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노동자의) 죽음 위에 전기를 밝히지 않겠다는 선언이어야 합니다.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가 더 안전해질 때까지, 고 김충현 동지의 빈자리를 정의로 메울 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노숙 농성은 분노의 표출만이 아닙니다. 사회에, 우리 스스로에게 보내는 약속입니다. 재판의 결과가 어떠하든 제도를 바꾸는 그날까지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고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들이,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오는 28일로 예정된 한전KPS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1심 선고를 앞두고, “죽음의 발전소”를 멈출 구조적 대안으로 “불법 파견 중단”과 “하청 노동자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사회적 힘을 더 너르게 모아내기 위해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농성 돌입 기자회견 현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1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숙 농성 돌입을 알리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죽음을 외주화한 불법파견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책위 집행위원장으로 여는 발언에 나선 박정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법원의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기다리는 지난 3년 동안 “노동자들은 매년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고, 고 김충현 동지는 목숨을 잃어야 했다”고 환기하면서 “계약 형식은 도급이지만, 실제로는 자신들의 직원처럼 (하청 노동자들을) 부린 한전KPS가 이제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파견은 현대판 인신 매매이자 중간 착취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원칙적으로 인력 파견을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한다”면서 “실제 한전KPS의 2차 하청업체 사장들은 자신들이 계약한 노동자들을 한전KPS의 지휘 감독 아래 일하게 만든 대가로, 노동자 1인당 2천만 원에서 3천만 원을 뜯어갔다”고 중간 착취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뿐만 아니라 “서류상 사장에게는 산업안전에 대한 책임을 질 의지도 능력도 없었고, 정작 실제로 일을 시키는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는 산업 안전에 관한 책임을 방기했다”고 규탄했다.
그는 이와 같은 현실에서 고 김충현 노동자가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서, 법원이 오는 28일 판결을 통해서 “죽음의 공장을 만든 불법적 고용 구조”와 “죽음의 외주화”를 멈출 “최후의 비상 정지 버튼”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끝까지 감시하고 점검”하기 위해 법원 앞 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김하나 법무법인 두율 변호사도 “태안화력발전소의 사고는 단순한 개인의 불운이 아니다”라면서 “그 배경에는 원청의 형식적인 안전관리가 있고, 그 실질은 파견 계약이지만 형식을 도급으로 체결하며 비용을 절감하는 끝없는 하도급 구조에 뿌리가 있다”고 짚었다.
김 변호사는 “한국서부발전과 체결한 정비 계약의 일부를 다시 협력업체에 재하청”을 준 한전KPS는, 2차 하청 노동자들에게 “수시로 전화와 카톡을 통해 (직접) 업무 지시를 했고, 이 과정에서 안전관리 절차는 생략되었다”면서, 법원은 “한전KPS가 진짜 사용자라는 노동자들의 절규에 대한 답변”인 이번 판결을 통해서 “한전KPS가 불법파견을 중단하고 직접 고용 의무를 조속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타오르는 여름, 동료들과 노숙 농성에 나선 김영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장은 자신이 “고 김충현 노동자의 동료이자 현장 노동자로서 이 자리에 섰다”면서 “오늘 우리의 기자회견은, 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서 한국 전력산업의 심장인 발전소에서 관행처럼 뿌리내린 불법과 그 책임을 정면으로 묻는 자리”라고 짚었다.
김 지회장은 “우리는 오늘 8월 21일부터 28일까지, 법원 앞에서 노숙농성에 들어간다”면서 “뜨겁고 차가운 바닥에서의 밤샘은 한전KPS의 불법을 만천하에 알리고, 분노하는 자리이자 법원의 엄정한 판결을 구하는 마지막 호소”라고 이야기했다.
그는 “김충현 동지가 왜 현장에서 삶을 멈춰야 했는가”라고 묻고는, “상시 지속 업무를 하청으로 쪼개고, 업무에 대한 지휘 감독을 원청이 하면서도 책임은 아래로 떠넘기는 구조 때문이었다”고 지적하며, 그 구조 속에서 “위험은 외주화되었고, 생명은 비용으로 환산”되었다고 규탄했다.
또한 “상시 지속 업무는 직접 고용이 원칙이고 실질적 지휘 명령을 했다면 사용자 책임을 져야 한다”, “안전은 외주화할 수 없고 위험은 그 이익을 가져간 곳에서 찾아내야 한다”고 “법과 상식은 이미 말하고 있다”면서, 법원에 “형식의 벽 뒤에 숨은 실제 보아달라”, “도급 계약의 문구가 아니라 현장에서 이루어진 지시와 승인, 평가와 업무 배치가 누구의 손에서 이루어졌는지 보아달라”, “위험과 권한의 방향, 책임과 이익의 흐름을 판결문에 분명히 새겨 달라”고 호소했다.
