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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표준화, 단일화하는 한미FTA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3) - 한미FTA 예행연습, KT&G 경영권분쟁
민영화 된 이후 KT&G로 이름을 바꾼 한국담배인삼공사가 미국의 투기자본 스틸파트너스에게 경영권이 넘어갈 것인가? 이 문제는 한미FTA의 영향을 짚어볼 수 있는 시금석이다. 한미FTA가 한국 경제에 그리고 노동자 민중에게 미칠 영향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오고간다. 사실이지 FTA의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정부, 대외경제정책연구소가 내놓은, 누가 돌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없는 통계지표에 대해 많은 언급이 있었다. 여기서는 각 부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기된 내용을 반복하기 보다는, 이미 진행되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그리고 그간 진보진영에서도 제기되지 않은 내용을 언급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은 통상과 투자를 포함하는 내용이다. 이 중 투자부문을 다루는 협상을 별개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양자간 투자협정, 즉 BIT(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다. 물론 한미FTA 협상에서 다시 다루어질 부분이지만, 투자협정의 골간은 외국의 자본이 투자를 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는 법률과 제도를 고치는 협약을 맺는 것이다. 미국의 요구가 강하기도 하지만, 노무현대통령이 강조하는 서비스부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방을 하고자 한다면 주로 이 투자 부문 협상에 집중하게 된다. 외교통상부의 FTA 로드맵에도 ‘상품분야의 무역자유화 또는 관세인하’와 ‘서비스 및 투자자유화’까지 포괄하고 그밖에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경쟁정책, 무역구제제도 등’으로 대상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먼저 쌀과 함께 우리 삶과 직결되는 공공부문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자.

1998년 7월 갓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하여 클린턴 대통령과 한미투자협정 즉 한미BIT를 그 해 1998년 말까지 체결할 것을 합의하고 돌아온다. 당시 투자협정이 뭔지 자유무역협정이 뭔지 아는 사람조차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미BIT 협상이 진행되었다. 그 한미BIT 협상에서 어떤 내용이 오고갔는지는 외교상의 비밀이라는 장막에 가리워져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외교통상부 관리의 손으로만 주무르고 있던 협상내용은 그 당시 한나라당 안영근 의원의 폭로에 의해 드러났다.

1998년 말 “공기업의 민영화의 최초단계의 정부지분 10%에 대해서만 내국민에게 우선 배정하고, 잔여분은 내외국민 차별을 없애며, 그 이후 단계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완전 폐지하라”, “이러한 방식으로 민영화 대상이 되어야 할 기업명단을 5개 미만으로 정해 미국에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가 있었다. 협상이랄 것까지도 없이 가벼운 실랑이 끝에 한전, 포철, 담배인삼공사, 가스공사, 기간통신시장, 스크린쿼터 등에 대한 민영화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요소를 없앨 것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스크린쿼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관철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 FTA를 시작하면서는 스크린쿼터까지도 내주었다.

지금 경영권 분쟁에 휘말려 있는 아니 미국투기자본으로 넘어갈 것이 이미 예상되어있던, 담배와 인삼을 독점적으로 취급하던 담배인삼공사가 ‘비효율’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민영화가 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당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한미BIT를 한 손에 주무르던 지금의 경제부총리 한덕수 장관께서는 당연한 듯 말씀하신다. 경영권의 위기에 처한 KT&G에 대해 “정부가 개입할 의사가 없다”라고. 포항제철은 현재 70%의 주식이 외국인에게 들어가 있고, 이름까지 KT로 바꾼 한국통신은 한미BIT 협상 시작 당시 주식의 외국인 소유한도가 3%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49%를 꽉 채우고 있으며, 언제 소유권을 넘길 것인가에 대한 판단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에너지공공성을 앞세운 발전노동자의 38일간의 파업투쟁으로 발전부문은 발전, 송변전, 배전이라는 일관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던 한전으로부터 분리는 되었으나 민영화만은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다.

