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휴전 이후, 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전략적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인도주의적 수단과 외교적 도구를 동원해 워싱턴의 감독 아래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2025년 10월 9일 가자 휴전이 발효되면서, 튀르키예는 다시 한번 지역 외교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매김했다. 튀르키예는 이집트, 카타르, 미국과 함께 샤름엘셰이크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것은 인도주의적 제스처라기보다, 안보 조정, 재건 참여, 정치적 중재를 통해 전후 가자에서 튀르키예의 존재를 재확립하려는 의도적인 시도였다.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이 시작된 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는 텔아비브의 행동을 ‘집단학살’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터키 영공 개방과 무역을 중단했다. 다만 무역은 여전히 간접적이거나 제한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이 조치들은 실질적 효과보다 상징적 의미가 더 컸다. 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가 서방의 친이스라엘 노선에서 한발 물러서고, 이슬람 세계의 도덕적 목소리로 자신을 부각하는 계기가 됐다.
외교적 상징성과 전략적 실질
무대 뒤에서 튀르키예는 휴전 이후의 체제 속에 자신을 공고히 자리 잡게 하려 노력했다. 하칸 피단 외교장관은 협상이 돌파구에 근접했다고 밝히며, 이집트·카타르·미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휴전 감시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데 기여했으며, 포로 교환과 시신 인도 절차를 감독하는 ‘가자 태스크포스(Gaza Task Force)’에 참여했다.
이스라엘 일간지 <하아레츠>는 하마스가 포로 석방과 구호 접근을 위해 튀르키예를 ‘신뢰할 만한 보증국’으로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예루살렘 포스트>는 튀르키예가 가자에서의 역할을 발판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전했다. <알모니터?는 튀르키예가 지역 강국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자세 전략을 취하고 있으며, 에르도안이 워싱턴과 카이로와의 충돌을 피하려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튀르키예 정보국장 이브라힘 칼른 또한 이집트가 주최한 협상에 직접 참여해, 하마스에 대한 튀르키예의 지침을 전달하고 이스라엘을 제외한 모든 당사자들과 만났다. 아랍 및 서방 국가들로 구성된 국제 감시군이 이스라엘 철수와 팔레스타인 경찰 훈련을 감독하도록 하는 제안에는 튀르키예가 잠재적 구성원으로 포함돼 있다.
그러나 보도에 따르면 튀르키예는 직접적인 파병이 텔아비브나 나토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외교적 참관인 역할을 선호한다.
인도주의적 접근은 여전히 튀르키예의 주요 진입로다. 튀르키예 대통령실은 라파를 통한 구호 물자 재개를 즉시 발표했으며, 튀르키예-팔레스타인 우정병원 재건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인도주의적 수단을 정치적 영향력의 지렛대로 사용해 왔다. 이러한 ‘인도주의 외교’는 군사적 충돌 없이 현장 존재감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튀르키예의 지역적 제약
튀르키예의 가자에 대한 야망은 구조적 한계에 의해 크게 제약받고 있다. 영공 폐쇄와 무역 금지로 촉발된 이스라엘과의 관계 단절은 2010년 마비 마르마라 사태(2010년 5월 31일, 이스라엘 해군이 지중해 국제수역에서 가자 지구 봉쇄를 뚫고 들어가려던 인도주의 호송선단의 주요 선박인 마비 마르마라호를 급습한 사건)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시리아에서는 여전히 ‘충돌 방지 메커니즘’을 통해 안보 조정이 이뤄지고 있다. 이런 적대적 수사와 신중한 협력의 결합은 튀르키예 외교의 특징을 보여준다. 즉, 극적인 항의와 실용적 조율의 병행이다.
튀르키예는 팔레스타인 문제의 주도권을 놓고 이집트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집트는 역사적 정당성과 직접 국경, 그리고 상호 필요에 기반한 팔레스타인 세력과의 관계를 내세운다. 반면 튀르키예는 강력한 정치적 수사에도 현장 영향력은 부족해, 보증국들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경우 역할이 축소될 위험을 안고 있다.
한편 서방 국가들은 가자에서의 명시적 튀르키예 군사 개입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들은 튀르키예의 중재 역할을 지지하지만, 브뤼셀이나 워싱턴 모두 나토 회원국이자 시리아·이란·동지중해 문제에서 입장이 다른 튀르키예가 가자에 깊숙이 뿌리내리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튀르키예는 이슬람적 유대, 인도주의적 호소력, 물류 능력 등 ‘소프트 파워’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튀르키예 대통령의 강경한 자세는 수사와 실제 결과 간의 간극이라는 근본적 문제에 부딪힌다. 튀르키예가 팔레스타인 고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주택 재건, 생활 여건 개선, 지속되는 이스라엘 위반 행위 억제 등 구체적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시리아 등지에서 이미 실질적 성과 없이 구호 언사에 그친 한계가 드러난 바 있다.
