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좌파 시리자 부동의 1위...유럽경제위기에 반격?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 “풀뿌리 민중운동과 연대로 우파 공격에 맞설 것”

그리스 정부가 조기대선을 선택하면서 요동치는 정국이 급진좌파연합 시리자의 집권으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그리스 조기대선 카드는 집권 신민당의 승부수였을 수 있다. 신민당으로서는 올해 말로 약속된 구제금융 졸업을 하지 못한다면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이 바닥인 상황에서 내년 2월 대선에 승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민당으로서는 시리자의 위협 속에서 조기대선을 무기로 채권단 트로이카(IMF, EU, ECB)를 압박하는 것이 최선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트로이카는 신민당이 내민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불안한 전망 속의 구제금융 졸업없는 조기대선이 오히려 신민당에게는 유리할 것이라는 양측의 판단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차피 내년 2월로 예정된 대선에서 신민당의 승리가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트로이카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이 좌파 세력을 통제할 카드가 필요했을 것이다. 시리자가 집권할 경우 트로이카 역시 이 세력과의 힘겨운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트로이카는 신민당이 내민 승부수를 제치고 시리자 공격에 먼저 나선 셈이다. 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기도 하다.

[출처: @syriza_gr]

조기대선 발표 후에도 시리자 지지율 부동의 1위

그리스 총리가 조기 대선 방침을 밝힌 8일 오후(현지시각), 이 시각 전후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시리자는 집권 신민당에 4.8%를 앞서 부동의 1위를 지켰다. 그리스 주간지 <토폰티키>의 의뢰로 여론조사 기관 ALCO가 수행한 조사에서 시리자는 28%의 지지율을, 신민당은 23.2%를 차지했다. 극우 황금새벽당은 5.4%, 연정에 참가하는 파속은 4.7%, 공산당과 포타미는 각각 4.3%를 얻었다.

그리스 의회는 오는 17일 1차 투표를 시작으로 모두 3차례의 대통령 선출(1/2차 200명 동의, 3차 180명 동의 필요)에서 신민당이 내건 전 외무장관 스타브로스 디마스 후보가 실패하면 내년 1월 25일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 집권연정은 그리스 경제 안정을 이유로 대선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신민당과 파속은 현 의석 155명에 16-17명의 추가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평이지만 180명을 확보하기엔 10명 정도가 부족하다.

지난 2월부터 지지율 1위를 달리며 조기총선을 요구했던 시리자는 반대로 대통령 선거 부결과 조기총선 실시를 통해 새로운 그리스, 사회적 국가를 건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곧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

시리자의 부상, “기성정당에 대한 저항 아닌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

그러면 이 같이 그리스 경제 위기 아래 좌파, 그것도 급진좌파가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렉시스 치프라스 당수는 이에 대해 “그리스 경제위기의 효과가 그만큼 사회에 재앙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다수가 정치적 변화를 바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유럽 좌파매체 '트랜스폼네트워크www.transform-network.net': 시리자 중앙위원으로 경제학자인 하리스 골레미스와의 인터뷰)”라고 말한다.

그리스 경제위기 후 실업률은 26%, 청년실업률은 60%로 악화됐고 임금과 연금도 지속적으로 삭감됐다. 보건 예산이 70%까지 줄어들면서 기초 의료서비스는 거의 전멸됐고 예방접종 중지로 말라리아 유행병까지 다시 생겼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어린이 50만 명 이상이 영양실조 상태에 있으며 그리스의 가구의 전기가 끊겼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음식물을 얻기 위해 쓰레기통을 뒤진다. 그러나 가혹한 긴축에도 불구하고 트로이카는 예산 삭감과 연금에 대한 추가 삭감을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치프라스 당수는 “시리자의 도약은 경제 위기의 여파로 그리스의 쇠락에 책임이 있는 주류 정당에 대한 ‘저항 투표’가 아니”라 “시리자가 가시적인 대안을 가진 유일한 정당이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강조한다.

즉, 경제 위기에 임금과 연금을 깎고, 공공기관과 서비스를 민영화하고 정부 예산을 줄이는 게 아니라 반대로 정부 예산을 늘려 내수와 일자리를 확대하고 공공기관과 서비스도 국가가 보장해 기본적인 인권을 지켜야 경제도 활성화되고 사회도 황폐화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리자의 핵심적인 그리스 경제 위기의 대안은 긴축 중단, 부채 탕감과 조건 재협상이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연합의 안정성장협약(SGP, EU 단일통화인 유로화의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가입국의 재정적자의 상한선을 GDP의 3%로 정하고 있는 협약) 배제를 통해 공공지출 증대 △성장 단계에 따른 부채 지불 △국채 발행 △유럽중앙은행의 공공투자 허용을 위한 ‘유로피언뉴딜(유럽신합의)’ △2차 대전 배상 실현 △기초전략산업 재국유화 △연금, 임금 및 일자리 증대가 골자다. 시리자는 특히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 국제사회가 독일의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부채를 갚도록 한 양해를 그리스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일을 해 갚을 수 있게 하자는 논리다.

