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이 나빠지면 비정규직이 좋아지나?

[연속기고](4) 기업에 대한 통제와 노동자의 연대

한국에서 노동자로 살아가기 매우 힘들다.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 노동조합의 활동을 불온시하는 경찰과 사법부, 노동자들이 권리를 찾고자 하면 ‘경제위기’를 떠들어대는 언론에 둘러싸여,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쉽게 정리해고 당하는 노동자들

코오롱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의 최일배 위원장은 12월 13일 현재 단식 39일째이다. 재계서열 23위의 코오롱이 돈이 없어서 78명을 정리해고 했다는데 법원은 이 정리해고를 인정해주었다. 코오롱은 탕웨이에게 거액의 광고료를 지불할 돈은 있어도, 정리해고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두 명이 또다시 공장 굴뚝에 올라간 날 또 한명의 정리해고자는 세상을 등졌다. 알려진 분들만 26명이다.

한국은 정리해고가 너무 쉽다. OECD의 통계를 보더라도 1013년 한국의 정규직 해고에 대한 고용보호지수는 34개 회원국 중 22위였다. 정리해고에서의 안정성은 34개국 중 30위로, 그만큼 쉽게 정리해고 당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쌍용자동차의 경우 회계조작이 명백해도 대법원은 회사의 경영권이라면서 정리해고를 인정했다. 콜트-콜텍은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라는 추상적인 주장을 수용하여 정리해고를 인정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서 내놓은 ‘이직사유별 피보험자격 상실자 추이’에 따르면 2013년 정리해고나 희망퇴직 등으로 직장을 잃은 이들이 무려 87만 명이나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구조조정의 원인이 경제악화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0년부터 해고되는 노동자들의 수가 해마다 늘고 있는데, 경제성장률은 조금씩 둔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지속적으로 성장은 하고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업체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서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결국 콜트-콜텍처럼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기 위해서 정리해고를 하기도 하고, 고등법원에서 정리해고 무효판결을 받은 풍산처럼 땅장사를 하려고 정리해고를 하기도 하고, 코오롱처럼 노동조합을 없애려고 정리해고를 하기도 한다. 정리해고가 너무나 쉬운 구조조정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들의 고용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다.

인격무시와 높은 노동강도, 저임금이 평범인 나라

한국에서는 정규직이라도 일터에서 존중받지 못한다.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이 비행기를 회항시킨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안전업무를 담당하고 객실 전반을 책임지는 권한을 가진 사무장이라 하더라도 회사 임원에게 잘못보이면 폭행을 당할 수 있는 사회이다. 기아자동차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물건이 떨어지는 사고가 있어서 라인을 멈춘 노동자를 징계하겠다고 한다. 위험이 있을 때 라인을 멈추는 것이 당연한데도, 죽더라도 그냥 일하라고 협박하는 셈이다. 노조의 힘이 가장 세다는 기아자동차에서도 노동자들은 이렇게 기본적인 권리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고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모습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계속 오르고 있는 것일까?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성장률은 지난 6년간 0%대였다. 경제성장률은 3%대인데 실질임금성장률이 0%대라는 것은 임금이 실제로는 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은행과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의 누적 상승률은 0.7%인데, 3분기의 경우 상용직 노동자들은 -0.2%였고, 임시직은 -2.8%였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모두 임금이 사실상 감소하거나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은 것일까?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은 312만1천213원이다. 그러나 대다수 정규직이 이만큼 받는다는 뜻이 아니다. 최근 발표된 김낙년 동국대교수의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소득세 자료에 의한 접근’ 논문에 의하면 연소득 4,000만원 이하인 노동자들이 86%이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333만원이 임금의 최대치라는 것이다. 그 이상을 받는 15%의 최상위층, 즉 의사나 변호사, 일부 금융계 노동자등 최상층이 평균임금을 올리고 있는 것일 뿐 대다수의 일반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린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임금이라고 이야기하는가.

그런데도 ‘정규직 과보호’가 문제라는 정부

정부는 ‘정규직 과보호’가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11월 25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출입기자단 정책세미나에서 “정규직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면서 정규직 때문에 비정규직이 늘어난다고 발언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27일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해 고용시장 유연화 등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12월 1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격차, 노동시장 경직성, 일부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 등은 노사, 노노 간 갈등을 일으켜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애물”이라고 주장하며 정규직 노동자들을 나무란 바 있다.

