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6월 11일, 산속 농성장을 뜯어내는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졌다. 이 농성장은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을 강행하는 한전에 맞서 밀양 주민들이 저항하는 거점이었다. 주민들의 생활세계를 폭력적으로 파괴하면서 들어서는 송전선로는 신고리 3, 4호기(현재의 새울 1, 2호기)의 핵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를 목격하면서 핵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사회적 목소리가 높았음에도 여전히 강행되던 핵발전소 건설이었다. 밀양 주민들의 송전탑 반대 싸움은 자연히 핵발전소 반대 싸움으로 이어졌다. 앞으로 건설될 핵발전소로부터 뻗어 나올 송전탑 아래에서, 초고압 송전탑만이 아니라 핵발전소의 위험까지 짚어가면서 이것을 꼭 건설해야 하는 것인지 묻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 위험천만한 전력 시스템의 부정의를 고발했다.
밀양에서 태어난 “전기는 눈물 타고 흐른다”는 말 앞에 많은 이의 마음이 움직였다. 우리가 쓰는 전기가 어떻게 만들어져 자신들의 앞까지 도달해 있는지를 일깨웠다. 진작부터 함께 해오던 인근 지역의 연대자들을 넘어, 전국에서 수많은 이들이 밀양 희망버스를 타고 연대하기 위해 모여들고 함께 싸웠다. 또 더는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르지 않도록, 햇빛발전협동조합, 에너지자립마을 등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전력 생산과 소비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싸움도 만들었다. 그러면서 밀양 주민의 투쟁은 부정의한 전력 시스템에 맞서는 전국적인 투쟁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가 막강한 공권력을 앞세워 저항의 거점인 산속 농성장을 뜯어내고 주민들을 끌어내면서, 밀양의 투쟁은 일단락되었다. 현장에서 이를 직접 겪어내고 또 함께 지켜보았던 이들, 또 멀리서 애를 태우며 발만 동동 굴렸던 이들 모두에게 10년 전 행정대집행은 가슴 아픈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끝난 싸움은 아니다. 최근 읽은 밀양 주민들의 투쟁을 기록한 『전기, 밀양-서울』의 한 대목을 생각한다. 책은 행정대집행으로 경찰이 휩쓸고 간 산속 농성장, 자신들을 스스로 묶었던 쇠사슬을 챙기면서 시즌 2 투쟁을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한 주민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결코 끝낼 수 없는 싸움이다. 밀양대책위는 해산하지 않고 여전히 싸우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이 부정의한 전력 시스템을 지속해선 안 된다고 계속 말하고 있다. 얼마나 전력 수요가 늘어야 하는지, 어디서 무엇으로 생산하고 어떻게 공급할 것인지, 그 의사 결정과 집행 과정은 어때야 하는지, 눈 뜨면 바라보게 되는 마을 앞 저 송전탑을 언제가 되었든 뽑아내야 한다는 결의와 함께 묶여, 잠재울 수 없는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그랬던 것처럼, 불의에 맞서 끝까지 싸우던 많은 주민은 더욱 고령이 되었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있고, 거동이 힘든 분들도 있다. 밀양의 투쟁은 지속되어야 하지만, 이제 얼굴과 목소리가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다. 실제로 바뀌고 있기도 하다. 밀양 투쟁 당시 십 대였던 이들이 십 년이 지난 시점에, 밀양을 기억하며 투쟁을 기획하고 실무를 챙기는 일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다. 얼마 전 밀양을 방문했을 때, 한 밀양 주민이 전국을 다니며 입었던, ‘756KV OUT’이라는 글자를 커다랗게 새긴 조끼를 기후정의운동의 한 청년 활동가에게 건네주던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십 년 전 밀양에서 행정대집행이 이루어지던 날, 기후정의운동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밀양 투쟁에 함께 했던 많은 이들이 현재의 기후정의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밀양 투쟁과 기후정의운동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밀양 주민들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한 부정의한 에너지 시스템이 바로 기후 위기를 야기하고 기후 부정의를 심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핵발전과 방사능, 송전탑과 전자기파, 석탄발전소와 온실가스, 풍력터빈과 저주파 등, 에너지 시스템의 구체적인 위험을 넘어 그 위험이 왜 발생하고 그 피해는 누가 입고 있는지 묻는 일에는 차이가 없다. 모두 자본주의 성장체제가 불러온 위험이고 희생의 전가다. 또한 밀양 투쟁에서 두드러진 ‘국가 폭력’의 문제는 언제나 현재형이다. 종종 공익으로 포장되어 자본의 이윤 추구를 위해 앞장서 폭력으로 밀어붙이는(혹은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안 하는) 국가, 그리고 이에 맞선 투쟁들은 모두 닮아있다.
요즘 기후정의동맹은 ‘공공재생에너지’ 운동을 만들어 내느라 바쁘다. 그러면서 10년 전의 행정대집행에서 정점에 다다랐던 국가 폭력과 관련해 진지한 질문을 하게 된다. 밀양 주민들이 송전탑 부지 위에서 맞서 싸웠던 국가와 기후정의동맹이 공공재생에너지를 확대하도록 요구하는 국가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기후 위기 시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며, 자본과 기업의 재생에너지 민영화에 맞서 공공 부문이 직접 나서 재생에너지를 개발하고 소유, 운영하도록 요구하는 공공재생에너지운동은 밀양 투쟁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당연한 일이지만, 밀양 투쟁은 국가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서 비판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국가가 종종 공익이라고 규정한 ‘경제개발’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지역 주민들과 자연환경을 탄압하고 파괴했던 역사와 비슷하게, 이제 ‘기후 위기 대응’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가에 또 비슷한 역할과 권력을 부여하려는 건 아닌지 자문할 필요 있다.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여 필요할 땐 폭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는 국가에 저항하면서, 그에 그치지 않고 국가를 탈환하고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전히 국가 폭력과 그에 맞서는 저항이 격렬하기에, 국가를 활용하자는 제안은 쉽게 귀에 닿지 않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국가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탈환해야 하는데, 그럴 만한 역량과 전략은 있는지도 질문받게 될 것이다. 나아가 오래전부터 개발주의와 성장주의 그리고 기술 관료주의로 조직되고,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로 변형된 국가(기구)를 과연 재구성하고, 또 제대로 활용할 방법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그러니 저항을 견고히 하는 게 더 우선이라 얘기할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항을 견고히 할 뿐만 아니라 서로 연결하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으며, 공동의 전망을 통해서 더 폭넓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후정의운동, 더 구체적으로 공공재생에너운동이 밀양 투쟁과 대면하면서 제기하는 질문 중 하나는 어떻게 국가를 탈환하고 재구성할 것인가다. 우리의 공동 전망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질문일 것이다.
다음 달 6월 8월, 밀양으로 다시 버스가 떠난다. 십여 년 전, 전국 각지에서 밀양 주민들과 연대하기 위해서 출발했던 ‘밀양 희망버스’가 다시 준비되고 있다(전국 각지에서 출발하는 버스 안내는 포스터 참조). 단지 10년 전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핵폭주에 맞서는 저항의 목소리를 모으려는 집회에 참여하려는 버스다. 아직도 깃발을 꺽지 않고 싸우고 있는 밀양에서, 함께 공동 전망을 만들기 위한 질문에 묻고 답하는 노력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동참해 주었으면 좋겠다.
* 당일 함께 하시기 어려운 분들은 소셜펀치로 마음을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www.socialfunch.org/765kv345kvout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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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각은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