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연금 전쟁 시대, 과연 ‘공무원’만 위기상황일까?

국민 노후소득에는 관심 없는 정부, 본질은 ‘금융시장’ 배불리기

정부가 올 하반기, 공적연금 축소를 위한 칼을 빼들었다. 정부와 여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며 대대적인 공무원연금 손보기에 나섰고, 공무원들이 이에 집단적으로 반발하며 논란이 확대됐다.

공무원연금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를 무렵, 정부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은 ‘공무원연금 개혁’ 논란에 묻혔고, 쟁점이 공무원의 보수 및 연금 수준 공방으로 비껴나면서 공적연금 축소라는 본질적 문제는 모습을 감췄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개혁은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의 일환일 뿐, 정부 정책은 결과적으로 모든 노동자의 노후소득 불안정성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부실한 공적연금을 확충하기는커녕 사적연금을 활성화하고 규제를 완화해, 모든 노동자의 연금 자산까지 금융시장에 던져준 꼴이 됐기 때문이다.

사적연금시장, 저소득층 ‘노후소득’ 보장 가능할까?

박근혜 정부는 짧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낮은 소득대체율을 근거로 사적연금의 활성화를 주장하고 있다. 국민연금 평균 가입기간은 8.1년,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을 기준으로 47%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적연금으로 노후소득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초노령연금과 기초연금,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 부족분을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보완하는 다층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하지만 전문가들은 다층 연금제도의 설계를 위해서는 공적연금의 건실함이 전제돼야 하는데도, 정부가 공적연금의 적정수준 달성을 배제한 채 사적연금시장 활성화만 꾀하려 한다며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확대가 실제 저소득층 노동자에게 실효성 있는 노후소득 방법이 될 가능성은 미미하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15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주최로 열린 ‘경제정책방향의 올바른 길을 묻다’ 토론회에서 “다층연금제도 체계의 혜택은 고소득정규직을 중심으로 집중됐고, 대부분의 노동자와 자영업자는 국민연금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30인 미만 사업장의 저조한 퇴직연금 적용률로 저소득층 노동자는 퇴직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퇴직연금 가입을 강제적용 한다 해도 실효성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개인연금 역시 저소득층의 노후소득을 보완하기 어렵다. 개인연금에 가입하더라도 중도해약률이 높고, 낮은 임금 때문에 개인연금에 추가로 가입할 여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제갈현숙 연구위원은 “2001년 개인연금의 유지율은 33.2%에 불과하다. 100명이 가입하면 67명은 해약하고 33명만 연금을 유지하는 상황”이라며 “대다수의 가입자가 만기 전 해약을 하기 때문에 개인연금이 국민연금의 낮은 연금액을 보완하는 제도가 어렵고, 수익률 감소 등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소득월액별 국민연금 가입자 구성비를 보면, 전체 가입자 규모 중 월 소득 50만원 미만~200만원 미만의 가입자 비중이 60.18%에 달한다. 사실상 국민연금 가입자 절반 이상이 개인연금을 추가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갖고 있지 않은 셈이다.

퇴직연금 의무가입? 법정 퇴직금까지 금융시장에 몰아주기

이 때문에 보험업계는 저소득층의 사적연금 활성화를 위해 정부차원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을 비롯해 사적연금 옹호론자들은 지난달 말 국회에서 ‘사적연금 취약계층을 위한 연금정책방향’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류건식 보험연구원 고령화연구실장은 국민연금에 가입한 저소득계층이 개인연금에 가입할 때 정부가 매월 10만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가 세제혜택 및 보조금 등 지원에 나선다 해도 사적연금이 저소득층의 노후소득 보장을 담보해 낼지는 미지수다. 이재훈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개인연금 중도해약이 손해라는 것을 알지만, 당장 목돈이 필요하거나 소득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많아 중도해약률이 높은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정부가 지원을 한다 해도 현재의 생활수준을 역전할 만한 대책이 아니고서야 가입률을 높일 수는 없다. 오히려 연소득 1억 원 이상의 개인연금 가입률은 60%가 넘는 상황이어서, 정부의 세제혜택은 고소득층에게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퇴직연금 전면 의무화 정책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모든 사업장은 노조나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 퇴직금 혹은 퇴직연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정부의 퇴직연금 의무가입 정책은 사실상 법정 퇴직금을 폐지하고, 퇴직연금을 강제 적용해 노후소득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데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 수급 방식 또한 연금형태와 일시금 형태로 존재한다. 올 6월 기준, 현재 퇴직연금 가입자 중 무려 97.1%가 연금이 아닌 일시금 형태를 택했다. 이재훈 부장은 “일시금으로 받을 경우 과세율이 더 높고, 연금으로 받는 것이 세제혜택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대부분은 일시금형태를 선택하고 있다. 이 역시 당장 목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결과적으로 퇴직연금을 도입한 사업장에서도 퇴직연금이라는 역할을 견인해 내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퇴직연금의 의무가입을 추진한다 한들 노후소득 보장 역할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민 노후소득에는 관심 없는 정부, 본질은 ‘금융시장’ 배불리기

결국 퇴직연금 의무가입 등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은 국민들의 노후소득 보장 보다는 사적연금시장의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재훈 부장은 “정부 정책의 핵심은 법정 퇴직금을 폐지해, 퇴직금 형태의 노동소득 일부를 금융시장의 수요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퇴직금의 수요까지 금융시장으로 넘겨 사적연금 시장을 확대시키려는 의도”라고 강조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심지어 정부는 퇴직연금 자산운용규제를 완화해, 노동자들의 퇴직연금으로 금융자본의 공격적 투자 확대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를 통해 노동자 개인이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C)이나 개인형퇴직연금(IRP)의 투자규제를 완화해,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한도를 현대 40%에서 70%로 상향 조정한다는 방침이다. 개별자산 투자한도도 폐지돼, 최대 70%까지 펀드나 주식 등 공격적 투자가 가능해진다.

이재훈 부장은 “확정급여형의 경우 운용실적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노동자에 전가된다. 원금손실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으며, 특히 수익률이 임금인상률에 미치지 못하면 사실상 손해를 입게 된다”며 “노동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퇴직연금마저 투기 수단으로 동원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공무원연금 개혁안 역시 사적연금 활성화 계획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새누리당과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삭감하는 대신, 퇴직수당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법정 퇴직금 폐지 정책으로, 공무원 퇴직수당 또한 ‘퇴직연금’ 시장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다. 연금 삭감으로 공무원들의 개인연금 가입률을 높여, 사적연금시장이 공무원의 수요도 확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인 셈이다.

가장 큰 문제는 국민연금의 평균소득대체율이 25%에 불과한 상황에서 퇴직연금이 소득대체율을 얼마만큼 보완해 줄 것인가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박광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기획재정부에 퇴직연금 도입 후 소득대체율 변화에 대한 자료를 요구한 결과, 기재부는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이 충실하게 실행될 경우 퇴직연금 소득대체율이 전체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나, 사전적으로 소득대체율 변화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다”고 답변했다.

박광온 의원은 17일 “퇴직연금 시장규모는 현재 약 87조원이며, 전문가들은 2030년이 되면 900조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엄청난 시장이 열리게 되는 것”이라며 “이는 재벌 기업들에게 지금과 비교할 수없는 새로운 수익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은 서민보다는 재벌을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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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규재

    나는 개인연금 십년월이십만원씩 불입후 세금반환후 해약했다 후회안하고 손해안볼것 확신한다 공젹연금외 개인연금은 믿을수도없고 보험회사만 이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