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이란, '잔게주르 회랑' 두고 충돌?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한 전쟁으로 서아시아가 혼란스러운 가운데이란러시아,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향력을 두고 남카프카스에서 오랜 지정학적 경쟁에 얽혀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 분쟁의 핵심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영토를 관통하는 40킬로미터 길이의 나흐치반(Nakhchivan)을 연결하는 잔게주르 회랑(Zangezur Corridor)이다이 회랑은 아르메니아 영토를 관통하며아르메니아 검문소를 우회해 중앙아시아 투르크어권 국가와 그 너머로 중국과 유럽까지 바로 연결되는 경로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회랑은 이란과 아르메니아의 국경을 방해하고아제르바이잔과 나흐치반 사이의 운송 경로를 단절시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테헤란은 이 회랑이 서방의 지원을 받아 이란러시아중국을 포위하려는 프로젝트라고 보고 있으며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한 러시아는 이란 북부 국경에서 발생하는 이 위협을 심각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러시아의 중재에 대한 우려 증가

이 프로젝트는 약 1년 전에 시작되었지만최근 러시아 관리의 발언으로 인해 이란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8월 말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Ilham Aliyev) 대통령에게 모스크바가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 간 수십 년간의 적대감을 종식하기 위해 중재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Sergey Lavrov) 러시아 외무장관은 아르메니아의 수닉(Syunik) 지역을 통한 통신로 개통과 관련하여 아르메니아 지도부가 협상을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협정은 2020년 바쿠(Baku)와 예레반(Yerevan) 간에 제2차 카라바흐 전쟁 이후 체결된 것이다.

이란 언론은 니콜 파시냔(Nikol Pashinyan) 아르메니아 총리가 평화 조약을 공식화하자고 제안한 후 보도를 강화했다이 제안은 러시아를 배제하고 잔게주르 회랑을 통제하려는 시도로 해석되며러시아가 잔게주르 회랑을 지지하는 세력과 손을 잡고 이란의 이익을 배신할 수 있다는 테헤란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이란의 반대는 지정학적경제적 우려에서 비롯되었다이란은 아르메니아와 45~50킬로미터 국경을 공유하고 있으며잔게주르 회랑이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통한 유럽으로의 접근을 차단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이로 인해 이란의 국경 접촉국이 15개국에서 14개국으로 줄어들고중요한 무역 통로도 닫히게 될 가능성이 있다.

일부 이란 관측통들은 이 회랑을 '나토 투라닉 회랑(NATO Turanic Corridor)'이라고 부르며서방 군사 조직과 이스라엘이 이란 국경을 따라 거점을 확보하려는 관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또한이들은 이란의 아제르어 사용 지역에서 분리주의 운동을 부추길 수 있는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한다.

전략적 및 경제적 고려 사항

이란의 선임 분석가이자 러시아-이란 문제 전문가인 루홀라 모드다버(Ruhollah Modabber)는 이란은 아르메니아와의 역사적인 2천 년 국경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북서쪽 국경에서의 어떤 변화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국제법에 따라 이란은 아르메니아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어떤 시도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모하마드 잠시디(Mohammad Jamshidi) 전 이란 대통령의 정무 차관보는 잔게주르 회랑을 지정학적경제적정체성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라이시(Ebrahim Raisi) 정부가 이 회랑의 건설을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모드다버는 러시아가 아르메니아의 수닉 지역을 통해 아제르바이잔과 나흐치반을 연결하여 무역과 통신을 촉진하려고 하며바쿠는 수닉 지역을 점령하려 하지만 러시아는 나흐치반과 합쳐 회랑을 만들려 한다고 설명했다이 회랑은 필연적으로 이란을 포함한 모든 관련 당사자에게 법적 및 국제적 체제를 부과할 것이다.

운송 회사 소유주인 에산 아지지(Ehsan Azizi)는 이란의 반대가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았다잔게주르 회랑이 개통되면 이란의 운송 수입이 줄어들 것이며아제르바이잔과 나흐치반 사이의 기존 노선이 폐쇄되면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아르메니아러시아 기업들은 이란 도로를 이용해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이란에 대한 보험 및 은행 제재는 또 다른 문제이며보험 회사들은 이란을 경유하는 화물에 대해 보험증권을 발행하지 않아 외국 기업들의 비용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시디는 이러한 경제적 이유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이란은 이미 관세 단일화 등 무역 비용 완화를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강조했다이란의 우려는 경제적 문제가 아닌 지정학적전략적 문제라고 덧붙였다.

모드다버는 또한 이란이 지난 30년 동안 아제르바이잔이 이란을 거쳐 나흐치반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무료로 통행권을 제공했다고 설명하며이란의 반대가 경제적 이유에만 근거한 것이 아님을 밝혔다.

잔게주르에 대응하기 위한 이란의 대체 경로

이란은 잔게주르 회랑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대체 경로를 제안했다그 중 하나는 2023년 10월 이란과 아제르바이잔이 합의한 아라스 회랑(Aras Corridor)이다이 경로는 아제르바이잔의 장길란(Zangilan) 지역과 이란의 동아제르바이잔(East Azerbaijan)을 연결해바쿠가 아르메니아를 통과하지 않고도 나흐치반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한다.

또한이란은 국제 남북 수송 회랑(INSTC)을 통해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에서 카스피해를 거쳐 러시아까지 연결하는 인프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이란은 이러한 항로를 통합하고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를 완료해 경쟁 우위를 유지하려 한다.

이란 외무장관 압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는 잔게주르 회랑의 개통이 국경 재획정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9월 10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 러시아 안보리 서기는 러시아는 잔게주르에 대한 기존 합의를 준수하며 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이란 측에 확인했다.

푸틴 대통령은 아마디안(Ali Akbar Ahmadian) 이란 대표에게 남북 회랑 프로젝트가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우선순위 중 하나라고 말했다.

잠시디는 일부 러시아 관리들이 남코카서스에서 이란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대한 미묘한 이해 부족으로 이란 언론의 부정적인 반응이 촉발되었을 수 있다고 추측했다이는 이란과 러시아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

모드다버는 이란 언론의 보도가 의도적일 수 있다고 지적하며모스크바가 테헤란과 모스크바 간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려는 이란 언론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란이 아라스 회랑을 추진하고러시아는 아르메니아 수닉 지역을 통과하는 통신 경로를 지원하며두 나라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많아 잔게주르 회랑에 대해 공통된 견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의 단호한 입장

잠시디는 이란과 러시아 사이에 균열은 없으며오해가 풀린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다남코카서스의 지정학적 상황은 이란에게 매우 중요하며이란은 러시아로부터 더 많은 설명과 투명성을 원한다고 말했다러시아 역시 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라이시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알리예프 대통령파시냔 총리에게 이란은 통신 경로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지만아르메니아와의 국경에 새로운 주권 체제를 강요하는 통로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모드다베르는 테헤란은 아르메니아와의 국경이 사라지거나아제르바이잔이나 제3국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필요하다면 국경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에게 이 지역의 통제권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 안보와 정체성에 직결된 문제다잔게주르 회랑을 둘러싼 분쟁은 단순한 운송로 문제를 넘어선 중요한 사안이며이로 인해 테헤란이 이 지역을 레드라인으로 여기는 이유가 명확해진다.

[출처Do Russia and Iran’s interests collide over the ‘Zangezur Corridor’?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페레슈테 사데기(Fereshteh Sadeghi)는 이란 테헤란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기자로, 이란의 국내 정치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과거에는 이란의 프레스 TV와 카타르의 알 자지라 영어에서 근무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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