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지지율 반전 노리는 산유국 카드

갑자기 전해진 영일만 석유’ 속보에 놀랐다이제 별의별 수를 다 쓰는군이게 단지 자원에 관한 얘기였으면 생각이 그리로 가지 않았을 거다일부 환경단체의 주장처럼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기 위한 시추 승인이 과연 시대에 맞는 것이며이게 그렇게 좋아할 일이냐는 의문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요즘은 정말이지 그런 논쟁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이 정권은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 저차원적 의문부터 갖게 한다쟁점이 저질화된다그러고 있다 보면 가치 있는 얘기는 잊어버리게 된다큰 문제다.

문제의 속보는 대통령이 3일 오전 10시 국정 브리핑을 자처한 자리에서 직접 발표하면서 나왔다. ‘국정 브리핑은 8분 전에 내용도 알려지지 않은 상태로 기자들에게 공지됐다주식시장의 충격 등을 고려했다는데 의문은 남는다이 의문이 뭔지는 뒤에서 다뤄보자이 국정 브리핑의 자리에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함께했다한겨레 보도에 따르면당일 오전 9시 40분까지 주무 부처인 산업부는 장관 동선의 정확한 배경을 몰라 우왕좌왕했다.

천연 가스 검색 석유 굴착 장치(출처 : Pixabay. Anita_Starzycka)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은 단 4분간 진행됐고 질의응답은 이뤄지지 않았다. ‘국정 브리핑은 지난달 24일 출입 기자들과의 김치찌개-계란말이 만찬에서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의 대체재로 언급한 방식이다. ‘도어스테핑으로 불린 출근길 약식 기자회견에선 기자들에게 적어도 두 세 차례의 질문 기회가 부여됐는데이 날 국정 브리핑의 형식만 보면 후퇴의 조짐이 명확한 것이다.

다만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지는 않은데영일만에 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이 언급된 이날은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가 진행 중이었다대통령은 무려 10개국 정상들과 연쇄 양자 회담을 갖는 마라톤 일정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옛말에 시간은 금이라고 했는데대통령은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굳이 무려 4분을 따로 마련해 국민에게 대한민국이 다시 산유국이 될 거라는 희소식을 누구보다도 빨리 전해주려고 한 것일 테다절차가 다소 거칠었던 것은 그런 이유 아니겠는가?

문제는 이걸 그런 순수한 의도로만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최대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게 확정된 거라면 대통령의 행동을 이해할 수도 있다그런데 지금 단계는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언론에 인용된 전문가들의 전망을 보면 탐사시추평가 시추개발 시추 등을 거쳐야 하는 등 경제성을 평가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의 여러 넘어야 할 산들이 남았다석유-가스의 매장량이 최대 140억 배럴이 맞는지도 알 수 없고그게 맞다 해도 실제 개발이 가능한 양이 어느 정도인지도 알 수 없으며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심해 광구라는 특성까지 고려해 채산성을 따져봐야 한다샴페인은 이 모든 퍼즐이 맞춰질 때야 터뜨릴 수 있다대통령의 국정 브리핑도 이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때야 이뤄지는 게 자연스럽다.

상식적으로 볼 때 탐사시추의 필요성을 확인한 것 정도인 이번 사안의 경우 주무 부처에서 보도자료를 내는 걸로도 충분하다주식시장 영향 등을 고려하면 이게 차라리 낫다오히려 대통령이 오전 10시에 팡파르를 울리듯 하는 것은 주가 과열을 부추긴다실제로 석유 가스 관련 종목은 대통령의 국정 브리핑’ 직후 롤러코스터를 탔다석유-가스 채굴과 관련이 없는이름에 단지 석유가 들어가 있을 뿐인 어느 기업의 주가는 이틀째 폭등했다대통령실이 주식시장 충격 등을 근거로 깜짝 발표를 정당화하는 건 논리와 현실 양쪽 모두를 봐도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이러니까 그저 생색내기 이상의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의심은 북한이 보낸 오물 풍선에 대응하는 정부의 태도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가져볼 만하다물론 북한의 오물 풍선은 우리 입장에선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당연하다뭔가 해야 한다그런데 북한의 논리는 남측의 민간 단체가 먼저 대북 전단을 날려 보냈기에 이에 대응했다는 것이다그렇다면정상적 정부의 대응은 민간 단체를 설득해 대북 전단 살포 자제를 요청하고 북한에 경고하면서 주변국들에 나름의 책임 있는 역할을 요청하는 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권은 민간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 문제이므로 따로 자제를 요청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오히려 울고 싶은 참에 뺨 맞았다는 격으로 전 정권의 정책적 성과라 할 수 있는 9.19 군사합의 전체를 사실상 기약 없이 효력 정지하는 강 대 강’ 대치의 끝으로 달려가 버렸다그러잖아도 군사적 긴장을 경향적으로 높여갈 것을 원하는 보수세력은 군사분계선 일대에 완충지대를 설정한 9.19 군사합의를 무효화하고 싶어 했다그러한 시각에서 보면 북한의 오물 풍선은 좋은 핑계가 될 만한 일인 것이다.