김영훈 지회장은 “이번 판결은 법률의 조문을 해석하는 일인 동시에,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노동자의) 죽음 위에 전기를 밝히지 않겠다는 선언이어야 한다”면서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가 더 안전해질 때까지, 고 김충현 동지의 빈자리를 정의로 메울 때까지, 모두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멈추지 않고 싸워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농성 돌입 기자회견 현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이날 기자회견 현장에는 발전소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노동계와 진보정당들도 함께했다.
김수억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소집권자는 “9년 전 현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똑같이 불법파견 중단과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었다”면서 “9년이 지났는데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동료들의 죽음을 계속 목도하면서 피맺힌 마음으로 원청에 그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그는 또한 “비정규직의 끊임없는 죽음의 행렬, 저임금, 고용 불안은 이십 년 넘게 지속돼 왔다”면서 이같은 문제를 방기한 역대 정부의 책임을 짚고는, “죽음을 멈추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법을 이미 정부는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요구했고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고 지키지 않았으나 또 다시 이재명 대통령이 약속하고 있는 그것을 지키면 된다”면서 “상시 지속 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을 구체화하고, 지금 당장 불법 파견을 저지르고 있는 사업주들에 대해서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힘 주어 말했다.
그러면서 “3년을 끈 1심 판결 이후에는 2심과 대법원까지 5년, 10년”이 걸릴 수 있고, “그동안 노동자들은 또 죽어 갈 것”이라 우려하면서 “정부는 죽음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이 구조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봉 노동당 부대표는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여러 구조적 문제의 핵심은 “착취라고 생각한다”면서 “더 많은 착취를 위해서 불법을 저질러도 되는 세상”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짚고는 “위험의 외주화와 함께 중간 착취의 문제를 끝내는 투쟁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말했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는 고 김충현 노동자의 죽음은 “하청의 하청,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만든 안전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사고”로 인한 것이라며, “한국서부발전과 한전KPS는 형식은 하도급이었으나, 그 실질은 불법파견이었던 하청 구조를 통해, 2차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중간 착취와 위험의 외주화를 지속해 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법원은 한전KPS로부터 지시를 받으며 근무하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근로관계 실질에 따라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한전KPS의 직접 고용을 명하는 판결을 내려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이재명 정부는 더 이상 이러한 불법파견이 재발되지 않도록 파견법에 대한 폐기를 비롯한 전면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것을 함께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현 녹색당 대표는 “고 김충현 노동자의 사망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김충현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으로부터 직접 업무지시를 받아서 업무를 해왔고, 비정규직 처지라는 이유로 부당한 요구도 직접 받기도 했다”면서 “한전KPS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사실상 한전KPS의 노동자임은 명확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직접 고용이 당연하고 또 간단한데도, 이렇게 권한도 없는 재하청업체를 통해서 복잡하게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비용을 줄이고 이윤을 내고 언제든 자르기 쉽게 하기 위해서”라면서 “노동자들의 생명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법파견을 근절하고 원청이 책임지도록 하기 위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지지하고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농성 돌입 기자회견 현장. 공공운수노조 제공
이날 대책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고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고 김충현 노동자를 포함해 모두 12명의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가 발전소에서 일을 하다 죽었다고 환기하고, “이 모든 비극을 가능하게 만든 건 불법파견이라는 구조적 범죄”라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불법파견이 드러나도, 노동자들이 직접고용을 요구해 소송에 나서도 문제는 끝나지 않고, 1심에서 이기고도 2심·3심으로 끌려 다니며 고통받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이제 법원이 책임을 다해, 한전KPS가 공공기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를 다하도록 직접고용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정부가 나서, 고용안정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공공부문부터 지켜야 한다”고 짚고는 “이재명 정부는 김충현의 빈소를 찾아 “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면서 “정부가 법원의 판결을 핑계 삼지 말고, 그 즉시 이행하겠다는 원칙을 천명해야, 불필요한 소송과 괴롭힘을 끝낼 수 있다”고 짚었다.
덧붙여 “다시는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는 외주화된 죽음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이 싸움을 시작한다”면서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전KPS가 공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불법파견 인정하라!”,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한전KPS는 직접고용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