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평리의 봄, 우리의 봄은 성큼 다가와야 한다

[기고] 우리를 대신해 송전탑에 맞선 삼평리 주민들을 감옥에 보낼 수는 없다

2014년 7월 21일 새벽 6시. 주민 3명과 농성장 당번 활동가 5명이 지키고 있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송전탑 반대 농성장에 한국전력(이하 한전) 직원 100여 명과 경찰 수십 명이 느닷없이 들이닥쳐 농성장을 부수고 7명 전원을 연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달 전 대규모 경찰병력과 용역들이 마치 전쟁터의 점령군처럼 몇 개의 고지를 연이어 함락시키듯 밀양 송전탑 농성장을 장악할 때, 언론에 행정대집행을 예고하고 각지의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대대적 '토벌작전'을 폈던 것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앞서 언급한 6월 11일 밀양에서 밀어붙인 행정대집행에 대한 불법성 논란이 거세게 일자, 한전은 그 이름조차도 생경한 '대체집행'이라는 방식을 들고 들어왔다. 명칭만 다를 뿐 물리력을 동원한 강제집행이라는 것은 행정대집행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전 대구경북 건설지사는 6월 20일 삼평리 농성장과 망루를 철거하기 위해 대구지방법원에 대체집행을 청구했다. 이 청구를 기각해 달라는 수천 명의 탄원서가 법원에 접수되었고 법원은 7월 25일 첫 심리를 예고한 상태였다. 주민들이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던 중, 기습적이고 폭력적인 대체집행을 실시하여 삼평리 주민들의 삶과 희망을 짓밟았다.

평균 70~80미터 높이의 고압 송전탑 7기가 삼평리 마을을 에워싸고 송전선은 마을 한복판과 농토를 가로지르게 된다. 주민들의 피해가 너무나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선택은 저항 밖에는 없었다. 이들의 시작은 정부 정책을 반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남기 위한 피눈물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두 차례의 희망버스를 비롯하여 전국적 규모의 대규모 집회가 이어졌던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에 비해, 청도 삼평리의 싸움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싸움이었다. 밀양에 비해 작은 마을인 삼평리에 단 한 기의 송전탑 건설만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삼평리 주민들과 연대 활동가들의 투쟁은 참으로 끈질기고 대단했다. 이는 사실 우리와 미래세대를 대신한 싸움이었다. 탈핵의 기치를 높이 든 삼평리 주민들의 싸움은 사실 우리가 마땅히 직접 나서야 할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시작된 주민들의 싸움에 먼저 화답한 것은 대구와 경북지역의 단체들과 활동가들이었다. 이들은 '청도 345kV 송전탑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농성장을 지키며 주민들과 연대했다. 미디어 활동가들이 카메라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고 문화예술인들도 다양한 작업으로 삼평리를 가득 채워갔다.

힘들고 지루한 싸움이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신명을 잃지 않았다. 노랫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들이 모여 장터를 기획하고 잔치를 벌였다. 평생을 지켜온 땅과 삶을 빼앗길 절박한 상황에서도 모두가 웃으며 싸움을 이어갔다. 이는 욕심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싸움의 결과로 돈이나 명예를 바라는 이들이 몇이라도 있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다. 지금처럼 살던 자리에 그대로 살겠다는 바람은 욕심이 아니라 너무나 당연하고 정당한 권리이기에 주민들과 활동가들은 즐겁게 싸워왔고 또 싸우고 있다.

하루하루 농성장을 지키기에도 힘든 나날들 중에도 삼평리 할매들은 먼 길 나서기를 머뭇거리지 않았다. 위압적인 초고압 송전탑 앞에 선 밀양주민들과 줄곧 함께했고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스타케미칼, 씨앤앰 케이블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는 현장으로 한달음에 먼저 달려가 거친 손으로 노동자들의 뺨을 어루만졌다. 살을 파고드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세월호 참사 가족들을 만나 부둥켜안고 통곡을 했다. 흐르는 눈물이 뺨에서 얼어버려도 광화문 농성장을 선뜻 떠나지 못했다. 이렇게 소박하고 예쁜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일터에서 삶터에서 쫓아내는 것이 바로 국가고, 공권력이고, 국책사업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35명의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81건의 형사사건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 신분이 되어 1억여 원의 벌금을 내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하는 처지가 되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맞서던 강정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 밀양송전탑 저지 싸움을 하던 밀양 주민들과 활동가들 앞에 떨어졌던 벌금폭탄과 노역 살이가 이제 곧 삼평리 주민들과 활동가들 앞에도 놓이게 된 것이다. 심지어 공사방해금지 가처분 결정에 따라 한전은 주민들을 상대로 2억 원이 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오직 자신의 삶과 재산을 지키려던 사람들을 힘과 폭력으로 결국 내쫓아 버렸으면서, 다시 국가는 막대한 벌금을 부과하고 회사는 소송을 통해 더욱 깊은 큰 상처를 생성하는 곳이 바로 '고통공작소' 2015년 대한민국이다.

이 고통을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에 반대했고 노후 원전 폐쇄와 신규원전 건설 중단에 동의했다. 그러기 위해 청도 삼평리의 송전탑 건설은 꼭 막아야 하는 일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함께 싸웠다. 하루가 멀다하고 삼평리 농성장을 찾았던 이들이나, 멀리서 마음으로 후원으로 함께 했던 사람들도 모두 함께 싸웠던 사람들 아닌가. 함께 싸웠으니 함께 책임지는 것은 너무나 지당한 말이 아닌가.

청도 삼평리 싸움에서 발생한 모든 이들의 벌금과 법률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후원의 밤이 바로 오늘 대구에서 열린다. 멀어서 가지 못하시는 분들께 대구에 갈 차비를 삼평리에 보내자고 제안한다. 시간과 상황이 허락하는 분들은 주저 말고 달려가 먹고 마셔서 연대해 주면 좋겠다. 나는 오늘 345,000V 송전탑을 상징하는 34,500원을 입금할 생각이다. 345,000원을 입금하면 더 멋있겠지만 무리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으로 더 많은 이들의 동참을 호소하고 싶다.

2015년 3월 6일, 바로 오늘, 대구 프린스 호텔 별관 2층 리젠시홀에서 오후 5시부터 열리는 삼평리 후원의 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꿈을 꾼다. 삼평리 모금계좌는 [대구은행 508-11-916532-3 백창욱(삼평리법률기금)]이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아무도 모른다. 오늘부터라도 보다 적극적으로 표현하자. 그래야 삼평리의 봄, 우리의 봄이 성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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