이 조치는 북한이 특히 껄끄러워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위한 것이다. 2015년 북한은 이른바 목함지뢰 정국에서 대북 확성기 등 방송 장비를 겨냥해 고사총과 직사화기를 발사한 일이 있다이번에도 방송이 재개되면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최전방 일대의 우발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북한이 한 일이 오물 풍선을 날려 보내는 것만이 아니었다는 거다북한은 서해 NLL 일대서 GPS 교란 공격 역시도 시도했다해경이나 해군 함정의 경우 GPS 교란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지만소형 어선 등의 경우엔 조업이 사실상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보았다고 한다만에 하나 해로를 찾지 못한 어선이 북측 수역으로 넘어갔다면이는 북한이 추가로 군사적 행동에 나서는 빌미가 됐을 수 있다.

여기까지 보면 최근 국면은 북한이 단지 수세적 대응을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군사적 긴장의 고조를 노리고 움직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그야말로 도발이라는 말에 걸맞은 행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인데이게 맞다면 북한은 애초에 오물 풍선을 날릴 때부터 이미 우리 정부가 어떤 대응을 하리라는 것을 시나리오별로 예측했을 수도 있다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에 대응하는 북한의 다음 프로세스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며그건 아마 의도적으로 군사적 긴장의 강도를 강화하는 방향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한다.

이 시점에 북한이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을까일부 전문가들은 최근의 한중일 정상회의를 둘러싼 상황을 지목한다이 회의에서 한국과 중국은 이른바 ‘2+2 외교 안보 대화’ 신설과 한중 FTA 협상 재개 등에 합의했다한중일 정상은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통의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적어도 각자 입장을 표명하는 형태로 공동선언에 비핵화란 표현을 반영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 회의에선 중국의 자세가 특히 중요했는데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와중에 한국 및 일본과 외교 안보 및 경제적으로 무언가를 협의한다는 모양새를 어떻게 갖출 것이냐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중국의 태도가 완전히 한국 및 일본에 기울어질 수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됐다는 점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나름대로 성과를 거뒀다고 말할 수 있다.

반대로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이런 상황은 문제일 수 있다중국을 북한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전열을 정비할 필요성을 느꼈을 가능성도 있다북한은 한중일 정상회의 당일에는 정찰위성을 쏘아 올렸고, ‘비핵화란 표현이 등장한 것에 대해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다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고조되면 주변국들 역시 모종의 행동에 나설 수밖에 없는데 한미일 군사 협력이라는 틀이 작동하는 이상 중국은 북한에 조력하는 입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이런 점을 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인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들어 나름 새로운 대남 관계 규정 등에 걸맞는 영토영해영공에 대한 재규정을 시도하고 있다지난달 26일 김강일 국방성 부상이 담화를 통해 해상국경선 침범을 언급하며 어느 순간 수상 수중에서 자위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여러 상황과 궤를 같이한다이를 종합하면 우리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전면 무효화하는 등 강 대 강’ 대치 국면을 조성하는 것은 북한이 원하는 국면을 만들 수 있도록 오히려 장단을 맞춰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정권은 굳이 그 길로 간다최근 보도를 보면 아예 정부가 직접 나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는 것도 검토한다는 얘기가 있다이 경우 북한은 오물 풍선’ 이상의 대응을 하려고 들 것이다이러면 끝이 없는 거다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위협이 되는 일을 굳이 해서 좋을 게 무엇인가?

정황의 힌트는 있다최근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가 심상찮다수도권에서는 거의 얼굴을 들지 못할 지경이고보수의 최후 보루인 대구 경북 지역에서도 저조한 수준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나온다는 결과다총선에서의 기록적 대패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없는 데다 해병대원 순직 사건과 김건희 여사 문제 등 사법 리스크는 커져만 간다또한 수직적 당정관계를 포기할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정권 이인자이자 대다수의 보수 유권자가 유력한 차기로 보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과 별 이유가 없는 대립을 이어가고 있어 보수층이 분열하거나 관망으로 돌아선 탓이다.

태도를 바꾸지 않는 상태로 반전의 기회를 만들려면 보수 결집의 기회가 될 수 있는 소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인데혹시 그게 대북 강경론이나 석유-가스 대박론으로 표출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된다는 게 오늘의 결론이다정말 그런 걸까사실 고개를 갸우뚱하기에도 뭐한 게이런 건 식상한 얘기다역대 정권도 정도와 수준은 달랐지만비슷한 생각으로 유사한 시도를 했었다물론 이런 접근은 두말할 것도 없는 구태다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후보를 두고 최소한 보수를 정상화할 적임자라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아무래도 아니었던 거 같다.

덧붙이는 말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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