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하기 좋은 나라를 위해

[뚜벅뚜벅](5) 9일(11일차) 삼성 수원공장 앞

뚜벅이들은 8일 밤을 가톨릭 수원교구 대리구청에서 모처럼 따뜻하게 보내고 9일 아침 경기지방경찰청 앞으로 향했다. 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막 시작하는데 경찰이 둘러쌌다. 건너편으로 가서 집회를 하라는 거다. 황당한 실랑이가 오갔다.

하도 분해서 집회신고된 걸 다시 확인했다. 집회장소는 분명히 ‘경찰청 앞’이었다. 신고한대로 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시작하는 것도 막는 경찰과 고성이 오갔다. 우리가 경찰청으로 진입하는 것도 아닌데. 삼성 수원공장 앞에는 삼성노조와 반올림 동지들이 애타게 기다리는데 뚜벅이를 둘러싼 경찰 때문에 시간만 지체했다.

  9일 오전 10시 경기경찰청 앞 뚜벅이 대오를 둘러싼 경찰 뒤로 수원 화성 성곽이 이어져 있다 [출처: 이정호]

경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해 버스로 삼성 수원공장으로 이동했다. 마침 오는 텅 빈 시내버스에 모두 올라탔다. 영통구청 앞에서 내려 삼성 수원공장 앞으로 갔다. 공장이 훤히 보이는 사거리 앞에서 선전전을 시작했다. 낮 12시 점심시간이 되자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반올림의 이종란 동지가 열심히 선전물을 나눠주고,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열심히 선동을 시작했다. 준비해온 피켓을 모두 꺼냈다. ‘노동하기 좋은나라’ ‘노동자는 일회용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의 얼굴이 큼직하게 박힌 판넬도 등장했다.

  이건희 회장의 얼굴을 박은 1인 시위 판넬을 들고선 뚜벅이들 [출처: 이정호]

집회가 시작되자 마이크를 잡은 이종란 동지는 방금도 “사진이 찍혀서...” (선전물을 받기 어렵다)고 외면하는 노동자들이 있었다고 했다. 바로 이 공장에서 많은 젊은 노동자가 죽어갔다. 지난 1월엔 삼성 에버랜드에서 일하던 20대 비정규직 사육사가 패혈증으로 죽었다.

회사는 술 먹고 2차 갔다가 넘어진 상처가 운 나쁘게 패혈증으로 번졌다고 했지만 그 상처는 동물원에서 근무도중 철문에 찢긴 상처였음에 드러났다. 유족들은 산재처리를 요구하는 데도 삼성은 어떤 공식 의견도 없다.

  삼성 마크가 선명한 공장 앞 인도에서 뚜벅이들이 율동공연을 보고 있다 [출처: 이정호]

이날 집회에는 삼성노조원들과 반올림, 삼성에서 왕따 피해를 입고 어렵게 투병과 투쟁을 병행하고 있는 박종태 대리도 나왔다. 이들의 얼굴이 모처럼 환해졌다. 박 대리의 부인은 뚜벅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천으로 100개의 수세미를 만들어 뚜벅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줬다.

9일 저녁은 오산의 한신대였다. 저녁 6시쯤 한신대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총학생회가 저녁 밥을 준비하고 뚜벅이들은 모처럼 모닥불에 구운 삼겹살과 맥주로 목을 축였다. 20여개 투쟁사업장에서 모인 바람에 처음엔 어색해 하던 뚜벅이들이 이젠 서로 말문을 열고 이후 투쟁방향을 서로 주고받는 진짜 동지가 됐다. 삼겹살을 놓고 벌인 노래와 토론은 밤 10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어느 새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누는 서로 다른 사업장에서 온 뚜벅이들 [출처: 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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