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논쟁은 더 왼쪽으로 와야 한다!

[신간안내] 진보평론 50호(2011 겨울호, 메이데이)

2011년 한국정치의 최대 이슈는 ‘복지담론’이었고 2012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주의의 위기로 인해 대중들의 삶이 피폐해 졌기 때문이다. 이제 이들이 원하는 안정적인 소득과 일자리는 없다.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도 사라졌다. 그래서 대중들에게 남은 것은 최소한의 삶의 조건들이 법제도를 통해 보장받는 것뿐이다. 그것도 기약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복지담론’이 최대의 이슈가 되면서 이념과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당들과 단체들이 복지논쟁에 뛰어들다 보니 쟁점은 사라지고 내영을 실종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구호와 슬로건은 난무한데, 정작 대중들은 그 내용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복지정책이 대중들의 일상을 통해서 내용적으로 접근하고 효과가 나타나야 되는데, 정당들과 정치단체들은 복지담론을 2012년 선거의 필승전략으로 기획하고 정치 공학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각 정치단체들이 복지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헤게모니 투쟁을 치열하게 전개하고 있다.

과거 복지논쟁은 자본주의에 대한 접근방식을 놓고 사회주의와 사민주의와의 사이에서 첨예하게 전개되었지만, 현재의 논쟁지형은 표면적으로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놓고 단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진보좌파들도 복지정책을 통과의례로 사고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내용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논쟁의 중심에 다가가면 갈수록 진보진영 내부의 이념적·이론적 편차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진보평론 50호"의 특집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복지담론을 둘러싼 입장차이는 크게 복지 그 자체가 가진 진보적 성격을 강조하는 입장, 현재의 논의구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복지논쟁이 가질 긍정적인 효과를 인정하는 입장, 복지논쟁 그 자체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강조하는 입장 등 세 가지로 나뉘며, 여기에 복지와 녹색가치를 결합시키려는 논쟁이 더해지면서 이번호 특집이 더욱 복잡해 졌다.

현재 복지국가 논쟁은 세수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세수의 확보는 복지의 범위와 정도와 연결되어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주은선의 “한국 복지국가 논쟁에 관한 소고”는 이러한 쟁점에 대해서 보수정당, 진보정당, 시민사회가 각각 어떤 입장을 지니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복지국가 논쟁의 전면화가 가지는 긍정적 측면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노동부문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는 성장연계 또는 근로연계 복지의 한계를 우려하고 있다. 또한 복지국가가 단순히 정부의 시혜가 아니라 세력관계의 변화를 동반하는 정치적 과정의 결과이며 이 과정에서 노동정치가 여전히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의 좌선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박근혜, 민주당의 복지론이 지닌 시장의존적 한계는 귀담아 들어야 지적이다.

홍헌호의 “경제적 관점에서 분석한 복지논쟁의 주요 쟁점들”은 복지를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 홍헌호는 복지를 낭비적이며 투자를 저하시키는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보수주의자들을 겨냥해 반론을 제기한다. 유럽 국가들의 과잉복지가 현재의 경제위기를 불러왔다는 주장도 조목조목 비판한다. 그는 “경제적, 사회적 타당성이 낮다고 판명된” 토건사업을 강행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이 아닌가 라며 보수적 담론은 비웃는다. 그리고 실제로 토건사업이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투자를 촉진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료를 통해 보여준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교육·보건·복지 부문의 투자가 경제성장에 더 크게 기여했음을 증명한다. 주은선이 정당과 시민사회의 입장을 비교검토하면서 계급관계의 변화와 복지정치의 주체를 강조했다면, 홍헌호는 복지에 대한 보수적 담론을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그들’의 논리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지만 홍헌호의 입장은 제갈현숙의 입장과 날카롭게 대립할 수 있다. 제갈현숙의 “복지의 색깔은 무엇인가?”는 “복지는 자본주의 국가를 중립적으로 보이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제갈현숙은 현재 복지논쟁이 선거정치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통합으로 쏠리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나고 있는 사회적 모순들이 정권교체만을 통해서 바뀔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제갈현숙의 글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보아야할 것은 복지담론이 전면화된 사회·구조적 조건을 분석하는 부분인데, 노동의 약화에 의해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시민으로 개별화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중산층마저도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불안정한 삶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태를 제시하고 있다. 이런 조건은 노동자계급과 중간층 모두 복지에 대한 강한 욕구를 표현하게 한다는 분석은 앞으로 좌파적 전략구성에서 좀 더 깊게 생각해야할 대목이다.

당초 기획의도는 복지논쟁의 지형을 왼쪽으로 이동시켜 생산적인(?) 복지논쟁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며, 그것은 복지논쟁의 좌선회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독자들의 따끔한 질정이 진보평론을 더욱 더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이외에 이번 겨울호에서는 시평, 정세 그리고 일반논문에서도 읽을꺼리가 많다. 현실의 정세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실천의 통일성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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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복지 , 복지담론 , 선별적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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