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목도리 할머니’는 어떻게 됐을까?

[최인기의 사진세상](18) 나아지지 않는 서민의 삶, 가락시장


시장의 역할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에게 오락거리를 제공하거나 유흥과 문화를 주도적으로 선보였던 곳이 바로 시장입니다. 오늘 소개할 송파가락시장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전통놀이로 '송파산대놀이'가 있습니다. 약 2백년 전 조선 후기 전국에서 가장 큰 시장 열다섯 곳 중의 하나가 바로 송파장이라고 합니다. 이곳이 가장 번성하던 때에 '송파산대놀이'도 함께 성행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겁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 형태만 달리할 뿐 현대에 들어서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상권이 형선된 곳이라면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다양한 놀거리와 볼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합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 행위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보의 수집 그리고 교환과 확산 또한 시장의 중요한 기능입니다. 나아가 새로운 여론을 형성하기에는 시장처럼 좋은 곳이 없습니다. 왜?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이 시장을 찾는 걸까요? 시장이이야 말로 많은 사람을 접할 수 있고, 이들과 소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적, 공간적 간격을 좁히고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시장입니다.

[출처: 청와대]

먼저 2008년 12월로 기억합니다. 가락시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품에서 하염없이 울고 계시는 박부자(77세) 할머니를 기억하시는지요. 당시 언론에서는 연말을 앞둔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라며 이를 크게 보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가락시장 할머니의 목에 따뜻한 목도리를 씌워주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았거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그 후 이명박 대통령에게 목도리를 선물 받은 박부자 할머니는 ‘목도리 할머니’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목도리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을까요? 문득 궁금해져 2012년 12월 13일 새벽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을 찾았습니다. 며칠 동안 한파가 매섭게 몰아닥쳤습니다.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새벽장이 열리는 시장 안은 군데군데 대낮처럼 불을 밝히고 있거나 상인들이 모여 불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직판장 안에는 경매사들이 열띤 흥정을 벌이고 있었는데요. 마치 그 모습이 축제 같아 보였습니다. 과연 ‘목도리 할머니’는 장사를 하러 나오셨을까요?


가락시장 남문에서부터 미끄러운 길을 따라 북문 근처 가락시장 관리공사 앞까지 왔습니다. 몇몇 분들이 불을 쬐고 계셨습니다. 한눈에 봐도 목도리 할머니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하시다가 웃으시며 어떻게 왔냐고 하십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그곳에서 장사하고 계셨습니다. 하루 약 3만 원 남짓 벌기 위해 11시에 와서 다음날 동틀 때까지 배추 경매가 끝나고 남은 시래기를 싸게 구입해 팔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렇게라도 벌어서 먹고 살아야지.” 어디 불편한데 없냐는 질문에 얼마 전 맹장수술을 받고, 다시 9월에 하지정맥류 수술을 받아 다리가 쑤시고 아프고 병원비도 많이 들었답니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비 30여만 원을 더해도 보증금 500만 원짜리 단칸방의 월세 20만 원을 내시는데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았다고 합니다. 시장도 공사가 끝나지 않아 쫓겨난 건 아니지만, 불안 해하십니다. 그나마 찾는 사람이 별로 없어 속상해하십니다.


슬쩍 대통령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할머니는 “개 코나 하나도 바뀐 게 없어, 대통령이 아니라 천하 없는 사람이 와서 목도리를 갖다 주면 뭐하고 악수하면 뭐해? 오히려 살기만 팍팍해 졌는데...”라며 버럭 역정을 내십니다. 게다가 대통령한테 아파트를 선물을 받았다는 헛소문이 돌아서 속상해 죽을 뻔했답니다. 청와대 가서 밥 먹은 거 하고, 손목시계 말고는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답니다. 그때 이명박 대통령과 사진 찍고 (이명박 대통령이) 시래기를 3만1천 원어치 사갔는데 3만 원 밖에 안 줬다고 웃으십니다.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정작 박부자 할머니와 같은 서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졌을까요? 오히려 서민들의 빚더미만 늘어가고 힘들어 못살겠다는 한숨 소리만 넘쳐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박부자 할머니의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것은,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장사에 방해될까 봐 더 말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습니다.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 할머니께 감싸 드렸습니다. 비록 노점에서 구입한 목도리지만 올겨울 따뜻하게 보내셨으면 합니다.


해가 뜨기 전 매서운 추위가 또 시작됩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송파지역 노점상연합 지역장 김우성(50세) 씨를 찾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먹자며 근처 식당으로 저를 데리고 가 찌개를 시키셨습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농수축산물 시장인 가락시장은 1985년 지어졌다고 합니다. 전에는 이곳의 하루 유통량이 무려 7,300톤으로 전체 40%, 서울시민 먹을거리의 약 50% 정도를 차지했지만 이제는 물량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경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시간에는 차량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매우 혼잡하고 무엇보다도 시설이 매우 노후해 새롭게 현대화 사업이 추진되는 게 맞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2002년부터 재건축과 이전 등을 검토하다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현재 자리에 재건축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현대화사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송파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은 2018년 완공 계획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더 시간이 걸릴 겁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해오던 소매상인 즉 노점상에 대한 대책마련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김우성 지역장의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명박 씨와 오세훈 씨로 이어지는 “토건중심의 디자인 서울”의 여러 병폐 중 그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입니다. 우선 이곳에 투여되는 재정은 2005년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4,648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2006년 업무보고에서는 5,040억 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또다시 껑충 뛰어 총 7,581억 원이 소요될 예정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1조 원 가까운 예산이 들어 갈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비용은 중앙정부 재정 30%, 서울시 재정 30%, 국고 융자 40%로 추진됩니다. 이 사업은 가락시장이 농수축산물 도매시장으로서 기능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추진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락시장은 2000년 이후 거래물량이 정체되거나 하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즉 농수산물공사는 거래금액의 증가로 기능 확대를 예측하지만, 시설 확충은 거래물량을 근거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업이 오로지 돈 버는 게 목적인 세상에서, 이 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투자로 나아가는 듯했습니다.


