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차이로 이뤄진 당신을 품을 자리

[식물성 투쟁의지](36) 2008, 지리산행

2008년 지리산행은 휴식도, 재충전도, 어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설레임도 아니었다 하나의 채워지지 않는 질문이었다

금지 위에 세워진 정치적 신념은 반혁명이었다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 일동1)’은 성폭력 가해자였다

성폭력 피해자가 조직의 가부장 문화에 질문을 던지며 투쟁을 시작했을 때
여성주의는 조직의 공식입장이 아니었음으로 간단하게 묵살됐다
피해자 지지모임의 공감을 이루기 위한 비판과 토론은 중앙의 방침으로 금지됐다

피해자는 더욱 고립됐고
조직의 핵심이론가였던 가해자는 안전하게 자신의 방어이론을 만들어냈다
가해자의 방어이론은 곧 중앙의 방침이 됐고 누구도 조직의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조직적 계통을 따라 피해자에 대한 음해와 비방이 조직됐다
피해자는 피해자이기 이전에 정치적 반대파였다
조직의 핵심지도자를 보호하기 위해
그토록 뛰어났던 또 한 명의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빠르게 축출 당했다
조직은 계급투쟁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의 종교가 됐다

피해자에게 노해투사의 정치적 신념은 짐승 같은 것이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꿈꾸는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과연 대화와 토론을 금지할 수 있는가?
따뜻한 웃음과 즐거운 대화 속에서 태어났고
세상의 저음에서 들풀처럼 노래하며 들풀처럼 유려했던
그녀를, 그녀의 눈물을, 그녀의 질문을, 그녀의 항의를
조직방침으로 금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그녀의 절규를 그토록 사무적으로 삭제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는가?
그녀에게 짐승처럼 다가온 노해투사의 정치적 신념!
금지 위에 세워진 그들의 정치적 신념은 반혁명이었다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반성하지 않는 미래였다
노해투사는 벽처럼 확고했고
그녀의 여성주의는 관료주의와 화해할 수 없는 계급투쟁이었다

평등을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모든 자리가 지금,
내전상황이다

믿고 확신했던 것들은 너무 쉽게 적들을 쏙 빼닮아 있었다

난 정치적 고려가 아니라 피해자 동지의 절규에 우선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피해자 동지가 고통 속에서 길어 올린 언어들은 내장산 단풍처럼 붉었으나 결코 물기를 잃지 않았다 고작 반성하는 가부장이었던 나는 그녀의 투쟁 앞에 너무 낡아버렸다 단절은 통증 없이 오지 않았지만 그녀의 따뜻한 눈물을 품었다는 것만으로도 내 삶은 다행이었다 내 심장이 뛰는 한 변화는 가능했고 그것은 계급투쟁의 과정이었다 축출을 각오해야 했다

난 조직원들조차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노해투사의 비밀스러운 수직적 위계질서를 전국순회토론으로 대체했다 이니셜로만 존재했던 동지적 관계를 기쁨과 슬픔의 표정으로 마주보게 했다 문자로만 해석되던 피해자 동지의 눈물을 피부에 가 닿게 했다 실체와 마주한다는 것, 피해자 동지의 따뜻한 손을 잡았을 때 더 이상 고정된 것들은 없었다

노해투사는 성폭력 가해자임을 인정했고 피해자를 축출하는데 사용했던 자신의 가부장주의와 관료주의의 관계를 성찰했다. 그리고 조직을 해산함으로써 그 정치적 책임을 다하고자 했다. 벽처럼 확고했던 자신의 신념체계가 가건물처럼 갑자기 허물어지는 충격 속에서도 조직노선 평가와 피해자의 치유를 위해 노해투사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건설했다 자신의 오류로부터 도망가지 않는 것,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것, 스스로를 집단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이것이 피해자 동지에 대한 최소한의 조직적 예의였다

처음엔 이 매듭이 하나의 희망이라고 생각도 했으나 한 잠 자고 일어난 뒤에 난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믿고 확신했던 것들은 너무 쉽게 적들을 쏙 빼닮아있었다 비스듬하게 기댔던 벽이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의심 많은 시간들이 다가왔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사랑할 수 없을 것처럼 내 몸은 탈진상태였다 정말 주저 앉고 싶다고 생각 할 때쯤 전국현장노동자글쓰기모임, 해방글터 후배인 신경현 시인이 지리산행을 제안했다 난 꼭 가야겠다는 생각보다도 “알았어”라고만 간단하게 말했다

순환가능한 삶이 가능할까?

비합사회주의활동이 먼 곳으로 떠나는 설fp임이거나 사랑하는 당신을 기다리는 연애의 시간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08년 지리산행은 내게 과연 사랑이고 몸의 자유이고 빛나는 전망일 수 있을까? 사실 잘 몰랐다 특별한 기대도 없이 난 지리산을 향했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떤 것이 채워지기를 고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지리산이 나를 품지 않더라도 부드러운 흙 한줌으로라도 그냥 지리산에 머물고 싶었다

노고산장 밖에서 비박을 했다. 침낭을 깔고 비닐을 덮고 누워 본 밤하늘은 고추밭 같았다 별빛들은 고추밭에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고추처럼 빛났다 난 땡초처럼 얼얼한 별 하나 가슴에 품고 싶었다 순환가능한 삶이 가능할까? 난 지는 유성을 보며 특별히 소원을 빌지 않았다

무수한 차이로 이뤄진 당신을 품을 자리

노회찬과 백태웅이 고해성사를 하고 떠난 내 20대 중반, 난 그들의 노선이기도 했던 민중주의와 스탈린주의와의 이론투쟁 속에서 프롤레타리아독재론자가 되었고 지금까지 프롤레타리아독재론자로 살아왔다 이행의 삶을 꿈꿔왔다

하지만 난 통일을 위해 차이를 희생시켜 왔고 차이를 견디질 못했다 그만큼 이행의 삶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나도 노해투사였다

별빛들의 유영하는 좌표를 따라 바람이 불었다 이제 가야할 곳을 질문할 때다

차이는 지리산의 샘물 같은 것이다 마르지 않는 투명한 동력이다 내가 원했던 것은 샘물처럼 그렇게 빈틈없이 평등한 것이었다

대의제도가 평등을 대표하고 혁명적인 때는 이미 지났다 별빛들은 무수한 차이들의 협력으로 스스로 빛날 뿐 누구도 대의하지 않는다

내 가슴을 얼얼하게 하는 별빛들은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내 심장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고 싶다는 걸 느끼게 해줬다 입장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냥 느껴지는 것 있다 무수한 차이로 이뤄진 당신을 품을 자리 … 지리산! (2012년9월16일)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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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동해방을 위해 투쟁하는 사회주의자 일동’(약칭 노해투사)은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 중 하나였다

고립이 그들의 노선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세계사적 언어들은 비합법적이었다. 21세기 볼셰비키 레닌주의자들이 되고자 했던 그들은 20대 후반, 30대 초중반의 빛나는 청춘들이었지만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다. 차라리 그들의 표정은 고전주의자들의 낡은 외투를 걸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 건 외교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외롭고 곤궁한 시절 속에서도 혁명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일관되고 정직한 행동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2007년 고립되고 이질적인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이 연합운동을 통해 당을 건설하려고 했을 때 난 규모의 정치가 당적 지도력을 구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난 내 허명을 팔아 운동하고 싶지 않았고 이론적 타협보다는 이론적 명확함과 통일을 원했다.

정치적 재편기, 난 연합운동이 아니라 작고 이름 없는 단단한 서클에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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