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성 충돌로 형성된 거대한 밝은 행성체의 상상도. 출처 : Mark Garlick/Eurekalert.
관측 데이터에 따르면 두 거대 행성 간의 거대한 충돌로 인해 발생한 섬광이 처음으로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이 충돌로 생긴 잔해는 시간이 지나며 냉각되고 완전히 새로운 행성을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관측이 확인된다면,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제공하며, 행성 형성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는 중요한 단서를 열어줄 것이다.
2021년 12월, 천문학자들은 평범한 태양과 유사한 별 하나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별이 갑자기 비정상적으로 깜빡이는 것을 발견했다. 몇 달간 이 별에서 오는 가시광선이 계속 변화하며, 때로는 거의 사라질 정도로 어두워졌다가 다시 원래 밝기를 되찾곤 했다.
지구에서 약 1,800광년 떨어진 이 별은 ASASSN-21qj로 명명되었다. 이 이름은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이 주도한 ASAS-SN(전천 자동 초신성 탐사) 프로젝트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상한 빛의 소멸 현상
이런 유형의 어두워짐 현상은 드물지 않다. 일반적으로 이는 별과 지구 사이에서 물질이 이동하는 현상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핀란드의 아마추어 천문학자인 아르투 사이니오(Arttu Sainio)가 아니었다면, ASASSN-21qj는 비슷한 사례들을 담은 점점 더 길어지는 관측 목록에 별다른 주목 없이 추가되었을 것이다.
사이니오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약 2년 반 전에 이 별의 위치에서 방출된 적외선 빛이 약 4% 증가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는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적외선은 일반적으로 수백 도의 비교적 높은 온도를 가진 물체에서 강하게 방출된다.
사이니오가 지적한 이 특이한 현상은 두 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이 두 관측이 서로 연관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ASASSN-21qj 주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행성 충돌 대재앙
저널 네이처(Nature)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 우리는 두 관측 결과가 별이 아니라 두 행성 간의 대재앙적 충돌로 인해 발생한 섬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유형의 충돌은 흔히 ‘거대 충돌’로 불리며, 행성 형성의 마지막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충돌은 행성의 최종 크기, 구성, 열 상태를 결정하며, 해당 행성계 내 천체들의 궤도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 태양계에서도 거대 충돌로 설명되는 현상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천왕성의 이상한 기울기, 수성의 높은 밀도, 심지어 달의 형성까지 이러한 충돌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까지 은하계에서 진행 중인 거대 충돌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거의 없었다.
NASA의 WISE(광역 적외선 탐사 위성) 망원경은 이 별에서 방출된 적외선 빛의 증가를 관측했다. 출처 : NASA/JPL-Caltech.
관측된 현상이 섬광임을 설명하는 방법
우리는 두 거대 행성 간의 충돌이 첫 충돌 직후 몇 시간 동안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충돌한 천체의 물질은 과열되어 녹아내리거나 기화되었거나, 이 두 과정이 동시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이 충돌로 인해 원래 행성들의 수백 배 크기에 달하는 뜨겁고 밝은 물질 덩어리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ASASSN-21qj의 적외선 섬광은 NASA의 WISE(광역 적외선 탐사 위성) 우주망원경에 의해 관측되었다. 하지만 WISE는 약 300일마다 한 번씩 별을 관측하기 때문에, 충돌 당시의 초기 섬광은 포착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행성의 탄생
우리의 가설이 맞다면, 충돌로 생성된 확장된 행성체는 냉각과 수축 과정을 거쳐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의 형태로 변하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릴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이 ‘충돌 후 천체’가 최대 크기에 도달했을 때 방출된 빛이 우리가 관측한 적외선 밝기의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충돌은 별 주위를 도는 다양한 궤도에 거대한 잔해 구름을 형성했을 것이다. 이 잔해 중 일부는 충돌로 인해 기화되었고, 이후 작은 얼음과 암석 결정으로 이루어진 구름으로 응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물질 구름의 일부가 ASASSN-21qj와 지구 사이를 지나가 별의 가시광선을 부분적으로 차단하며 불규칙한 어두워짐 현상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 행성들은 태양계의 해왕성과 비슷했을 가능성이 있다. 출처 : NASA/JPL.
우리의 해석이 옳다면, 이 항성계를 연구하는 것은 행성 형성의 핵심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까지 확보된 제한된 관측 데이터를 통해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로, 관측된 에너지량을 방출하려면 충돌 후 형성된 천체의 크기가 지구의 수백 배에 달했어야 한다.
이렇게 거대한 천체를 만들기 위해 충돌한 행성들은 각각 지구 질량의 몇 배는 되었을 것이다. 이들은 아마 천왕성이나 해왕성과 같은 ‘얼음 거대 행성’ 수준의 크기였을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로, 충돌 후 천체의 온도는 약 700°C로 추정된다. 이 정도로 온도가 낮아지려면, 충돌한 천체들이 순수하게 암석과 금속으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얼음 거대 행성의 충돌
두 행성 중 적어도 하나의 외곽 지역에는 물과 같은 낮은 끓는점을 가진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는 해왕성과 비슷한, 얼음이 풍부한 두 세계가 충돌하는 장면을 목격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적외선 빛의 방출과 별을 가로지르는 잔해가 관측된 시점 사이에 시간이 지연된 것을 보면, 이 충돌은 별로부터 지구와 태양 간 거리보다 더 먼 거리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얼음 거대 행성이 별로부터 멀리 떨어진 체계를 가진 행성계는 다른 별 주위에서 천문학자들이 주로 관찰하는 빽빽한 행성계보다 우리 태양계와 더 유사하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 시스템의 진화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결론을 시험할 기회가 생겼다.
미래 관측에서는 NASA의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과 같은 망원경을 활용해 잔해 구름 입자의 크기와 구성을 확인하고, 충돌로 형성된 천체 상부의 화학적 특성을 식별하며, 뜨거운 잔해 덩어리가 냉각되는 과정을 추적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위성이 형성되는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은 거대 충돌이 행성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례는 우리 태양계 내 충돌의 잔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로운 행성이 탄생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 Detectado el resplandor de una colisión entre dos planetas gigantes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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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록(Simon Lock)은 영국 브리스틀 대학교(University of Bristol) 지구과학부 NERC 연구 펠로우다. 매튜 켄워시(Matthew Kenworthy)는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교(Leiden University) 천문학부 부교수다. 조이 라인하르트(Zoe Leinhardt)는 영국 브리스틀 대학교(University of Bristol) 물리학부 부교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