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304개의 우주를 위하여

[추모시] 세월호 진상규명 광화문농성 1년, 문화예술인 연장전 네 번째를 맞아

내 눈엔 아직도 304개의 문자들이 살아 있다

‘너무 무서워. 캐비닛이 떨어져서 옆방 애들이 깔렸어. 무서워’
‘나, 구명조끼 입고 있고 곧 배 밖으로 나갈 거야’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는 다른 안내방송은 안 나와요’
‘구조대 왔어요. 구조되자마자 전화할게요’
‘애들아 내가 잘못한 거 있으면 다 용서해줘. 사랑한다’
‘누나 사랑해 그동안 못해줘서 미안해 엄마한테도 전해줘 사랑해’
‘언니가 말야. 기념품 못 사올 것 같아. 미안해…’
‘엄마 내가 말 못할까봐 보내놓는다. 사랑한다’

내 가슴엔 아직도 304개의 사랑이 살아 있다

친구들이 다투면 앞장서서 화해를 주선하던 수경이
토요일마다 요양원 찾아 독거할머니들 목욕시켜드리던 예진이
엄마가 힘들어하면 등을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던 엄마 같던 지나
돈을 모아 엄마에게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를 선물하던 현진이
‘수협에 모아둔 돈 있으니까 등록금으로 써.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 못해’돌아오지 못한 양대홍 사무장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탈출하기 가장 쉬웠던 5층 객실에서 4층 객실로 내려갔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최혜정 유니나 선생님
아이들이 수장된 바다에 자신을 뿌려달라고 자결한 단원고 교감선생님

내 가슴엔 아직도 304개의 꿈이 살아 있다

뮤지컬 배우가 되고 싶었던 예은이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던 영란이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어했던 지인이
멋쟁이 여군 장교를 꿈꿨던 주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싶어했던 주아
치과의사가 꿈이었던 지혜
태권도 사범이 꿈이었던 경빈이
박물관 큐레이터를 꿈꾸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했던 지아
예쁘고 자상한 한의사가 되겠다던 해화
요리사가 꿈이어서 엄마에게 김치볶음밥, 오므라이스를 해주던 건우
언어발달 장애아를 돌보는 일을 하고 싶다던 초예
수화통역사가 돼 어려운 사람들을 돕겠다던 서우
뱀도 좋아해 오지로 가서 동물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겠다던 재강이
우주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영만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고
국제기구에서 세계의 이웃들과 아픔과 희망을 같이 하겠다던 하영이

그렇게 내 온몸에는 아직도 304개의 분노가 살아 있다

동생을 데리고 딸의 방에서 오늘도 잠을 청하며 딸을 그리는 해화 엄마
아들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지금도 아이의 옷과 신발을 입고 신고 다니는 성호 아빠
동생의 영정을 들고 일주일 동안 제주도 수학여행지를 돌아보며
동생의 넋을 위로하던 호연이의 형 호준이
바닷물에 잠겨 있었던 딸의 손목시계를 고쳐 차고 다니며
딸의 시간을 이어가는 지숙이 엄마
국회 앞 특별법 제정 단식농성을 하다가 14일만에 병원으로 실려간 수진이 아빠
46일 만에 병원으로 실려간 유민 아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서명을 받고 있는 지혜 엄마
죽어서도 비정규직 기간제를 못 벗어난 김초원 이지혜 선생님
그렇게 진상규명을 외치다 끌려간 수많은 사람들

그런데 세월호를 잊으라고
침몰을 거듭하는 특별법
유병언의 죽음도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도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도 여전히 미궁
어떤 진실도 인양되지 않았는데
도리어 자본의 이윤만이
무능한 정부와 그 관료들만이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참사보다 더한 참사의 나날을 잊으라고
세월호도 인양하지 못하는 무능한 정부가
압수수색한 416국민연대 사무실
오늘도 순항 중인 사이비 지식인들과 기레기 언론들
민주공화국이 사라지고 여왕독재국만이
되살아나는 이 무서운 현실을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으라고

안된다
진실과 정의가 끝없이 침몰하고
사기와 협잡과 불의만이 무사귀환하는
이 모든 시대를 우리는 용납할 수 없다

다시 말한다. 다시 외친다
너희는 우리의 미래를 죽였다
너희는 이 세계를 구하지 못한 거다
너희는 인류를 구하지 못한 거다
그 책임을 우리는 끝까지 묻고
밝혀내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살아 있다
모든 소리들이 살아 있다
모든 분노들이 살아 있다
모든 진실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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