곧 이어 ‘정규직 과보호’를 해소하겠다는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리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호봉제를 폐지하고 성과와 직능 직무급으로 전환하자고 하고 있다. 그리고 입사 초기에는 호봉제, 중간에는 성과연동 직무급제, 장기근속 시 임금피크제로 하는 복합임금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도 내놓는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업무성과가 낮은 노동자는 직업훈련이나 전환배치가 가능하도록 하는 취업규칙 등 사내 룰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노동유연성을 강조했다.

이런 대책들은 비정규직을 위하는 것이 안라 기업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하는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거친 표현을 쏟아내며 기업의 이익을 가로막는 모든 규제를 철폐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규제개혁위원회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었다. 그리고 기업을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 ‘규제개혁 추진단’에는 규제완화를 담당하는 공무원들이 직접 들어가서 공동논의를 하고 있다. 10월에 그 내용을 바탕으로 대한상공회의소는 “경제 발목잡는 5대 규제 개혁과제”라는 이름으로 정부에 건의문을 제출했다. 이 내용에는 ‘성역규제’라는 이름으로 ‘파견업종 제한과 파업시 사업장 점거 허용문제, 대체근로 금지’를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들어있다. 또한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보호제도의 손질’을 요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는 이런 기업들의 요구에 발맞추어 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정규직 권리 빼앗으면 비정규직 권리가 늘어나나?

지금도 한국에서는 정리해고가 너무 쉬운데, 정리해고의 요건을 완화해버리면 조금이라도 수익성이 악화되는 순간 기업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보다는 정리해고만을 대안으로 내세울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리해고는 손쉬운 노조탄압의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정리해고로 노동시장에서 쫓겨난 노동자들은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밖에 없으므로 비정규직이 양산된다. 파견법과 기간제의 개악이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안이듯 정리해고의 요건 완화도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늘리는 개악인 것이다.

‘정규직 과보호’ 운운하면서 정부가 강조하는 것은 정규직 임금체계 개편이다. 정부는 근속년수가 낮은 입사 초기에는 호봉제를 하고, 나이가 들면 임금피크제를 하자고 한다. 청년과 고령자의 임금을 낮추자는 이야기를 참으로 요란스럽게 한다. 그리고 중간시기에는 ‘성과 연동 직무·직능급제’로 전환하자고 한다. 이것은 개인별 성과와 하는 일에 따라서 임금을 달리하겠다는 것인데, 성과에 대한 판단은 회사의 고유권한이므로 개인들은 자신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권리가 없다. 그리고 직무급제를 통해 임의로 노동자의 일을 구분짓고 위계화해서 노동자를 차별하는 구조를 만들려고 한다. 결국 이 임금체계는 ‘임금은 회사가 알아서 줄테니 주는대로 받으라’는 것이다. 임금은 개별화되고 차별이 정당화되고 회사가 주는대로 받게 되면 임금이 더 낮아질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게 낮아진 임금은 비정규직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기업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008년 이명박정권이 법인세율을 3%나 내렸을 때 기업들은 투자를 활성화하지 않고 그 돈을 기업유보금으로 쌓아두었다. 대기업들은 158조원의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지만 전혀 투자하지 않는다. 세계경제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단기이익만을 노리는 경영으로 전환하였다. 결국 기업소득분배율은 늘고 노동소득분배율은 계속 줄어든다. 기업들은 모든 이윤을 독식하면서도 더욱 탐욕을 부리고 있다. 정규직 임금도 깎고 파견허용업종도 확대하라고 요구하는 대한상공회의소 건의문을 보면, 기업들이 깎은 정규직 임금을 비정규직에게 돌려줄 리가 없다.

