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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 87호 이슈와 현장] 독립영화와 사회적 경제, 어떻게 만나야 할까

새해에는 함께 살자 기획 강연 시리즈 <독립과 협동사이> 참관기


2013년만큼 독립영화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뜨거웠던 해도 없었을 것이다. 작년 초 <지슬>부터 시작해 <천안함 프로젝트>, <잉투기>, <사이비>에 이르기까지 많은 한국 독립영화가 언론에 오르내렸고 또한 이렇게 주목받은 만큼 그에 걸맞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는 일이 있었다. 또한 CGV무비꼴라쥬가 전국 9개관에서 20개관으로 확대되고 경기도가 관내에 위치한 6개 상영관을 ‘G-시네마’로 지정하는 등 독립영화 전용관도 늘어났다. 하지만 왜일까. 분명 흥행 작품도, 상영관도 많이 늘어났는데 어딘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은. 그리고 아직도 고민하고 고생하는 독립영화인이 많은 것 같은 느낌은.

그렇다. 분명 한국 독립영화는 2013년 많은 성장을 이룩했지만, 정작 그 성장은 특정 영화나 회사로 집중되었다. 마치 한국 영화가 천만 관객을 기록해도 그 영화를 만드는 스탭들의 삶이 나아지지 않듯 독립영화계에도 비슷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독립영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나 담론 역시 외형적 성장이나 경쟁에 치중할 뿐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는 깊게 다뤄보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독립영화인들이 작년 8월부터 ‘독립과 협동사이’라는 이름의 모임을 만들어서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에 대한 정기적인 공부 모임을 가져오다, 드디어 올해 1월부터 동명의 기획 강연을 주최하게 되었다. 솔직히 궁금했다. 계속 독립영화계에서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고민의 속살이 어떤지는 잘 몰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간은 사회적 경제를 곧바로 독립영화에 적용하는 것이 조금은 붕 뜨지 않았나는 회의감도 있었다. 이렇게 기대와 의심을 반반씩 가진 채 1월 9일 목요일, 홍대에 위치한 이주민문화예술센터 ‘프리포트’에서 열린 첫 번째 강연을 듣게 되었다.

독립영화는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나

첫 강연의 진행자는 예전부터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활동해왔고, 협회를 떠나고 나서도 계속 인디스페이스의 운영을 맡고 있는 원승환 독립영화전용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가 맡았다. 예전부터 인디스페이스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계속 그 분의 글을 찾아서 읽어 왔었고, 몇 년 전부터 사회적 경제에 깊게 고민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일까. 첫 강연의 주제 역시 ‘나는 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였다.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사회적 경제와 독립영화의 만남을 외치던 분이 맡은 강연다운 주제였다.

▲ 2014. 1. 9 서울 마포구 프리포트 / '독립과 협동 사이' 첫 강의


강연은 ‘사회적 경제’를 말하기 전에 ‘독립영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두산백과에서는 독립영화를 ‘기존 상업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한 영화’라 정의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 똑같이 창작자의 의도에 따라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독립영화, 독립음악, 독립잡지, 독립만화, 독립게임이라는 용어는 쓰이고 어째서 독립문학, 독립소설, 독립연극, 독립시 같은 용어는 쓰이지 않는 것일까. 강연자는 용어 사용의 차이가 생산수단의 위치와 산업화의 유무에서 온다고 판단한다. 문학이나 연극은 개인이 직접 만들고 창작할 수 있지만 영화나 음악, 만화, 게임 같은 분야는 개인이 스스로 만드는 것은 어렵기에 거대한 자본을 사실상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의 발달로 인해 점점 생산수단에 대한 접근이 쉬어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본에서 자유로운 개인들이 뭉쳐 독립적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에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강연자는 독립영화를 ‘생산수단에 대한 접근이 쉬어지자, 그 수단을 협동 소유하여 만든 생산 양식으로 탄생한 영화’라 다시 정의를 내린다.

이렇게 탄생한 ‘독립영화’는 기존의 상업영화에 비해 더 개인적이고, 예술성과 다양성, 지역성을 지니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더 자유롭고 급진적인 특징을 지녔지만 자본의 한계로 판매, 홍보, 소비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지금까지 독립영화는 그 한계를 시장 경제와 공공 경제의 틀 안에서 해결해 왔었다. 전자의 방식으로는 CGV 무비꼴라쥬와 같은 민간 상업 자본의 지원이, 후자의 방식으로는 문화관광체육부나 영화진흥위원회, 지역 영상위원회와 같은 국공립 기관 또는 인디스페이스나 서울아트시네마와 같은 비영리 민간기관의 지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들에도 불구하고 기회 확대는 제한적이었으며 정책은 제자리걸음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독립영화인들은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에는 ‘영화집단’을 통한 배급이 각광을 받았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나 영화제작소 청년, 서울영상집단과 같은 단순한 창작자-생산자 집단부터 시작해 푸른영상처럼 ‘푸른 회원’이라는 명칭으로 관객회원도 같이 받고 있는 다중이해관계자 집단,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인디포럼 작가회의와 같이 창작집단과 시네마테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씨네필들이 뭉친 집단이 탄생했고 마침내는 정기적으로 상영회도 여는 수준으로 발달하게 되었다.