“유럽 차원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위한 촉매제 될 것”

시리자는 그러나 그리스에서의 정치적 변화는 유럽 차원에서도 핵심적 문제이자 공동의 사회주의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시리자는 1990년대 유럽 사회민주당 정치인들은 유럽 전역에 신자유주의를 추동할 동맹을 결성하고 이를 관철시켜왔고 이제 이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면서 좌파는 이제 위기 극복을 위한 유럽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본다. 유럽이 좌파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선택지는 이제 극우와 유럽비관주의 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며 이 변화의 촉매가 되고자 한다는 것이다.

시리자의 과제는 즉 긴축을 끝내는 것 또는 전후 ‘사회적 민주주의’의 미완된 과업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유럽 사회에 대한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에 기초한 급진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 중산층, 실업자, 가장 핍박받는 계층, 지식인과 사회적 투쟁에 나서는 모든 사회운동을 연합해 새로운 사회적 동맹을 형성하여 살인적인 자본의 착취로부터 사회를 해방시키는 투쟁에 나서자고 한다.

이를 통해 시리자는 사회적 정의와 민주주의 확대, 민중의 필요에 기초한 경제, 모두를 위한 교육, 의료와 존엄을 보장하는 복지 국가를 이루고자 한다. 또 경제 위기 아래 유럽을 황폐화하는 ‘자유시장’ 정책을 멈추기 위해 유럽 좌파는 통합적인 비전과 더불어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정치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치프라스 당수의 말대로 “‘우리가 아니면 누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라는 “지난 유럽사회포럼 모토를 환기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우파의 공세의 시작...치프라스 시리자 당수, ‘발칸의 차베스’

이러한 시리자에 대해 긴축을 강제하며 그리스를 황폐화시켰던 국제자본시장과 우익의 공세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기 대선 방침이 발표된 날만 해도 그리스 주가는 12.8% 곤두박질쳤다. 물론 시리자의 집권 가능성이 현실로 다가오며 투기자본의 이해를 반영하는 주류 언론도 지난 2012년 총선 때와 마찬가지로 시리자에 대한 우려와 악평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이 시리자 당수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발칸의 우고 차베스’라고 불렀지만 우파는 시리자의 집권 전부터 차베스에 대해 해왔던 공세를 퍼붓고 있다.

2012년 총선에서도 우파들은 시리자가 집권할 경우 ‘그리스 경제 악화’, ‘투자자본 이탈’, ‘유럽연합에서의 퇴출’ 등의 시나리오를 내놓으면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었었다. 시리자가 내년 집권할 경우 이 공세는 바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그리고 현재 니콜라스 마두로 정부가 맞았으며 세계 좌파 정권들이 당해왔던, 국내외 우파들이 합세한 실물적인 공세로 전환될 것이다.

시리자에 대한 유럽 좌파 차원의 연대를 호소하면서 영국 신생좌파 ‘레프트유니티’의 앤드류 버긴(http://links.org.au/)이 최근 지적한 것처럼, 시리자는 집권할 경우 1936년 스페인에서 인민전선이 집권한 이래 유럽에서의 첫 번째 노동자 정부가 된다. 그러나 이 노동자 정부는 의회는 장악하더라도 다른 정부기구는 지배계급의 손에 남아 매우 불안정한 정치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선거에서 그리스 경찰의 약 50%는 극우 황금새벽당을 지지했다.

국제자본시장과 우파정치인들이 거의 파괴한 경제 그리고 사회적 구조에서 그리스를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 시리자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풀뿌리 민중운동과 유럽 좌파 연대로 우파 공격에 맞설 것

시리자는 그러나 국제자본시장과 우파의 공세를 풀뿌리 민중운동의 힘으로 돌파한다는 계획이다. 시리자는 경제위기 후 집회시위, 사회운동 연대와 함께 풀뿌리 단체들을 지원하고 좌파의 단결을 강조해 왔고 이에 대해 실제로 민중의 공명을 이끌어냈다고 자평한다.

앤드류 버긴에 의하면, 그리스 도처에는 자기 조직적인 사회적 연대 센터와 단체들이 생겨나 사회적 의약품, 농부들이 직접 제공한 음식, 심리 치료, 기술 공유 등을 제공하고 있고 여기에서 시리자는 주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풀뿌리 민중운동은 지역사회가 스스로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기반을 이루며 이미 노동자계급 사회 및 경제적 저항의 핵심이자 시리자 정부를 지키는 정치적 저항의 핵심 기반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그리스 민중은 지난 4년 간 35번 이상의 총파업을 강행했다.

유럽 좌파와 사회운동의 성장도 다가오는 도전과 시련에 시리자를 홀로두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 총선을 앞둔 가운데 최근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스페인 대중적인 풀뿌리 좌파 ‘포데모스’의 부상, 물사유화 반대 투쟁으로 사회적 저항이 다시 고조되고 있는 아일랜드(2016년 4월 총선), 내년 5월 영국 총선 시 신생 통합좌파 ‘레프트유니티’의 선전도 예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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