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시장은 사라지고 남은 건 경쟁뿐

[최인기의 사진세상](2) 청량리 청과물시장

[출처: 최인기]

봄이 오는 길목이라고 하면 너무 성급한가요? 벌써 입춘 절기에 들어섰습니다. 정월대보름입니다. 사진속의 모습은 청량리역 근처에 위치한 재래시장입니다. 이곳은 서울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재래시장입니다. 밤 10시가 넘으면 도로 양 쪽으로 상가들이 나란히 서 있으며, 이곳을 찾는 대형 트럭들로 불야성을 이룹니다. 그 사이사이를 밤도 잊은 채 수 많은 상인들이 동이 터올 때까지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을 1년 365일 언제나 볼 수 있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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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한 귀퉁이에는 노점상들이 삼삼오오 모여 점심식사로 추위와 배고픔을 달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도 보입니다. 시인 신경림은 시장 통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흥겹다” 고 말입니다. 그만큼 청량리 재래시장은 모두에게 밤과 낮을 교차하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삶에 터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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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터 인가 이곳은 인간 냄새가 물씬 나는 살맛나는 시장터가 아니라 살벌한 고성이 오가는 전쟁터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지난여름 청과물시장 상가 맞은편 에서 인도를 사이에 두고 수십 년 동안 떡을 팔던 할머니가 단속을 나온 구청직원들한테 떡을 빼앗겼습니다. 상가 측에서 구청에 민원을 넣어 노점상을 없애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구청에서는 민원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힘없는 할머니의 떡을 빼앗아갔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다가 최근 상인 회에서 노점상 앞으로 통지문을 만들어 배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수 십 년 동안 서로 공생을 해오며 살아가던 노점상과 상인들이 상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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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는 노점상이 천막 치는 것을 상인 백 여 명이 못 치게 가로막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무리 허가를 받지 않고 장사를 한다고 일방적으로 노점상의 물건을 치울 수 있는 권한은 없는 것입니다. 노점상이 장사를 하기 위해 천막을 치려하면 수십여 명의 상인들이 노점상 한명을 에워싼 채 “천막을 철거하라!” 며 욕설과 폭력적인 위협을 하였습니다. 이런 모습을 구청 공무원과 경찰에서는 넋 놓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히려 노점상이 불법이기 때문에 양보를 해야 한다고 상가 쪽 편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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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로 내려가는 엄동설한과 땡볕이 내리쬐는 한 여름에도 천막 없이 장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다행히 일부 선량한 상인들의 중재로 지금은 서로 대립과 갈등은 가라앉은 상황입니다. 워낙 사회적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장사가 안되다 보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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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지역의 노점상들은 매년 이맘 때 즈음이면 풍물패를 앞세워 지신밟기를 했습니다. 이들은 ‘만수무수무강과 부자 되게 해 달라’ 는 소원을 실어 ‘덩덕쿵 덩덕쿵’ 한바탕 신명나게 시장 곳곳을 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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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얼굴을 붉혔던 상인들도 이날은 노점상들에게 박수와 환호를 보내주거나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서 돈 통에 성큼 넣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일 년 열두 달 오늘 같이 신명나고 장사 잘 되는 날 만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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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수십 년의 공생관계가 지금 이렇게 깨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게 앞의 노점상들을 몰아내고 이제 그곳에 새벽까지 하던 도매시장 뿐 아니라 낮에도 장사를 하겠다고 상인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떡볶이를 비롯한 노점상이 파는 물건까지 마구마구 발을 뻗고 있는 대기업들입니다. 세상은 정말 요지경으로 흘러갑니다. 얼씨구 씨구 지랄같이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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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제는 동네마다 대형마트가 우후죽순으로 입점하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은 점포를 가진 이들도 생존의 벼랑길에 내몰리는 게 현실입니다. 대형마트 입점 규제를 통한 소상인 보호와 대기업 2세, 3세들의 체인화 된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전체 매장 수는 1500개 정도로 전체 시장규모가 1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2001년 이화여대 앞에 문을 연 아딸이 전국 900개 매장으로 선두를 보이고 있고 죠스(120개), 국대떡볶이(70개)가 뒤를 바짝 쫓으며 ‘3대 강자’ 형국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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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 물씬 풍기던 시장은 사라지고 남는 건 경쟁뿐입니다. 너도나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이 세상이 노점상과 상인간의 충돌로 몰아넣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말 대책 마련이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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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초

    사진과 글내용이 좋네요
    경쟁은 어디나 있나 봅니다.

  • 백근화

    그대를 응원하노라...
    사진 한 장 한 장이 모두 살아있구먼...
    언제 한 번 볼 날 있으려나...

  • 박혜영

    사진과 글 속에 서민들의 애환이 모두 녹아있네요... 그들과 늘 함께하는 인기님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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