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는 거대한 차벽을 넘어가자

[기고] 이제는 우리가 국가라는 암 덩어리를 들어낼 차례다

명박산성이 재현됐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분향을 차벽으로 막았다. 대통령은 4.16이고 4.19고 다 팽개치고 유람을 떠났다. 세월호 사고 당시 7시간을 어디서 뭘 하다 나타났는지 모를 대통령이 이제는 아예 9박 12일 일정으로 자리를 비웠다. 경찰이 알아서 긴 것인지 지시가 있었는지 몰라도 그사이 국민들은 근혜차벽에 둘러싸여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었다. 근혜차벽에 둘러싸인 서울시청 광장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시위결사의 자유가 보장된 공간이 아니라 마치 토끼몰이하듯 국민들의 신체와 정신을 속박하는 예속의 우리이자 아수라의 수용소로 변질되었다.

국민들이 세월호 실종자 9명은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곳에서 과연 그 실종자 9명은, 덧없이 죽어간 304명은 과연 ‘대한민국의 국민’인가. 국가에게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 이들과 함께 집회시위에 나선 국민들은 국민이 아니었다. 시위 현장 뒤로 보이는 정부종합청사의 ‘국민행복 대한민국’이라는 플래카드는 얼마나 허무맹랑한 것인가. 더구나 국가에게 그들은 인간도 아니었다.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려고 하고 경찰차 위로 올라가 차벽을 뚫으려고 하는 자는 그저 ‘적’일 뿐이다. 죽여도 좋은 적들일 뿐이다. 언제 국가가 법을 지키고 헌법을 지켰던가. 법의 본질 또한 이현령비현령일 뿐 아니던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매달 50만 원씩 모아 이민계를 하는 곳이 이 동네다. 진작 떠났어야 했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더더욱 아니다. 이곳 백성은 그저 ‘백’ 개의 ‘성’씨를 가진 인간들이 나라님에게 머리 조아리고 경찰, 법 등 국가장치에 예속된 노예들일 뿐이다. 대한민국이라니? 이 동네 어디에 국민이 나라 위에 서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국가에게 국민의 안전을 요구하고 복지를 요구한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는 국가가 아니라고 외친다. 과연 그런가?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지켜주지도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도 않는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장난감으로 알고 배추벌레로 알 뿐이다. 정부종합청사가 있고 국회가 있으며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는 헌재가 있으니 이곳이 나라라고 국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근혜차벽은 우리가 차벽에 갇혀 있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국가라는 우리 안에, 국가가 만든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그 우리 안의 인간이 어찌 국민이고 복지의 주체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들은 인간조차도 아니다. 자본에 노동력을 공급하는 원재료이자 그 한에서 죽지 않을 만큼만 임금을 받는 노예이고 하시라도 종북이라는 공포이데올로기에 몰려 죽음에까지 이르고 마는 대상이자 사물일 뿐이다.

장애인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지 않고 시설에 수용하듯이 이곳의 타칭 국민들은 거대한 시설 속에 갇혀 있다. 장애인을 인간 이하 취급하듯이 국가는 국민 또한 궁민窮民(궁핍하니 적선이라도 해주어야 할)이자 인간 이하의 대상으로 파악한다. 하기에 세월호 사고의 무수한 생명들은 그저 놀러나갔다가 죽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놀러 가다가 죽은 노예들일 뿐인데 그런 노예들에게, 국가에 예속되어 국민으로 승격된, 인간인 듯 인간 아닌 인간들에게 세월호 보상금은 얼마나 감지덕지해야 할 일이고 국가에, 7시간 자리를 비웠다가 나타나 뜬금없는 말을 주워댄 나라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려야 할 일 아닌가?

거대한 시설 수용소에 갇혀 사는 우리들은 거대한 착각 속에 빠져 있다. 이곳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는 곳이고 LTE 하나씩 들고 다니니 행복을 만끽하고 있는 유토피아인 줄로 안다. 그러나 이곳은 남을 죽여야 내가 사는, 순전히 자기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싸움이 지속되는, 약육강식의 수용소일 뿐이다. 국가는 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방조하고 있다. 세월호만이 아니더라도 노동자, 학생, 노인, 가장, 송파모녀, 장애인, 청년 등 가릴 것 없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끊어놓는 곳이 대명천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수용소 안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수감자들일 뿐이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보장해주는 국가인 듯 자명하고 유토피아적인 곳으로만 알던 이곳은 알고 보니 동굴이었다. 귀 막고 눈 막고 그저 넣어주는 주먹밥이나 먹으며 생존하던 감옥이었다. 시설이자 사람들이 수시로 죽어나가는 강제수용소였다. 동굴 속으로 비치는 무지개에 홀려 우리가 사는 곳이 ‘울긋불긋 꽃동네’인 줄로만 알았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를 국가답게 만드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사람 하나하나가 다 국가이자 주권국가다. 그러니 어디에 또 다른 국가가 필요하단 말인가? 국가를 국가답게 모유를 대주는 모유국가나 복지국가로 만든다 한들 그것 또한 사람들을 언제라도 전쟁터 총알받이로 이용하고 자본의 노예로 써먹을 수 있는 국가일 뿐이다. 자본과 재벌을 위해 규제를 철폐하다가 수백 명의 생명과 목숨을 수장시키는 국가일 뿐이다. 4월 16일 그 비극이 생기기 전날까지 박근혜 정권은 규제라는 암 덩어리를 들어내자고 떠들어댔다. 이제는 우리가 국가라는 암 덩어리를 들어낼 차례다. 명박산성의 한계를 넘어 국가라는 거대한 차벽을 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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