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쿠바와 53년 만에 국교정상화...러시아 때문?

미국 언론, 러시아 견제 위한 쿠바 견인책...내년부터 국교정상화 협의

미국이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이 실패했다고 인정하면서 역사적인 쿠바와의 국교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시작한다고 밝힌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기울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각), 53년 간 단절돼 있던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설립해 국교 정상화를 위한 협상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간첩 등의 혐의로 미국에 수십년 동안 수감돼 있던 쿠바 양심수 ‘쿠반 파이브(cuban five)’ 중 남은 3명과 미국 간첩 혐의로 쿠바 정부에 의해 수감된 미국인 1인을 석방하고 양국에 대사관을 설치하며, 무역과 여행 제한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오바마의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발표 후 쿠바에서 망명한 이들 다수가 살고 있는 마이애미에서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고 미국 CNN이 18일 보도했다. [출처: 씨엔엔 화면캡처]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특별 성명을 통해 “미국의 쿠바 봉쇄는 민주적이고, 번영하며 안정적인 쿠바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실패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면서 “1961년과 마찬가지로 쿠바는 여전히 카스트로 일가와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는 또 “우리는 같은 정책을 계속 하면 다른 결과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쿠바를 붕괴로 몰아가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쿠바 인민들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같은 날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회장도 성명을 발표하고 “영웅적인 쿠바 민중은 심각한 위협, 침략, 역경과 희생 속에서 신의가 있는 것으로 증명됐고, 독립과 사회 정의를 위한 우리 이상에 대한 신의는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쿠바공산당 기관지 <그란마>가 보도했다.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회장은 또 “국가 주권, 민주주의, 인권과 외교 정책과 관련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깊은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는 대화할 것이라는 의지를 재확인한다”면서 “나는 미국 정부에 특히 여행, 우편서비스와 통신 제한을 포함해 양국 시민, 가정 간 관계를 제한하는 장애의 철폐를 호소한다”고 알렸다.

한편, 이번 결정에 교황과 캐나다 측이 협력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바티칸은 17일 성명을 내고 “프란시스코 교황은 미국과 쿠바 정부가 최근 역사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양국 시민의 이익을 위한 목표로 외교 관계를 설립하기로 한 역사적인 결정에 따스한 축하를 표현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쿠바와의 외교관계를 단절한 것은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 주도로 쿠바 민중이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 정부를 수립한 지 2년만인 1961년 1월이다. 그 동안 미국은 쿠바에 대해 경제 봉쇄와 제재를 감행해 왔다.

그 동안 쿠바와 국제사회는 쿠바에 대한 미국의 경제 봉쇄를 해제해야 한다고 촉구해 왔다. UN총회에서는 쿠바 봉쇄해제 결의안이 미국과 이스라엘 외 절대 다수국의 찬성으로 채택돼 왔으며 올가을에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주류 언론, 러시아 견제를 위한 쿠바 견인책

미국 정부는 그러나 이러한 보편적인 요구를 완강히 외면해왔다. 오바마 대통령의 갑작스런 결정에 대해 미국 주류 언론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조처로 풀이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7일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에 대한 경제 및 외교 개방에 관한 갑작스런 발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카스트로 정권과의 긴밀한 관계를 복원하려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해석했다.

이 언론에 따르면, 올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초전 중 러시아 당국자는 쿠바와 안보 관계 재건설에 관한 회담을 개최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경제 혼란 때문에 쿠바는 보다 안정적인 경제적 지원을 위한 다른 방안을 찾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영국의 주 쿠바 대사를 지냈던 폴 웹스터 헤어는 이 언론에 “(쿠바는) 경제적 자원과 달러를 긴급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러시아는 제재를 받고 있고, 물론 이란도 그렇다. 중국은 꽤 냉정한 기업인”이라고 지적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여름 쿠바를 방문하고 350억 달러 이상의 쿠바 부채 중 90%를 탕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러시아는 또 에너지 탐사, 마리엘 항구 현대화, 공항과 화물터미널 건설을 약속했었다.

한편, <블룸버그>는 18일 “쿠바에 대해 푸틴에게 한 오바마의 명확한 메세지, 우리가 이겼고 당신은 졌다”는 제목으로 “카스트로와 함께 한 오늘 발표로 오바마는 푸틴의 멍든 눈을 다시 한번 찰싹 때렸다”고 보도했다.

미국 백악관은 쿠바와 국교정상화 계획을 알리기 하루 전인 16일,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에 오바마가 서명할 것이라고 밝힌 상황이기도 하다.

한편, 쿠바가 해외 투자 유치와 시장 경제화를 추진해온 상황에서 미국의 재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경제 봉쇄를 해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난 5월 말 미국상공회의소의 토마스 도노휴 회장은 쿠바 수도 아바나를 방문해 “양국이 관계 개선하는 것은 지금밖에 없다”면서 “오랜 정치의 벽을 허물고 미국 정부는 양국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방침은 대통령 행정령으로 수행되며 완전한 경제 봉쇄 해제를 위해서는 미국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국교정상화를 위한 양국 협의는 내년 1월 국무부 차관보 등 외교단의 아바나 방문과 함께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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