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경정비 외주화, 차별적 ‘계급사회’의 축약판

‘불법파견’ 의혹도 일어...“경정비 직영화가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 방식”

지하철 경정비가 외주화되면서, 경정비 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고용 지위에 따라 심각한 차별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계약직 노동자에게 기름과 분진에 다량 노출되는 작업을 배치하거나, 샤워실을 ‘정규직 전용’으로 만들고, 연차 휴가 및 임금 등을 달리하는 차별적 구조는 흡사 현대판 ‘계급제’를 연상케 한다. 이 같은 차별은 지하철 정비 작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결국 안전문제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지하철 경정비 외주화, 차별적 ‘계급사회’의 축약판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발간한 ‘서울지하철 경정비 비정규직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하철 경정비 외주업체인 (주)프로종합관리 내부에서 심각한 고용형태별 차별이 이뤄지고 있었다. (주)프로종합관리는 서울메트로의 외주 용역업체로, 서울지하철 1~4호선 전동차의 설비, 유지 보수 등 핵심적인 경정비 업무를 맡고 있다.

앞서 서울메트로는 2008년 전동차 경정비 업무를 해당 업체로 외주화했으며, 그 과정에서 잔여 인력을 ‘특별검사반’으로 배치하거나 재직자들에게 용역업체로의 전적을 유도했다. 전적 시 정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재직 시 보수의 60~80%를 보장하는 동시에 공사와 동일한 수준의 후생복지를 보장하는 것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현재 경정비 업무 노동자들은 서울메트로 소속 정규직과, 서울메트로에서 용역업체로 전적한 전적자, 그리고 용역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한 자체채용자 등 3가지 고용지위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같은 고용지위는 임금, 업무, 사내 복지, 고용안정, 휴일 및 휴가 사용 등 전반적인 노동조건에서 차별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실제로 서울메트로에서 30년 근속 후 용역업체로 전적한 노동자의 경우 월 450여 만 원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별도의 성과급이 나온다. 경정비 업무를 맡고 있는 서울메트로 정규직 역시 공사 내부 보수규정이 적용되며, 별도의 성과급과 복지포인트가 지급된다.

하지만 자체채용자의 임금은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고지하는 기계정비공 노임 단가를 기준으로, 월 평균 170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다. 자체채용자의 임금은 포괄임금제라 식대와 각종 수당이 포함돼 있고, 물가상승률이 3% 미만일 경우 별도의 임금인상도 이뤄지지 않는다. 별도의 임금체계가 없어 경력이 임금에 반영되지도 않는다.

고용안정에 있어서도 심각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었다. 용역업체는 자체채용자를 모집할 당시 정규직 채용을 명시했지만, 이후에는 계약기간을 1년으로 하는 근로계약서를 작성케 했다. 사실상 ‘계약직’ 신분인 셈이다. 서울메트로에서 전적한 전적자 역시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하고 있지만, 서울메트로에서 전적을 조건으로 정년연장을 보장한 터라 계약기간에 따른 고용불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법파견’ 의혹도 일어...“경정비 직영화가 가장 자연스러운 해결 방식”

업무환경에 따른 차별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메트로 정규직과 전적자, 자체채용자는 같은 차량기지에서 근무하지만 사용이 가능한 시설에는 차이가 있다. 정규직의 경우 이발소, 목욕탕, 테니스장, 샤워실, 탈의실, 휴게실, 신발살균기 등의 시설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나 자체체용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심지어 자체채용자들은 정규직이 사용하는 시간을 피해 목욕탕을 사용하거나, 정규직 샤워실 중 가장 작은 샤워실을 30명 가까이가 임의로 사용하기도 한다. 휴게실도 마련돼 있지 않아 고압전류가 흐르는 차량 기지 내부의 작업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상대적으로 기름과 분진에 다량 노출되는 작업은 자체채용자들의 몫이다.

연차휴가 사용도 고용형태별로 다르게 적용된다. 정규직의 경우 다양한 유급휴가 종류가 취업규칙에 명시돼 있고 일수도 많다. 병가, 공가, 포상휴가, 청원휴가, 특별휴가 등의 특별유급휴가도 별도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용역업체의 유급휴가 종류는 공사 규정보다 적고, 사용 가능한 상황 및 일수가 명시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불법파견 시비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는 정황들도 드러나고 있다. 서울메트로와 프로종합관리 사이의 계약 형태는 ‘도급계약’임에도, 파견 점검항목 31개 중 18개(58.1%)가 사실상 파견계약 형태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법상 파견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음에도 노동자들이 파견에 가까운 노동력을 공급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외부업체에 대한 도급방식으로 운영되는 서울메트로 경정비사업은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문제, 불법파견에 대한 법적 시비 등 매우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방식”이라며 “불법파견 시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규직으로 직영화 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해결방안”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공운수노조 서울지하철비정규지부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등은 23일 오전 11시,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불안과 임금격차, 불리한 업무 분장, 복지에서의 배제 등은 안전한 전동차 정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서울시와 서울메트로가 이번 연구 결과를 수용하여 경정비 용역 직영화와 비정규직 직접 고용을 발빠르게 추진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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