가 나오고 휴가 이야기가 나오니 이상할 수 밖에.

  • 임성용

    편집진과 연락이 닿는대로 시기와 내용에 맞는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너무해

    이 참세상, 이 글 담당자 개념없이 글 올린 원인제공자이군요. 여기 비해서 임성용님은 겸손한 분이시군요. 오래전에 제 아들이 22세 정도였을 때 하도금업자가 돈봉투를 주더랍니다.

    안받았답니다. 그래 그 하도급업자가 고맙다. 오늘 하루 살맛난다. 새파랗게 젊은이다 돈을 알아서 봉투 받는 거 봤더라면 정말 절망했을 거라고 하더랍니다.

    임성용님의 겸손에 모두가 못미치는군요.

  • 지나가다

    임성용 화이팅! 직접 만나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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