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외면한 ‘현대차 비정규직’ 단식 일주일...괴물이 돼버린 사법부

[인터뷰] 서울중앙지법 앞 단식 농성 노동자들 “법은 약자에게 미온적”

사법부조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진짜 사용자가 누구인지 밝히기를 꺼려한다. 10년간 불법파견의 증거들을 모아가며 노동부와 대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을 인정받았지만, 사법부는 법보다는 정치적 판단에 더욱 관심이 많다. 재판부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569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4년 째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결국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오늘로써 6일차다. 이들은 법원 앞에서 ‘법에 근거해 선고를 내려달라’는 기가 막힌 요구를 내걸고 있다. 법원이 민사소송을 통해 생존과 직결된 권리를 구제받을 수 있다는 최소한의 원칙도 저버린 까닭이다.

지난달 8월 21~22일 예정됐던 1심 선고가 오는 9월 18~19일로 연기됐다. 벌써 세 차례의 선고 연기 통보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오는 18일 예정된 선고기일도 또 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현대차의 선고 연기 작업을 묵인하고 받아들였던 법원은 이미 노동자들에게 현대차만큼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괴물이 돼버린 사법부...법이 외면한 ‘현대차 비정규직’ 단식 일주일

법원조차 외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오늘도 곡기를 끊고 농성을 한다. 박현제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지난 10년간 서른 번도 넘는 농성을 경험했지만 정작 단식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부터 노조 활동을 시작했고 10년간 불법파견 투쟁을 해 왔다. 그동안 4번의 해고 통보를 받았고, 2011년 마지막 해고 통보 이후 복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6일째 법원 앞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이진환 현대차 울산 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 박현제 조합원, 김응효 조합원(오른쪽부터)

박현제 조합원은 “법원은 힘없는 자의 마지막 보루라고 알고 있었다. 정말 법원이 이정도 까지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4년이 다 됐는데 판결을 미루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 현대차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는 지난달 일부 원고들의 소취하서와 8.18합의를 제시하며 법원에 선고 연기를 요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선고가 연기된 기간 동안, 회사는 발 빠르게 노조 와해와 불법파견 은폐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박현제 조합원은 “회사는 선고가 나오지 않도록 연기시키면서, 동시에 현장 내부 혼란을 가중시켜 소송을 취하하고 마무리시키려 하고 있다.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 최병승 개인의 판결이라고 주장해 온 만큼, 다수의 노동자들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8.18합의와는 상관없이 울산 공장에서도 회사가 움직이고 있다. 합의가 울산지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 놓고, 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특별채용 원서를 들이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단식농성을 진행 중인 이진환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도 법원을 향해 울분을 쏟아냈다. 이진환 수석부지회장은 “법이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할 때 굉장히 미온적이거나 노골적으로 자본의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이번 소송에서도 현대차와 법원이 공조해 선고를 무력화시키려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0년 불법파견 투쟁은 ‘해고’와 ‘손배가압류’로 이어져

단식농성 6일차를 맞은 16일, 법원 농성장 앞으로 구청 직원들과 경찰이 몰려들었다. 경찰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법원 앞 단식농성까지도 막아섰다. 집회금지구역에서 구호가 표기된 몸자보를 부착했다며 해산명령을 내렸다. 자본도, 법원도, 공권력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에는 별 다른 관심이 없다.

이진환 수석부위원장과 박현제 조합원의 해고자 생활은 벌써 3~4년에 접어들었다. 모두 불법파견 투쟁을 하다 해고가 됐다. 그동안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된 조합원들만 200명에 달했고, 아직까지 현장에 복귀하지 못한 조합원들도 20여명 남짓 된다. 노조에서는 1만 원이던 조합비를 4만 5천원으로 인상해 해고자들의 생계를 책임졌다. 현재 해고자들은 60~70만원의 생계비를 받으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남편의 정규직화 투쟁을 묵묵히 응원하던 아내들도 점점 지쳐만 간다. 생활고뿐만 아니라 매번 용역과 몸싸움을 하다 크게 다쳐서 돌아오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걱정이 커져간다. 이진환 수석부위원장은 지난해 파업 당시, 용역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높은 곳에서 추락해 척추뼈가 골절되기도 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아내가 많이 지지해 줬지만, 4년간 해고 생활이 이어지며 많이 힘들어 한다. 이번에 단식 때문에 상경할 때도 말라더라. 단식만은 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차라리 다치면 병원에서 간병이라도 해주겠는데, 서울까지 올라가 단식을 하면 해줄 수 있는게 별로 없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겨우 설득을 했고, 아내는 ‘단식원 보낸 셈 치겠다’며 허락을 했다”고 밝혔다.