내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고융자금은 연리 3%로 2025년부터 13년간 갚아야 하며, 연간 233억 원에 달하는 상환비용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2010년 서울시 농수산물공사의 전체 영업수익은 481억 원이며, 이중 영업비용 390억 원을 제외한 순영업이익은 100억도 되지 않았습니다. 즉, 현재보다 순익이 3배 넘게 나야 융자금을 상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부족한 비용은 어디서 충당할 것인가요? 2010년까지만 해도 서울시 농수산물공사는 이를 전액 시설운영을 통해서 갚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도매상인들의 유통수수료 인상과 직판 상인들의 임대료와 보증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대화사업 비용을 가락시장 상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물건을 구입하는 서울시민과 소비자들이 부담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장기능을 살려 유통비용을 절약하는 구조가 무시되고 그럴듯한 디자인만 강조한 현대화 사업이 진행됐습니다. 가령 시장 옥상에 뚜껑을 덮고 그 위에 공원을 만들어 분수대와 산책로 등을 설치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채소에서 나오는 가스와 흙먼지는 도대체가 어디로 빠져나갈지 예측조차 할 수 없는 한마디로 시장 상인들이나 이곳을 찾는 소비자들의 건강 따위는 무시한 건축물을 건설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례는 시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경제적 활동뿐만 아니라 기능을 확대 적용한 사례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써 결국 건설자본의 이익창출을 극대화함으로써 시장 본연의 역할을 뒤집는 것입니다.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이 진행될수록 시장에서 영업하는 상인들의 피해는 물론 노점상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운명이었습니다. 1단계 공사 기간은 업무 동 1개 동이 18층으로 지어지고, 이곳에는 농수산물공사 업무공간과 부대시설, 그리고 직판시장이 들어섭니다. 직판시장은 3층으로 지어져 1,200개의 상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현재 가락시장에서 허가를 받고 장사하는 직판상인은 대략 2천 명이 넘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8백 명의 직판상인은 또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당시 노점상들은 송파지역의 시민단체들과 함께 천문학적으로 치솟는 서울시 부채와 연동해서 불필요한 시설을 최소화하고, 현대화사업이 모든 사람이 공존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시장으로 재건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정말 이대로라면 가락시장 시설 현대화사업은 시장을 무덤으로 가져가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결국 1단계 공사가 추진되었고, 공사구간에서 장사하던 노점상 45명은 2011년 5월 22일 보따리를 지고 현재 장사하는 자리로 집단으로 이주하여 새롭게 터전을 마련하게 됩니다.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당선 후 가락시장 현대화사업의 문제를 전달받고 재검토 의견을 밝혔습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토건사업 중심의 시정방향은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시의 일부 관료들은 과거와 같은 관행을 바꾸지 않고 있는 듯합니다. 가락시장을 관리하는 서울시농수산물공사는 “공사가 진행되는 곳에서는 장사를 못하게 될 것”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동안 서울시의 잘못된 사업을 밑에서 집행해 온 행정 관료들이 계속 토건사업 시절의 마인드로 군림하려 한다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저질러 놨던 토건사업들의 폐해를 막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특정 관료에 의해 장악되었을 때 소통은커녕 불통만 남아 있는 현실을 송파 가락시장에서 엿보고 갑니다.


생계 수단을 잃을까 걱정하는 이는 박부자 할머니뿐만이 아닙니다. 가락시장 안에는 채소 등을 떼어와 노점이나 좌판을 펼치고 생계를 꾸려나가는 상인이 수백 명에 이릅니다. 수산시장 쪽으로 들어서니 장사를 펼치다 말고 달려와 이런 늦은 시간에 웬일이냐며 커피를 뽑아다 주십니다. 몸조차 가누기 어려워 보이는 할머니들이 겹겹이 옷을 껴입은 채 장사를 하고 계셨습니다. 한겨울 추위에 부르튼 손을 보니 가슴이 먹먹해 왔습니다. 오래전 이명박 씨가 다녀간 사실을 기억하시냐고 수산시장 막내 아무개 씨에게 여쭙자 대뜸 “대통령이 우리 시장을 찾아오면 뭘 해요. 사람은 점점 발길이 뜸하고 시장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데 좀 뭐 나아지는 게 있어야지…” 그리고 하루하루 벌어 먹고살 수 있도록 가만히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해뜨기 직전의 추위가 가장 매섭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을 해도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막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가락시장에서 장사하는 상인들 노점상들 마음에 햇살이 비치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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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 , 오세훈 , 이명박 , 가락시장 , 목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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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통

    보여주기위한 정치는 이제그만 박근혜 당선인은 정말 민생정치할껴!

  • 농성장에서

    이제 MB는 끝낫고 구속시키는 일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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