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 위해 희생되는 노점상

[기고] 강남구청 전시행정 속에 스러져가는 노점상

노점상을 도시빈민이라 한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당시 시정개발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점상 80% 가량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수준과 비슷하거나 대부분 차상위 계층에 속한다. 이 밖에도 학계의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노점상 품목 가운데 비교적 높은 수입을 얻는 포장마차의 경우에도 부부나 2인 이상의 가족이 새벽까지 장사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또 개개인의 생활환경과 주거실태 등을 총체적으로 검토했을 때 대부분 노점상들은 가난하다.

이렇게 노점상을 도시빈민이라 한다면, 이들은 ‘노동할 능력과 노동할 의사가 있는 경제활동인구임에도 임노동체계 외곽에 머무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정상적으로 취업할 길이 막혀 있거나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사람들로, 비공식적인 직업인 파출부, 노점상, 행상, 폐지수집, 가내하청, 부업 등으로 살아간다. 도시빈민은 과거 농촌에 대한 지속적인 수탈로 대대적인 이농 현상이 진행되면서 도시로 내몰려 재생산된 상대적 과잉인구로, 항시적으로 노동력 재생산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노점상과 철거민 등의 본격적인 생존권투쟁은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조직되면서 출발했다. 특히 이들의 투쟁은 80년대 민주화운동과 긴밀하게 결합하며 발전하였기에 상대적으로 자신의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적 연대의 폭을 넓혀 왔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시빈민 운동은 도시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도시란 단순히 농촌과 다른 생활양식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라 노동의 사회적 재생산을 이루어내는 공간이거나 투자와 축적에 따라 구조가 수시로 바뀌는 곳이다. 이는 주거공간을 둘러싼 개발 사업과 이로 말미암아 파생하는 환경, 문화제 파괴, 세입자와 철거민, 노점상의 문제까지 재생산영역에서 벌어지는 복합적인 계급갈등으로 드러난다. 지역과 공간의 크고 작은 조직과 단체들은 계급갈등의 주체인 생산현장의 노동자조직을 넘어 재생산영역에서 유무형의 다양한 사업과 실천들을 낸다. 따라서 그들은 지역과 공간에 있어서 계급적 실천이라는 중요한 과제에 놓인다.


강남이라는 곳에 한정지어 살펴보면, 그 어떤 도시보다도 자본 축적 과정에서 급속한 변화를 이루어내며 소비영역을 담당하는 곳으로, 시각적으로도 매우 차별화된 도시미화를 꾀한다. 국제적인 도시 ‘강남스타일’을 위해 영세상인과 노점상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말단 공무원과 비정규직 단속반으로 고용되는 미성년자, 청년실업자들을 동원해 가난한 이들 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도시를 분열로 이끈다. 나아가 5년 전 ‘용산참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국가는 폭력적 개입을 은폐하면서 실질적으로 이를 담당하거나 민간 경비용역의 활동을 배후에서 묵인하는 역할을 한다. 강남구청은 소위 ‘지저분한 거리'를 감춘다는 명분으로 7억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 거리의 보행권을 운운하며 노점상들을 싹쓸이하고 그 자리에 돌 화분을 설치하여 일반 시민의 보행권까지 침해한다. 이 모든 게 ‘공무’라는 이름에 적합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허울 좋은 ‘거리의 미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강남 거리의 도시미화사업을 둘러싼 노점단속의 본질은 갈등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정이거나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추악한 전시행정일 뿐이다. 화려한 도시의 이면에 숨겨진 자본의 본질과 폭력적인 국가의 문제는 노점상, 철거민, 노숙인과 같은 도시빈민의 문제로 비로소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가 걷고 있는 이 화려한 거리는 그냥 거리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문제는 노동현장에 그치지 않고 자본의 이윤을 쫒는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이는 노점상만의 문제를 넘어 거리를 둘러싼 권리, 도시의 권리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도시공간의 재편 과정에서 전개되는 계급투쟁에서 도시빈민의 저항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의 힘만으로는 그 한계가 분명하기에 한겨울 사업장 밖에서 투쟁과 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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