한편 2000년대 중반으로 갈수록 디지털 캠코더, DSLR과 같이 영상촬영장비가 더 가벼워지고 개인이, 또는 대량으로 많이 소유하기 쉬어지면서 독립영화는 개인을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이렇게 영화의 축이 서서히 집단에서 개인으로 변화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배급사나 미디액트 등 각 지역에 위치한 영상미디어센터의 역할이 중요하게 자리를 잡게 된다. 동시에 독립영화계에 나타난 변화는 바로 경쟁 시스템의 도입이다. 인디포럼을 포함한 영화제를 비롯해 영화진흥위원회 등에서 시행하는 지원제도, 그리고 영화가 일반 대중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개봉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경쟁이 중요하게 자리를 잡게 되고 이는 결국 현 독립 영화계의 문제인 빈익빈 부익부를 낳게 되고 만다. 계속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현재의 개인 중심이나 경쟁 체제로써는 한계를 넘을 수 없다고 강연자는 중간 결론을 내린다.

입장은 달라도, 고민은 하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인가? 그에 대한 답변으로 강연자는 ‘사회적 경제’를 제시한다. 독립 영화가 현재의 시장 경제나 공공 경제 위주의 움직임 대신 사회적 경제의 틀을 받아들여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의 정태인과 이수연이 펴낸 「협동의 경제학」을 빌어 사회적 경제란 인간이 상호적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고, 신뢰와 협동, 그리고 공정성의 기치 아래 연대로써 활동하는 경제 형식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독립 영화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협동조합’과 같은 비영리 단체나 기구이다.

비록 장기화되는 경제 위기나 주목도의 감소로 인해 위기에 놓여있지만 이미 미국, 캐나다를 중심으로 영화 제작자 협동조합(The Film-makers Copperative)이나 캐년 시네마(Canyon Cinema), 또는 아틀란틱 영화 제작자 협동조합(Atlantic Filmmakers Cooperative)과 같은 협동조합이 운영되고 있으며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는 ‘커뮤니티 시네마’ 같은 공동체 상영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 형태나 틀은 반드시 정해져 있지 않으며 제작자나 영화관 끼리, 아니면 앞서 제시한 푸른영상과 같이 제작자와 수용자, 그리고 스태프들끼리도 뭉칠 수 있다고 강연자는 말한다. 또한 강연자는 더 나아가서 몇 년전부터 한국의 몇몇 지역에서 진행 중인 대안 화폐 운동 같이 ‘타임 뱅크’라는 이름의 시간을 단위로 하는 대안 화폐 운동을 주장, 독립영화인들 사이에 협동 경제를 실험할 수 있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면서 강연은 마무리 되었다.

이후 강연들은 사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첫 번째 강연에서 화두로 제시되어온 이야기들을 점차 세부적으로 풀어나가는 형태로 강연들이 진행되었다.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론적 논의, 그리고 실제 독립영화판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모임-제작/배급사 관계자들이 들려주는 진솔한 이야기들이 흘러 나왔다.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따라서 당연히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역시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된 지점들이 있었다. 바로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 모두가, 더 나아가서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이들이 한국의 독립영화가 더 발전하고 나가기 위해서 협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공감하고 있다는 부분이었다.

또한 고민은 2014년 현재, 한국 독립영화는 보이지 않는 벽에 막혀 있으며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 구도나 자본에 종속되는 경향이 조금씩 보이고 있으며 이에 속하지 않은 독립영화는 독립영화 내에서 조차도 소외되는 일이 비일비재 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경제’를 말하는 것이 이러한 돌파구를 만드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단순히 제시하는 것에서 그친다면, 이는 수많은 독립영화계의 의견과 차이를 지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진정으로 사회적 경제가 독립영화 내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외부에도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독립영화에 대한 더 체계적인 분석과 실질적인 논의가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독립과 협동 사이’ 강연은 무작정 화두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독립영화 현장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생각과 고민을 같이 들으면서 강연을 준비하는 사람은 물론 강연장에 참석했던 사람, 더 나아가서 직접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간접적으로 강연 내용을 전달받은 이 모두에게 생각의 장을 열었던 시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이번 강연이 단발성으로 그치는 대신 상시적으로, 또한 한 집단 내부에서 그치는 대신 각자 활동하는 영역에서 제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어찌 보면 이 강연이 말하고자 싶었던 진정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논의의 흐름이 더욱 활발하게 벌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필자소개] 성상민(만화평론가)

- 2005년 만화언론 <만>의 객원필진으로 데뷔한 이후 2006년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강풀 특별전 전시 기획 참여와 <인터넷뉴스 바이러스>에서 2009년 문화부 기자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현재는 <미디어스>에서 정기적으로 만화 및 문화 평론을 하고 있다. 또한 학점 관리에 큰 문제가 생겨 경희대 사회학과를 1년 더 다니는 게 최근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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