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앞 세월호 유족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인터뷰(1)] 경찰의 폭력, 고립, 감시...각종 유언비어에 피눈물 흘리는 유족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또 한 번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새웠다. 벌써 세 번째 밤샘 기다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끝내 유족들을 외면했고, 유족들은 딱딱한 아스팔트 위에서 신문지 하나에 의지해 잠을 청했다. 새벽에는 비가 내렸고 아스팔트 바닥과 신문지마저 젖어버렸다.

23일 아침, 경복궁 역부터 청와대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경찰의 경비는 두터웠다. 경찰은 세월호 유족들의 농성장을 에워싸고 출입을 막았으며, 길목 곳곳에서 시민들의 목적지를 검문했다. 네 번의 검문과 한 번의 신분확인 끝에 취재가 허용됐다. 40명 남짓한 세월호 유족들은 경찰차와 병력 안에 겹겹이 둘러싸여 김밥과 빵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출처: 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

세월호 유가족, 세 번의 청와대 밤샘 농성
경찰의 폭력, 고립, 감시에 노출...“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유족들이 처음으로 청와대 앞에서 밤을 샜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그들을 직접 청와대로 불러들였다. ‘할 말이 있을 때 언제든 찾아오라’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청와대 앞에서 밤을 지샜을 때 경찰은 폭력적으로 유족들을 진압했다. 일부 유족은 응급실로 후송되기도 했다. 국회로 찾아갔을 때도 경찰의 발길질에 몸에 멍이 들었다.

이들이 세 번째로 청와대를 찾았을 때, 경찰은 ‘폭력’보다는 ‘고립’의 방식을 택했다. 공권력이 유족들을 대하는 방식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다. 단원고 2학년 10반 고 이은별 양의 이모 길옥보 씨는 아직도 다리에 파랗게 번져있는 멍자국을 들춰보였다. 국회에서 경찰의 발길질에 맞은 상처는 보름 가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경찰한테 조인트를 까였어요. 다리 뿐 아니라 온 몸 곳곳에 상처가 났어요. 경찰은 유족들을 폭행하고 길을 막아요. 너무 화가 납니다. 계속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까 이제는 옷을 아예 벗고 나체로 싸워야 하나 싶기도 해요. 아이를 잃은 것도 서러운 가족들에게 경찰이 이렇게 폭력적으로 대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는 죄인이 아니라 피해자잖아요. 분명히 이 나라는 미쳤습니다”

단원고 2학년 7반 고 오영석 군의 부모도 4월 16일 이후, 팽목항에서 부터 안산 분향소, 국회, 광화문, 청와대까지, 집이 아닌 길 위에서 생활한 시간이 더 많았다. 그들은 단지 아들의 죽음을 밝히고 싶었을 뿐이지만 공권력은 번번이 그들의 길목을 막았다.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씨는 매번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경찰과 대치해야 했다.

“어제 청와대 앞에 유족들이 모이는 것도 007작전을 방불케 했어요. 2명 씩 조를 짜 산책하는 것처럼 길을 걸었어요. 경찰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무섭게 쏘아봅니다. 같이 눈을 쏘아보면 어디를 가느냐고 검문을 해요. 청와대 앞에 온 것은 세 번째 입니다. 두 번째 왔을 때와 비교해 경찰의 폭력이나 몸싸움은 줄었어요. 여론을 의식해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 같아요”

오전 11시 30분 경, 세월호 유족들 일부가 버스를 타고 청와대 앞 농성장에 도착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네 정거장 남짓한 거리지만 과정은 험난했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김민성 군의 아버지 김홍열 씨는 경찰의 감시와 방해에 울분을 토했다.

“오늘 오전 10시 30분 경, 광화문 농성장 사거리에서 경찰이 가족들이 탄 버스를 가로막았고 몸싸움이 일었어요. 유족들이 항의를 하니 경찰이 나중에는 병력을 철수했습니다. 왜 막았냐고 물으니 가족들이 버스로 도로 한복판을 점거했대요. 경찰이 먼저 가족들의 버스를 막은 것인데, 모든 것이 그저 유족들의 잘못이 돼요. 언론에서는 경찰이 병력을 철수시킨 현장 사진으로 ‘유족들이 도로를 점거했다’고 내보내요.

심지어 가족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하려는데, 모르는 사람이 버스에 앉아있는 거예요. ‘당신 누구야?’ 하고 물으니 그제 서야 후다닥 버스에서 내리더라고요. 사복 경찰인지, 국정원 직원인지는 모르지만 항상 유족들을 감시해요. 우리는 그저 왜 내 자식이 죽였는지를 밝히라는 것인데, 저들은 우리를 폭도로 몰아요. 유족들은 폭도가 아닙니다”


아이 잃은 채, 생업까지 접고 길거리로 내몰려
“하나뿐인 아들 잃어...이제 생업은 중요하지 않아”


고 오영석 군의 부모는 아들의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120일 넘는 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오영석 군은 외동아들이었다. 세 가족의 단란했던 추억은 과거가 돼 버렸고, 아이의 빈자리는 비통함으로 채워졌다. 텅 빈 집에서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드는 소리도,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유족들은 모든 생업을 중단하고 길거리로 나앉았다.