박현제 조합원도 매번 늦둥이 딸이 눈에 밟힌다. 결혼 13년 만에 낳은 첫 딸이 벌써 세 살이 됐다. 그는 “딸한테 가장 미안하다. 딸과 같이 있어 본 시간이 까마득하다. 2012년 아이를 낳고 아내가 몸을 풀 때 3개월 정도 바짝 붙어 있던 시간이 전부였다. 주야 사업장이었고, 현장에서 빈번하게 일이 터져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8개월 간 구속 수감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손배가압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옥죄는 수단이 됐다. 회사가 지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노조와 조합원들에게 청구한 민사 손해배상 청구액은 무려 234억 원. 2010년 공장 점거 파업 이후에는 약 200명의 조합원에게 90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진환 수석부지회장이 포함된 손해배상 건수를 다 합치면 그 액수는 110억 원에 달한다.

“8.18 특별고용 합의, 회사에 합법도급의 길을 열어준 합의”

8월 18일, 현대차 아산, 전주 비정규직지회와 회사의 사내하도급 특별고용 합의는 노동계에 적잖은 충격을 던졌다.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 중 가장 많은 조합원이 소속 돼 있는 울산 비정규직지회가 빠진 합의였다. 노동계는 8.18합의가 사실상 회사의 진성도급화를 인정하는 합의라며 반발했지만, 언론은 현대차 불법파견 문제가 해결된 마냥 보도를 했다. 10년간 함께 싸워왔던 3지회는 산산조각이 났고,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이진환 수석부지회장은 “울산지회가 3지회의 교섭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잘한 선택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것, 이런 식의 채용은 안 된다는 것은 지회 모두 똑같은 입장이었다. 같은 입장과 생각으로 투쟁해 왔기 때문에 그들을 신뢰했다. 이런 합의가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합의 내용과 관련해서도 “지금까지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투쟁의 내용들이 아무것도 들어가 있지 않다. 오히려 이번 불법파견 판결로 얻어지는 권리를 박탈당할 수밖에 없는 합의다. 회사에 합법도급의 길을 열어준 합의이며, 현재도 회사는 전환배치를 실시하며 불법파견을 지우려 하고 있다”며 “또한 2010년 이후의 해고자 이야기만 언급 돼 있을 뿐, 이전의 해고자 이야기는 없다. 결국 불법파견 싸움을 하다 해고된 사람들은 어떠한 구제를 받을 수 없다. 이는 분명 산자와 죽은 자를 나누는 합의”라고 강조했다.

박현제 조합원도 “아산과 전주지회를 설득하지 못한 울산지회의 책임도 있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의 가장 큰 문제는 회사 측과 진성도급, 비정규직에 합의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비정규직 지회는 불법파견 특별교섭 과정에서 여러 부침을 겪으며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의 요구에서 점차 멀어졌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박 조합원은 “요구안 자체가 후퇴 돼 온 것에 대해서는 반성한다. 하지만 모든 사내하청을 외면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결단코 없다. 조합원들이 자기 요구가 아닌 상태에서 이 싸움을 이어나가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8.18합의 이후 공장 내, 외부적으로 혼란에 휩싸였지만, 이들은 여전히 이번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불법파견, 간접고용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싸운 시간만 10년이다. 이진환 수석부지회장은 여전히 현장의 조합원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해당 합의서가 울산지회 총회에서 붙여졌다 하더라도 통과되지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8월 18일 당일에도 노조의 긴급 파업 지침에 300명의 조합원들이 모여 합의서에서 울산지회를 빼 줄 것을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울산 비정규직지회는 오는 18일, 투쟁 수위를 높여 전면파업에 돌입한 후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 만약 18일 선고가 연기될 경우, 4명의 현대차 울산, 아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은 서초동 법원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이어간다. 이진환 수석부지회장은 “지금 회사와 교섭을 진행한다 해도 회사는 8.18합의를 그대로 강요할 것이 분명하다”며 “1심 판결은 투쟁의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다. 판결 내용을 바탕으로 불법파견 판결 이행과 비정규직 전원 정규직화 투쟁을 다시 한 번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

현대차 비정규직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지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유승우

    전남 여수 (명량) 자알 살아봅시다.
    누구하나 알아주지않는 비정규직인생 우리가 바꾸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