대리 전장으로서의 가자
그럼에도 전후 시기는 중요한 기회를 열어준다. 약 700억 달러로 추정되는 가자 재건 사업은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경험을 쌓은 튀르키예 기업들에게 유리한 계약 기회를 제공한다. 튀르키예는 유엔이나 아랍국가의 틀 안에서 경찰 훈련이나 행정 지원을 맡아 장기적인 제도적 기반을 구축할 수도 있다.
이 점진적 모델(구호, 감시, 파트너십)은 가자의 복구 단계를 사실상의 관리체제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이다. 이는 과장된 수사 대신 지속적 행정 개입으로 전환하는 튀르키예의 새로운 현실주의를 보여준다.
튀르키예의 가자 전략은 세 개의 연계된 궤도로 읽을 수 있다. 첫째, 정치적 중재로서 하마스와 서방 모두와의 관계를 활용해 자신을 합법적 중개자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둘째, 안보 조정으로서 향후 감시 역할을 노리되 직접적인 지상 개입은 피한다. 셋째, 인도주의적 침투로서 군사력을 동원하지 않고 구호와 재건을 통해 영향력을 심화하는 전략이다.
미국의 트로이 목마
미국은 튀르키예의 개입을 냉정한 전략적 시각에서 바라본다. 무슬림형제단이 튀르키예의 지역적 야망을 위한 ‘휴면 대리인’ 역할을 하는 가운데, 튀르키예 대통령의 개입은 이란을 견제하고, 이집트를 제어하며, 팔레스타인 세력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니파 균형추를 제공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휴전을 끌어낸 튀르키예 대통령의 역할을 “환상적”이라 칭찬하며 “그는 매우 존경받는 인물이며 큰 도움을 주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는 자율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워싱턴은 여전히 다층적 국제 틀을 통해 튀르키예의 참여를 관리하고 있다.
시리아의 완화 구역(Syria’s de-escalation zones)에서처럼, 미국은 통제권을 내주지 않은 채 부담을 외주화하려 한다. 따라서 가자는 튀르키예의 지역적 부상을 시험하는 시금석이자 동시에 함정이 된다.
그럼에도 튀르키예는 신오스만주의적 야망을 품고 관찰자에서 이해당사자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튀르키예는 재건을 지원하거나, 휴전 위반을 줄이거나, 가자의 미래 정치·안보 구조에 참여함으로써 상징적 존재감을 실질적 영향력으로 바꾸려 한다.
그러나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매우 좁다. 튀르키예는 대서양주의적 전략 우선순위가 부과한 한계 아래에서, 이스라엘의 불신과 아랍 국가 간 경쟁에 제약받고 있다. 미국은 튀르키예를 유용한 중재자로 본다. 인도주의의 외피를 두른, 무슬림 다수의 나토 회원국으로서 미국의 구상을 추진하면서도 지역적 위험을 떠안는 존재로 여긴다.
시리아의 완화 구역에서 그랬듯, 튀르키예의 가자 개입은 존재감을 보여주지만, 실질적 결정권은 거의 없다. 가자는 이제 앙카라가 지역적 영향력을 주장하고, 워싱턴이 간접 통제 모델을 미세 조정하는 시험장이 됐다. 가자의 미래는 점점 국경 밖에서 결정되고 있다. 앙카라가 공개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실제 결정은 외국의 수도들에서 이루어진다.
튀르키예의 과제는 가시성과 자율성 사이의 좁은 공간을 헤쳐 나가는 것이다. 가자에서 전후 외교는 누가 팔레스타인의 향후 진로를 결정할 것인가(저항운동인가, 지역 국가들인가, 아니면 서방이 후원하는 권력구조인가)를 둘러싼 더 깊은 싸움의 무대가 되고 있다. 튀르키예는 그 협상 테이블에 앉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지금 선을 긋는 쪽은 미국이다.
[출처] Turkiye's Gaza push: Proxy politics under US watch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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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알자인(Abbas al-Zein)은 <알마야딘 미디어 네트워크>(Al-Mayadeen Media Network) 소속의 레바논 정치 작가다. 그는 지정학과 국제 안보를 전문으로 다루며, 세계 에너지 자원, 공급망, 에너지 안보 역학에 대해서도 탐구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