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약자 보호법’은 결국 ‘노동자 차별법’
지난 일주일은 민생토론회로 뜨거웠다. 총선 이후 재개된 민생토론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 약자 지원‧보호법’을 제정하겠다며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다. 미조직 노동자에게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노조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하는 듯한, 현 정부가 근로자 이음센터를 개소한 것 등에 기대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노동 약자를 주제로 민생토론회를 개최한다고 했으니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다. 민생토론회 사후 브리핑을 통해 밝혀진 것은 노동약자를 위한 새로운 법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노동자성을 빼앗기고, 5인 미만 사업장과 같이 사업장 규모에 의해 차별받는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되돌려주는 대신 적당한 법을 만들어 회색지대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지어진 집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대충 움막을 만들어 줄 테니 들어가 살라는 셈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노동약자 보호법은 노동자 차별을 정당화하겠다는 선언이다.
‘교육생’이 ‘사업자’라고?
지난 2024년 3월 4일에는 전국 ‘무늬만 프리랜서’ 제1차 집단 공동 진정 및 ‘교육기간 임금 착취’ 콜센터 특별근로감독 청원 기자회견이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일당 3만 원에서 5만 원까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교육비를 받고, 콜센터 회사에 의해 말 한마디로 잘릴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정부가 사업자라 부르는 ‘콜센터 교육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업자’란 누구인가? 여러 방식으로 정의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책임을 지며, 지휘‧감독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영업망을 가지고 있어 독자적으로 사업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교육을 받고, 인사 담당자가 내준 과제와 테스트를 수행하며, 회사 번호로 걸려 온 콜을 처리하는 방법을 배우는 콜센터 교육생이 사업자라는 것이 논리적으로 성립 가능한가? (여기서 프리랜서라는 비법률적 개념은 논의에서 배제한다.)
따라서 백 보, 천 보 양보하더라도 콜센터 교육생이 사업자가 될 수는 없으며, 시용 노동자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용계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시용임을 명시하면서 기간을 반드시 명시해야만 한다. 업무 적격성 등의 평가를 거쳐 본채용 거부가 가능하지만, 이는 근로기준법상 해고에 해당한다. 즉, 시용 노동자는 누가 뭐래도 ‘노동자’다. 그런데 왜 콜센터 교육생은?
20년도 지난 행정해석이 권리를 빼앗는 현실
콜센터 교육생이 사업자로 위장되는 과정은 2단계를 거친다. 무려 2000년 1월 27일에 나온 고용노동부 행정해석(근기 68207-218)은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정식 채용 전 회사에서 실시한 교육을 받는 자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하여 ① 교육의 성질이 근로에 준하는 직무교육으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교육의 불참으로 인한 제재를 받는 등 강제성을 띤 경우라면 피교육자와 회사 간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만, ② 동 교육이 향후 채용될 경우에 필요한 업무 적응 능력이나 적격성 여부 판단 등을 목적으로 하면서 교육의 수료실적에 따라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등 임의성을 띤 경우라면 피교육자와 회사 간에 사용종속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근로자가 아니라고 본다.
근기 68207-218 고용노동부 행정해석(2000.1.27.)
즉, 위 행정해석은 교육의 성질이 직무교육인지 업무 적격성 평가인지, 강제적인지 임의적인지 여부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를 달리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정해석에 따르더라도 교육생이 사업자로 분류되는 지금의 현실은 그 자체로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아래 두 채용공고를 비교해보자. 효성ITX ‘참좋은여행’ 상담사 채용공고는 “교육은 입사 전형 단계이며, 센터별 교육이수 및 평가에 따라 채용 여부 결정”이라고 표기하여 교육생은 단지 구직자 신분이라는 것을 명확히 표시하고 있다. 반면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삼성물산 상담사 채용공고는 “교육 수료 후 입사”라고 표기하여 강제성이 있는 직무교육으로 소정의 연수 과정을 마치기만 하면 입사가 되는 연수 교육에 해당(재보 68607-474, 1993. 5. 18.)하는 것으로 보인다.
효성ITX 참좋은여행 상담사 채용공고 中 발췌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 삼성물산 상담사 채용공고 中 발췌
따라서 채용공고를 기준으로 한다면 트랜스코스모스코리아의 교육생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효성ITX 교육생의 경우 채용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직자’ 신분에 해당한다(효성ITX가 해약권이 유보되어 있는 근로계약으로 시용계약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을테니).
콜센터 교육생이 받는 교육비를 구직자가 받는 일종의 ‘면접비’에 준하는 것으로 본다면, 이는 원칙적으로 기타소득인 사례금에 해당하여 22% 원천징수를 해야 한다. 다만 지급 금액 한 건당 기타소득 과세 최저한이 5만 원이기 때문에 매일 면접을 본 것으로 처리하는 경우 5만 원 이하 교육비는 원천징수 없이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즉, 행정해석을 근거로 어떤 경우의 수를 가정하더라도 ‘콜센터 교육생’이 3.3%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사업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노동법상 사용자책임을 회피하면서도 지급된 금품을 비용처리하려는 콜센터들의 노무관리가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교육생’을 만들어낸 것이다.
콜센터 교육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847만 명’의 무게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국세청에 요청해 받은 연도별 사업소득 원천징수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사업소득세를 납부하는 비임금 노동자는 847만 명에 달한다. 노동자라면 근로소득세를 납부하기 때문에, 사업소득세를 납부한다는 것은 신분상 사업자(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30세 미만 통계가 20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이 중 대부분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자라기보다는 무늬만 자영업자로 위장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임금노동자 통계가 2023년 1,300만 명으로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드는 반면, 비임금 노동자 통계는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 데이터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첫째, 노동자성을 위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둘째, 노동자성 위장은 업종과 직종을 가리지 않으며, 오히려 특정 연령대에 몰리는 경향이 있다. 셋째, 노동자성을 위장한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제재(페널티)가 없기에, 노동자성 위장을 통한 사용자 책임 회피는 확장성을 가진다.
결국, 이 모든 사실들이 가리키는 사실은, 지금의 상태를 방치한다면 '노동자 오분류'가 점차 심화될 것이라는 불편한 진실이다. 그리고 콜센터 교육생의 사례와 위 통계 데이터를 연결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노동청, 노동위원회, 법원에서 개별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방식으로는 '노동자 오분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의 기본값을 노동자로 보고(노동자 추정 원칙), 노동자성 판단에 대한 증명책임을 사용자가 부담하는 것(입증책임의 전환)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법 제정보다 필요한 것은 현실을 바로잡는 것
이미 존재하는 법을 현실에 맞게 손질하는 개정이 아닌, 기존 법체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파견법과 기간제법 등 여러 사례에서,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법이 현실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여러 차례 확인하였다. 아마 노동 약자 보호법이 만들어지면, '노동 약자'로 호명된 노동자가 노동관계 법령을 적용받는 것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근로기준법을 필두로 최저임금법, 산재보상보험법 등 수많은 노동보호법을 가지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업주가 노동관계 법령상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규제하고, 제대로 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바로잡는 것이지 생색내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솔직해지자. 노동법을 적용하는 것이 싫다고!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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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성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공인노무사다. 노동자성 위장, 상시근로자 수 축소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는 문제에 관심이 많다. '할말 잇 수다'를 기획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며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