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방곡곡 99절절

[서문] 연재에 앞서

집에 누워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세계지도를 펴보고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곳을 바라봅니다. “아, 이 나라는 너무 작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배낭을 메고 한반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봅니다. 그리고는 다시 느낍니다. “아, 이 나라도 생각 외로 크구나.”라고요. 더 큰 배낭을 다시 메고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고는 돌아와 또 느낍니다. “아, 이 나라는 너무 작구나!” 매사에 엉뚱하게도 이렇게 하나도 안 해 본 사람과 너무 많이 해 본 사람들의 결론이 일치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하지만 내용면에선 그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세계는 평생 돌아다니기는 너무도 넓습니다. 이 넓은 세계를 어떻게든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끼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서 이 연재를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왜 다른 세계를 친숙하게 느껴야 하는데?”라고 반문하신다면 달리 대답할 말도 없고 대답할 마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말이 있듯이 한 가지만 알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을 보면 답답합니다. 한 가지 일만 잘 해서 많은 재물을 모아서는 이웃에게는 쓰지 않는. 동서고금의 동화책에 등장하는 ‘욕심쟁이 영감탱이’라는 악역이 오늘날 모든 사람들의 우상이 되고 미래의 모델이 되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아이들에게 “너는 커서 훌륭한 욕심쟁이 영감탱이가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치는 좀 이상한 세계인 것 같습니다.

“세상이 더럽다”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그런 세상을 바꾸려거나 혹은 그 원인을 생각해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그 더러운 모습에 자신이 한 몫 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도 하고 노력하기도 합니다.

2008년 10월 10일 서울시에서는 ‘제1회 서울 디자인 올림픽’을 한다고 서울 시민들조차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행사에 돈을 뿌려 대고 있는 그 순간에 같은 서울의 상도4동 무허가 판자촌 주민들은 용역깡패들에게 맞고 피를 흘리며 자신의 최소 주거 공간에서 쫓겨나야 했습니다. 물론 그 순간 대부분의 서울 주민들은 두 가지 일을 다 모르는 채로, 혹은 무관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해 나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뭔가 이상해 보이는 이 세계는 알고 보면 그리 크지도 않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습니다.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고, 때리면 아프고, 밥 안 먹으면 배고프고. 자신과 다르다 혹은 상관없다고 무관심을 가지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이 연재의 목적은 바로 그것입니다. 자칫 관심 갖기 어려운 이웃을 보여줌으로서 서로에 관심을 가지고 모두가 함께 잘사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보고 싶은, 의외로 큰 목표가 있습니다. 혹자는 바로 내 옆의 이웃도 돌봐주기 힘든데 멀리 사는 이웃을 돌볼 틈이 어디 있냐고 반문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역으로 더 멀리 사는 이웃부터 보여 줌으로서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는 곳’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생각 외로 세상은 그리 넓지 않고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니까요~~

이 연재는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페미니즘학교(NGA/SF)의 글로컬 포인트(GP)팀 활동가들이 기획하고 담당합니다. 1주일에 한 번 글을 올리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가능한 방금 지구의 모 지역을 다녀 온 생생한 사람을 쫓아다니면서 글을 모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사람을 찾지 못 한다면 GP팀에서 연구를 충분히 하여 글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아무튼 세계 곳곳의 재미있고 따뜻한 이야기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외부 사람이 쓰던 내부 사람이 쓰던 나름대로 몇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첫째, 일단은 가능하다면 나라보다는 지역위주로 글을 올리겠습니다. 글 하나로 나라전체를 판단하기 보다는 한 지역에 대한 얘기 위주로 풀어 나가려 합니다. 물론 그렇게 쓰려고 노력 하는 데는 제약이 적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국경을 넘으려면 검사를 받고 허락을 받아야 하며, 돈도 바꿔서 사용해야 합니다. 같은 나라의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동하는 데는 그보다 문제가 크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아주 큰 나라가 많은데, 예를 들어 상하이라는 도시를 가 보고는 “중국에 가 봤다”고 한다든지 뉴욕이라는 도시를 가 보고는 “미국에 가 봤다”고 말하는 것은 코끼리 꼬리를 만져보고 “코끼리는 뱀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사람이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경우가 수두룩한데 그 나라의 한 도시를 가 보고는 그 나라를 전부 안다는 것처럼 말 하는 것 자체에 무리가 있겠지요. (가끔 더 심한 경우도 있지요. “나 아프리카 가봤다~~.” 네, 그렇게 따지면 저는 ‘아시아’에 가 봤습니다.)

둘째,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많이 지양하겠지만, 사실 외국 인사에게 글을 받아 번역하여 글을 쓰더라도, 이 글은 한국어로 써집니다. 그렇다고 해서 ‘21세기의 한국사회’를 기준으로 보고 그것과의 차이가 있음에 흥미가 있다는 식의 오류는 절대로 범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지역의 욕심쟁이 영감탱이와 그의 하수인들을 비판하고(사실 욕심쟁이 영감탱이 없는 지역이 없습니다), 그들과 용감하게 싸우는 시민들의 이야기는 적극 환영 하지만 그 지역 사람들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 나머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를 가지고 단점만을 부각 시키고 “역시 우리 것이 최고여!”라는 류의 글은 아무리 글이 급해도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장황하게 말 했으니 다시 말 안 해도 되겠지요.

셋째, 여기의 글들을 굳이 따지자면 기행문에 속하는 것들이 많겠지만 안 가본 지역도 자료를 채집 연구하여 쓸 예정이니 모두 기행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채집 연구한 글이라도 연구 자료용 글이 아닌 만큼 쉬운 문장으로 쓰여야 합니다. 만일 외부 기고자의 학문이 남아돌아 문장이 지나치게 어려울 경우 GP팀에서 책임지고 기고자와 상의하여 간단한 문장으로 바꾸어 놓아 쉬운 글로 만들어 놓겠습니다. 가능하냐고요? 이런 일을 대비해서 우리 GP팀은 마침표가 한 줄에 하나 이상 안 나오면 문장 해석을 못하는 단순한 머리를 가진 인재를 많이 영입해 두었습니다.

넷째, 다소 어려운 주문일 수도 있겠지만(사실 순전히 멋으로 그러는 건데) A4용지에 글자크기 10으로 99줄의 글을 주문합니다. 이 연재의 제목이 ‘99절절 방방곡곡’인 것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99줄이냐고 물으신다면... 100줄을 넘어가면 너무 긴 것 같아서입니다. 제한을 안 두면 “그 곳은 너무 아름다웠다”라는 둥 지나치게 짧게 글을 쓰는 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습니다. 아무튼 제약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연재이지만 재미삼아 제약을 한 가지 두었으니 양해 바랍니다. (이 서문도 99줄로 쓴 것임을 알려 드립니다.)

이상의 조건을 맞춰서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위에서도 말 했지만 이 연재를 통해 많은 분들이 ‘21세기의 여기’가 아니고 나와 다른 환경이지만 같은 감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간접적으로나마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다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여는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은 동화와는 다르다.”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욕심쟁이 영감탱이들이 주인공이 된 양 설치는 이상한 세상이 현재는 진행 중이더라도 결론은 해피엔딩이 되기를 바랍니다.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http://www.glocalactivis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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