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와 사찰에 분노하는 우주회의 사이버 망명 이야기

[기고] 카톡 사이버사찰 피해자들의 새로운 싸움

2,600만 명이 사용하는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이 감시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온 국민이 경악했던 2014년 가을은 ‘사이버 망명’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켰다. 사건의 발단은 세월호 사건으로 집회·시위를 했던 정진우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수사기관에 무차별적으로 제공되어 선량한 사람들이 감시 사찰의 대상이 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경찰이 다음카카오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는 47개 방에 모인 2,368명의 연락처와 대화 내용이다. 그 가운데 2,186명은 해당 카톡방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정진우 씨와 같은 방에 초대됐다는 이유로 2천여 명의 개인정보가 제공된 것이니 경악할 만하다.


내가 운영자로 있는 단체 카톡방 우주회(비오는 날 술 마시는 모임)도 자료 제공의 대상이 되었던 모양이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단체 카톡방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노동자,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있는 대화방이 수사기관에 털렸다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참으로 큰 충격이었다. 심지어 아직 그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도 있을 터이니 더욱 기가 막힐 노릇이다.

어려운 형편에 아이가 넷이나 되는 어느 버스 해고 노동자의 막내 돌잔치를 돕는 이야기도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서 높은 사람들 뒷담화도 좀 하고, 가끔씩 신문 1면을 장식하는 큰 도둑놈들 거품 물고 씹기도 하고, 선거철에는 이 당, 나쁜 당, 저 놈, 좋은 놈 등 제멋대로 정치평론도 하고, 연예인들의 사건 사고도 관심 없는 척하면서 꼼꼼하게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펴는 뭐 그렇고 그런 ‘살아가는 이야기방’이었다.

운영자를 포함해서 대부분이 노동자로 살아온 사람들인데 고관대작들과 국정을 논할 것이며 거창한 국제정세를 논할 것이냐는 말이다. 대부분 하루의 고단한 삶에 짓눌리는 고만고만한 소시민들의 사이버 잡담 장소가 싹쓸이 정보제공의 대상이 되다니 아무리 국내 토종기업의 소통방을 애용해 주려고 해도 견딜 수가 있어야지.

우주회는 결국 그 일이 있고 나서 텔레그램이라는 곳으로 금시초문의 사이버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현장에서도 상시적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다. 휴게실에서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것도, 심지어 화장실 들락거리는 것도, 공장에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의 일거수일투족이 상시감시와 통제의 대상이다. 특히 노조 활동가들은 퇴근 후의 사생활까지 추적당하기 일쑤니 감시와 통제라면 이골이 날 만도 하다. 이번 카톡 사찰 사건은 그만큼의 트라우마에 불을 질렀다.

더 나아가 이번 건으로 평범한 시민들이 받았을 충격과 감시의 공포는 상상 이상의 것일 수밖에 없다. 지금이 일제 밀정의 눈을 피해 만주 벌판을 달려야 하는 시대도 아니고, 막걸리법으로 인권이 유린되던 박정희 군사독재나 1984년 조지오웰의 빅브라더 시대가 아닌 다음에야 도대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말이다. 그렇게 모두가 어이없는 국가기관의 감시와 사찰을 확인한 분노의 가을이 지나갔다.

지난 12월, 정진우 씨와 나를 포함해 피해자 24명은 국가와 다음카카오를 상대로 1인당 300만 원의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이 압수수색 영장을 카카오 측에 직접 제시하지 않고 팩스로 송부하고, 카카오톡은 그 내용을 메일로 송부해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또 압수수색 대상이 대화 ‘상대방’의 아이디와 전화번호 등에 국한돼 있는데도 실제 압수수색은 대화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대상으로 하여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데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했다. 피해자들은 “최근 폭증하고 있는 카카오톡, 밴드, SNS 매체 등에 대한 안이한 수사방식을 지적하고 적정한 압수수색 방향과 경계, 국가의 위법행위를 확인하고자 한다”는 취지로 이 소송을 제기했다.

또한 우리 피해자들은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첫째는 카카오톡 압수수색 영장에 대한 것이다. 카카오톡 대화 상대방 아이디 및 전화번호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 것은 헌법 제12조 영장주의 및 우리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것이다. 단체카톡방 압수수색 대상을 직접 대화한 상대방으로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기재하거나 압수수색을 집행하는 경우, 불특정 다수의 개인정보가 압수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영장집행 대상이 되는 것은 헌법이 금지하는 포괄영장이라고 보았다. 같은 대화방에 속해 있던 우리들의 전화번호와 대화내용을 압수 수색한 것은 범죄 혐의를 밝힌다는 목적과 전혀 무관한 불필요한 공권력 행사이며, 기본권을 과잉하게 침해한 것이다.

두 번째로 통지에 대한 헌법소원도 냈다. 압수, 수색, 검증의 집행에 관한 통지를 규정하고 있는 현행 통신비밀보호법 제9조의3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것이다. 이 규정은 수사대상이 된 가입자에게 통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화방에 있던 피해자들은 수사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의 개인정보가 제공됐다는 통지를 받지 못했다. 형사소송법이 압수사실을 ‘정보주체’, ‘발신인이나 수신인’에게 통지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통비법은 정보 주체를 ‘수사대상이 된 가입자’로 한정해 적법절차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고, 평등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통신비밀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럽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2014년 가을이 지나고 12월 27일 여론조사 업체 닐슨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주간 UV(Unique Visitors·순방문자)는 10월 중순 국내 172만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줄곧 감소해 지난달 초에는 113만 명까지 떨어졌다. 국내 메신저 카카오톡은 2,600만 명대 이용자를 유지해 큰 타격은 없었다. 주간 UV는 1주일간 한 사람이 특정 서비스를 여러 번 중복 이용해도 한 명으로 집계한 수치다. 국가기관의 감시와 사찰 사실의 공개로 인해 요란하고 스산했던 가을이 지난 후에도 사람들은 큰 변화 없이 소통을 위한 기존수단의 대안을 명확하게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감시와 사찰 앞에서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이용자들에게 망명이 명쾌한 답이 되지 못했던 것일까? 카톡방 사찰 사건은 분노에 찬 사이버 망명객들과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 이외에는 사람들의 뇌리 속에 한때의 불쾌한 기억으로만 남고 말 것인가?

결국은 감시와 사찰이 만연한 한국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재확인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해 변함없이 지난한 싸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우리 피해자들은 재발방지를 위해 끝까지 싸우기로 했다. 독자 여러분들의 지지와 성원을 진심으로 당부 드리고 싶다.

현재 사이버 망명객들이 모인 ‘우주회’는 변함없이 삶의 애환과 사회활동의 정보를 소통하고 있다. 눈 오는 겨울에는 우주회를 ‘설주회’로 임시 개명해야 하지 않느냐는 오래된 논쟁을 포함해 감시와 통제 없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이 온갖 말 안주와 술 한 잔의 번개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카카오톡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법적 문제제기가 되고 있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지난 가을의 음울했던 기억을 애써 감추며. 국가기관의 감시와 사찰에 저항하는 분노의 흐름이 거대한 파도로 몰아쳐서 다시는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며, 사이버 망명지에서 글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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