이에 안영근 의원은 “1.4조 원의 공공부담을 안고서도 1.7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내는 한전을 부실기업으로 매도하며 수많은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는 현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은, 한마디로 말해 미국 주연(主演) 현정부 조연(助演)의 한편의 희극에 불과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엔론과 합작한 SK, 칼텍스와 합작한 GS, 그리고 70%의 주식이 외국인에게 지분이 있는 포항제철에게 가스도입권을 넘기려는 정부의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가스공사노동조합의 천연가스 도매업에 대한 가스공사의 독점권를 지키려는 끝없는 투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만약 가스독점권이 무너지고 가스도입권을 가진 회사가 발전소를 짓기 시작한다면, 발전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에너지 수급체계가 무너지게 되고, 하루아침에 미국 에너지자본의 장난에 놀아나게 될 것이다. 이즈음에 이르면, 최근 불안정한 전력문제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에너지공공성을 지키는 것도 허망할 뿐이다. 이렇게 미국의 모든 요구조건을 다 수용하고도 영화인들의 집요한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에 힘입어 형식상의 BIT는 체결되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 덧붙여 한일BIT가 체결된 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이 작성한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투자의자유화증진및보호를위한협정’ 비준동의안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나라의 투자 자유화율은 99.8%”라고 할 정도로 개방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협정(한일BIT)의 유효기간 중에는 새로운 제한 등 예외조치를 취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어(제5조) 향후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수립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정책의 독립성을 저해받을 수도 있을 정도로 이미 개방되어 있는 금융부문에 대한 한미, 한일BIT에서의 핵심적인 쟁점이 일시적 외환거래조치 즉 세이프가드를 인정할 것인가 여부였다. 금융에 대한 거시경제적 조정이나 특히 통화 및 환율정책상의 문제에 봉착했을 때 세이프가드로 자본의 흐름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가 여부에 따라, 외환은행을 가지고 놀았던 투기자본 론스타의 장난은 그야말로 장난에 불과할 수 있다.

세계 11위 경제대국 한국과의 FTA는 미국에게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 규모이다.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한미FTA를 체결함으로서 향후 10년간 양국간의 교역상품 90% 이상에 대한 관세가 단계적으로 없어질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정도쯤 되니 한미FTA 협상 시작 발표가 있으면서, 곧바로 미국 산업 각 부문에서는 기대와 함께 협상에 대한 업계의 이익을 반영할 주문을 낸 바 있다. 그 중 2004년 기준으로 총 100억불이 넘게 수입한 한국 농산물의 4분의 1 이상을 조달해 온 농업부문, 특히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서부지역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환영 표시를 하고 있다.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는 기자회견에서 미국 측이 낭보를 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농민과 목장주를 언급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농업부문을 예외부문으로 하겠다는 한국정부의 노력이 성사가 될 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FTA가 미치는 영향은 쌀과 같은 통상부문을 포함하여 특히 공공부문에 대한 타격이 크게 나타나게 된다. 최근 달리 언급되지 않고 있으나 실제로 FTA가 미치는 영향 중에 가장 우려되는 부분을 제기해본다면, FTA으로 미국제도에 따른 표준화, 단일화가 강제되는 효과이다. 특히 관세를 무겁게 부과하여 무역장벽을 설치하는 것이 아니라 통상절차와 제도가 다름으로 해서 또는 인위적으로 달리해서 통상장벽이 되는 경우 그것을 비관세장벽이라 하는데, 협상으로 이러한 비관세장벽을 허물어뜨리면서 나타나는 효과가 많다.

미국이 한국에게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체계가 달라 자동자 수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하여 바꾸어줄 것을 요구하였고 정부는 이미 들어준 바 있다. 그 결과 한국은 미국과 다른 배기가스 규제체계를 미국식으로 바꾸어야 할 판이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체계뿐만 아니라 한미FTA 협상 시작의 전제조건으로 양보를 한 네 가지 조건 중 세 가지는 이에 해당한다.

의약품 가격 정책과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의약품 허가 및 재심사 등과 관련한 제도를 초국적제약회사, 미국의 요구에 따라 바꾸게 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USTR의 의회보고서를 보면 “부당한 검역(SPS)”에 대한 표현이 나오는 데, 이 역시 우리나라의 검역체계를 부당한 것으로 보고 바꾸게 하여 미국산 소고기를 포함한 식품 수출을 자동적으로 보장받게 된다. 그 결과는 미국식 검역제도로의 변화이다. 특히 한국의 노동운동이 강해서 자본이 활동하기가 어려운 장벽이 되니 노동법을 유연하게 바꾸라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렇듯 비관세장벽 거론을 통해 미국과 동일한 제도를 관철시킨다. 이는 결국 미국식 제도로의 단일화, 표준화일 뿐만 아니라 하위체제로 편입되는 효과를 낳는다.

아울러 스크린쿼터 축소, 폐지와 마찬가지로 방송에서 한국영화와 음악에 대한 쿼터가 없어지고, 최소한 미국이 한미BIT 협상에서 요구했던 뉴스 제공업 및 정기간행물 발행업, 미 영화협회 잭 발렌티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위성방송업, 그리고 케이블 TV에 대한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규정이 없어진다면, 더구나 교육부문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언어가 영어로 통일되는 효과를 가져오면 언어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 상실로 이어진다.

이렇듯 표준화, 단일화 효과는 WTO체제 이후 빈곤과 양극화와 함께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효과의 하나이기도 하다. 전세계 80%를 장악한 헐리우드 영화가 전세계를 단일화시킨다는 우려도 여기에 기인한다. 이처럼 표준화, 단일화를 통해 제도, 언어, 문화, 민족, 인종적 다양성을 말살되는 것이 FTA, 특히 미국과 맺는 FTA의 후과이다.
이종회(발행인) | 등록일 : 2006.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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