극한에 다다른 비정규직 불만을 정규직으로 향하게 하려는 정부

정규직‘과보호’ 혹은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정치권의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보수언론들은 사설이나 기획기사를 통해서 정규직을 공격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비정규직의 희생 위에 정규직에게 고임금·고복지 혜택을 제공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하고, 중앙일보는 “망국적 정규직·비정규직 격차는 방치할 수 없다”고 한다. 매일경제신문은 기획기사를 통해서 힘센 정규직 노조 때문에 신규채용이 안 되고 비정규직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비정규직을 걱정하는 듯 한 이 기사들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 제대로 보도한 적도 없고, 보도를 하더라도 비난 일색이던 신문과 방송이 정규직을 공격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규직 과보호’ 운운하는 것은 실제로 정규직의 권리를 빼앗기 위해서이지만 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도 있다. 한국의 비정규직 상황은 극한에 달해 있다. 생활고로 인한 자살도 늘어난다. 그런데도 정부는 서민들에게 담뱃값 등 세금을 올리고, 부동산 활성화를 위해서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 분노가 터져나오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상황이다. 정부도 이 분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이런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기업의 편에 서는 한편, 이 불만이 정부에게로 향하지 않도록, 오히려 또다른 피해자인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로 향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종북’ 프레임으로 시민들의 적대감을 부추기는 것으로서 자신을 유지해온 이 정부는 종북프레임마저도 흔들릴만큼 노동자들의 분노가 커지자 또 하나의 희생양을 만들려고 한다. 그 뒤를 따라서 보수언론들은 앵무새처럼 ‘정규직 이기주의’를 합창한다. 물론 그 프레임은 시민들에게는 아직 잘 먹혀들어가지는 않는다. 대기업의 갑질과 노동자들의 권리 부재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북’ 프레임이 어디 이성적인 것이었던가.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이들의 분노를 유도해가는 교묘한 언론과 정부와 기업의 선동 속에서 정규직에 대한 분노가 확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업에 대한 통제와 노동자의 연대가 올바른 길

문제는 대기업에 대한 ‘과보호’이다. 12월 12일 법원은 이마트와 롯데마트가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판단하며 영업제한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중소자영업자들을 살리기 위한 아주 작은 규제마저도 대형마트의 손을 들어서 없애버리는 판결이다. 법원이 공정성을 잃고 대기업 편을 드는 것은 일상적인 현상이다. 지난 5년간의 감세혜택의 1/3이 재벌에게 쏠려있는 것도, 정부가 대기업의 편익을 우선 고려했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처벌도 약소하기 짝이 없다. 당진 현대제철에서는 지난 2013년 5월 노동자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지만 벌금 5000만원 형을 받았을 뿐이다.

기업들은 언론과 정부와 사법부가 모두 자신의 편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힘을 이용하여 정부의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벌어들인 돈은 투자하지 않고 대주주 주식배당이나 기업유보금으로 쌓아둔다. 권한이 차고 넘치니 마음대로 정리해고를 하고, 위험작업은 안전시설을 하는 대신 하청으로 떠넘기고,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들에게는 단가인하 압력을 행사하고, 지역 골목상권을 침해하고, 학교 앞에 호텔을 짓도록 로비를 하고, 불산누출 등 대형참사로 이어질 화학물질을 다루면서도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지역민들에게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자료도 내놓지 않는다. 대기업들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사용하여 사회적인 약탈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사회와 노동자가 떠안고 있다. 기업을 통제하지 않는 사회는 모두가 불행한 사회이다.

정말로 모두가 살기를 원한다면 정규직 노동자들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 대한 사회적 통제를 요구해야 한다. 대기업의 재벌총수들이 전횡을 저지르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의 권리가 더 많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어야 재벌총수일가가 기업을 함부로 하고, 기업이 정권에 로비를 하고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사회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권리가 있어야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고 안정적인 일자리로 신규채용을 늘리라고 요구할 수 있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될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정규직 노동자들이 공격을 받는 것은 정권과 기업이 유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이 기업이 만들어놓은 위계에 순응하기 때문에 생기는 결과이기도 하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놓고 통제하면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비정규직의 권리 신장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연대의 관점’, ‘전체노동자’의 관점을 갖지 못하면 정규직들이 자신의 권리만을 위해서 싸우게 된다.

내 임금인상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최저임금인상을 위해서 함께 싸우고, 공무원연금을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국민연금을 제대로 올리기 위해서 싸우고, 내 고용안정을 위해서 정리해고에 반대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비정규직법 개악을 막기 위해서 싸우고, 내 노동조건보장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와 권리보장 요구를 내걸고 함께 싸워야 한다.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아직 조직되지 못한 비정규직과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서 힘쓰고, 그 노동자들과 더불어 전체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그럴 때 정부와 기업이 갈라놓은 위계를 무너뜨릴 수 있고, 이렇게 노동자들을 가르고 정규직을 공격하는 정부와 기업에 맞서 노동자 모두의 권리를 찾을 수 있다. <연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