[출처: 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

“저번에 오랜만에 빨래를 돌리러 집에 갔는데 집이 거의 썩어 있더라고요. 이불에는 아이 사진만 나뒹굴고 있고...아이가 죽고 나서, 한 번도 집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린 적이 없어요. 집에서 밥 한 번 해먹지 않았습니다. 아이 아빠도 휴직계를 냈어요. 생업은 이제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돈이 나갈 일이 없잖아요. 아이가 입고 싶어 했던 옷, 먹고 싶어 했던 것 이제는 사 줄 수가 없으니까요

친구들이 기억하는 영석이는 유머감각이 뛰어난 아들이었어요. 매너가 좋고, 먹방을 잘했죠. 성격도 좋고 거짓말도 안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딸 부럽지 않게 애교도 많았어요. 그런데 아들이 보고 싶어 했던 그 흔한 영화 한 편 같이 못 봤습니다. 아들 생각에 항상 힘이 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들 때도 아이 생각에 힘들어요. 비가 오거나 그러면 더 많이 생각이 나고 가슴이 메어져요”


고 김민성 군의 아버지 김홍열 씨도 모든 생업을 접었다. 아이가 왜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알기 전 까지는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 때 까지, 제대로 된 특별법을 제정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집사람과 저 모두 생계를 다 접었습니다. 아이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모르는데 어떻게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병으로 죽었다면,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왜 죽었는지 납득이라도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이것은 사고가 아닙니다. 사건입니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데 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갈 데 까지 가봐야지요.”

각종 유언비어에 피눈물 흘리는 유족들
“아들 잃은 유족에게 ‘로또’ 맞았다니...우리는 돈 없이도 행복했다”


유족들을 괴롭히는 것은 아이를 잃은 비통함 뿐 만이 아니다.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과 악성 유언비어는 유족들의 마음을 또 한 번 찢어놓고 있다. 그들은 온갖 소문과 시선에 노출 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고, 정상적인 대인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말 못할 억울함만이 가슴에 쌓여간다.

[출처: 미디어충청 정재은 기자]

김홍열 씨는 이미 악성 유언비어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사건 초반부터 각종 오보를 남발했던 언론에 있었다. 김 씨는 거듭 ‘언론을 믿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방송 3사는 정권의 앵무새가 됐고, 정권에 유리한 기사만이 포털에 도배되고 있다며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진상은 왜곡됐고, 유족들은 각종 악플과 마타도어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이발소에 갔는데, 이발관이 특별법 관련 뉴스를 보다가 ‘이제 버스타고 가다 사고 나서 죽으면 무조건 특별법을 만들어야 겠네’라며 비아냥거리더라고요. 그리고 유족들이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싸우는 거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요. 마음이 무너져 내려 거기에 대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악성 댓글도 계속 올라옵니다. ‘유족들이 이미 15억의 보상금을 받았고, 앞으로 20억을 더 받을 거다. 한 순간에 상위 1%가 됐다. 로또에 당첨된 것과 다름없다’는 어처구니없는 내용 이예요. 우리는 돈 필요 없습니다. ‘로또에 맞았다’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이나 자식 죽이고 로또에 당첨돼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자식 잃은 것도 억울한데, 이런 말들은 너무도 힘이 듭니다”


고 이은별 양의 이모 길옥보 씨도 4개월 간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아픈 이은별 양의 어머니를 대신해 싸움에 나선 그녀는 온갖 시선과 말들에 치를 떨었다. 언론에서 오보가 나거나 유족들을 비난하는 기사 혹은 유언비어가 떠돌 때 마다 억장이 무너졌다. 고 이은별 양의 어머니는 여러 번 병원으로 후송됐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국가에서 보상을 다 해 준다는데 왜 이렇게 울궈먹냐. 왜 의사자와 특례입학을 요구하냐’고 말하더라고요.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방송 3사만 보고 그런 소리를 합니다. 우리 아이가 전쟁터에서 죽은 것도 아닌데 우리가 왜 의사자를 요구합니까. 여야의 합의안은 그저 정치인들을 위한 특별법일 뿐입니다. 우리는 의사자도 특례법도 다 필요 없습니다. 돈도 필요 없습니다. 돈 없이도 남한테 피해 안주며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요구는 단지 구조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를 밝히고, 잘못한 사람들을 처벌하라는 것뿐입니다. 이를 위해서 유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을 만들라는 겁니다. 사고가 났던 4월 16일 밤. 팽목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구조는 안하고 조명탄만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경찰은 구조를 하고 있다고 말했고, 우리는 구조 작업을 봐야겠다고 어선을 타고 나갔습니다. 바다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해경경비정 한 척만 멀 찍이 떨어져 있었고, 개미 한 마리 없는 곳에 조명탄만 터지고 있었습니다. ‘너희 구조 안하고 뭐하냐’고 소리를 지르니 해경도 도망가 버렸습니다. 언론에서 구조를 했다는 보도, 다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밝히고 싶습니다. 그리고 잘못한 사람들 죄 값을 치르게 하고 싶습니다”
태그

세월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