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가 각국에 관세와 비자 제한을 위협한 뒤, 사상 최초의 글로벌 탄소세 도입 계획은 불확실한 미래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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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사상 최초의 글로벌 탄소세가 올해 국제 협정으로 공식 채택될 예정이었다.
전 세계 해운을 감독하는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운업계를 청정연료로 전환하기 위한 ‘순배출 제로(net-zero)’ 체계를 마련했다. 이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 단계였다. 전 세계 무역의 약 90%를 담당하는 해운 산업이 지구 온실가스 배출의 약 3%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체계에 따르면, 선사들은 일정 기준치를 초과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대해 톤당 요금을 납부해야 했다. 이 요금은 기금으로 모아져, 개발도상국의 대체연료 개발과 탈탄소화 노력을 지원하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다. 일관된 규제 환경과 공정한 경쟁 조건을 원하던 해운업계는 이 계획을 대체로 지지했다. 유엔 회원국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는 갑자기 IMO 협상에서 철수했다. 이번 달 순배출 제로 체계에 대한 표결이 다가오자, 행정부는 다른 국가들에 협정을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행정부는 또 성명을 내고, 이 체계에 찬성표를 던지는 국가들에 대해 추가 관세, 비자 제한, 항만 사용료 인상, 그리고 해당국 관리들에 대한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트루스소셜에 직접 글을 올려 이 제안을 “해운을 겨냥한 전 지구적 ‘그린 뉴딜 사기 세금’”이라고 비난했다.
이 캠페인은 성공했다. 지난주 협상의 막바지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갑자기 표결을 요청하며, 순배출 제로 체계에 대한 결정 없이 IMO 회의를 1년간 연기하자고 제안했다. IMO 규정상 회의 연기안은 모든 다른 안건보다 우선시되기 때문에, 이 제안은 즉시 표결에 부쳐졌고 57개국 찬성, 49개국 반대, 21개국 기권으로 통과됐다. 이는 최소 1년 이상 해당 체계가 공식적으로 채택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IMO의 탈탄소화 노력을 면밀히 지켜봐 온 전문가들은 미국의 방해가 순배출 제로 체계 채택을 막은 결정적 요인이라고 밝혔다.
영국의 기후 단체 ‘오퍼튜니티 그린(Opportunity Green)’의 선임 이사 엠 펜턴(Em Fenton)은 이렇게 말했다. “회의 전부터 미국 행정부가 공유한 보복 조치와 처벌적 위협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다고 말할 수 있다. 지난주 결과는 기후 다자주의에 대한 참담한 타격이다.”
IMO는 수년 전부터 온실가스 배출 규제 마련을 추진해왔지만, 본격적인 진전은 2023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IMO의 176개 회원국은 2050년경까지 ‘순배출 제로’ 달성을 약속하는 온실가스 전략에 합의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국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해운 회사들이 사용하는 연료의 탄소집약도를 상한선으로 제한하는 기술적 기준과, 이를 강제하기 위한 경제적 조치(탄소세나 배출권 거래제 형태)가 포함됐다.
경제적 조치를 두고 회원국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EU 국가들, 영국, 태평양·카리브해 국가들,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한 64개국 이상의 ‘야심찬 연합’은 모든 해상 배출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상대적으로 높은 ‘정액 탄소세(flat tax)’를 제안했다. 그들의 제안에 따르면, 발생한 온실가스 1톤당 동일한 가격이 매겨졌다. 반면 중국이 주도한 또 다른 그룹은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선호했다. 이 방식은 국가들이 탄소 크레딧을 통해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한다. 중국과 다른 신흥 경제국들은 자신들이 대규모 수출국이라는 점을 들어, 정액세가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회원국들은 절충안에 합의했다. 바로 ‘2단계 체계’였다. 상위 배출국(1단계)은 일정 부분 배출권 거래를 허용받는다. 하위 배출국(2단계)은 배출량 톤당 요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리고 탄소 제로나 준(準)제로 연료 기준을 충족하는 기업에는 재정적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이러한 접근법이 올해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었던 ‘순배출 제로 체계’로 발전했다.
해운업계는 이 체계를 대체로 환영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몇 년간 사상 최대의 수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기후 단체 오퍼튜니티 그린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선박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139개 주요 해운사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3,400억 달러의 이익을 냈다. 그중 상위 10개 해운사의 실질 평균 세율은 10% 미만으로, 전 세계 평균 법인세율인 21.5%보다 훨씬 낮았다.
해운업계는 규제의 명확성 또한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지난주 회의를 앞두고, 해운업계를 대표하는 여러 무역 단체들은 공동 성명을 내어 해당 체계의 채택을 촉구했다. 그들은 이렇게 밝혔다. “전 지구적 산업의 탈탄소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전 지구적 규제뿐이다. 이 체계가 없으면 해운업은 각국의 일방적 규제가 얽힌 불균형한 조각보 체계에 직면하게 되고, 이는 비용만 높일 뿐 탈탄소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순배출 제로 체계가 위태로워지면서, 향후의 방향은 불확실해졌다. 해운 관련 협상이 1년 뒤에야 재개될 예정이지만, 오퍼튜니티 그린의 엠 펜턴(Em Fenton)은 그 사이 열릴 다른 중간 회의들에서 기술적 세부 사항을 더 명확히 하고 합의에 도달해, 내년에 이 체계가 채택될 수 있도록 각국이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 세계의 도시와 항만들은 이미 자국 인프라의 ‘녹색 전환’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세계 시장 네트워크인 C40(기후 행동을 취하는 글로벌 시장 연합)의 항만·해운 프로그램 책임자 알리사 크라인스(Alisa Kreynes)는 해운업계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도시 주도의 조치를 지적했다. 여러 도시가 ‘그린 해운 회랑’을 구축하고 있다. 이는 항만과 해운 파트너들이 협력해 배출 제로나 준(準)제로 연료로 전환하는 무역 항로다. 항만들은 또한 트럭의 배출 기준을 강화하고, 해상 풍력 개발도 지원하고 있다.
크라인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대응하는 방식은, 지난주 IMO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상관없이 도시들이 정의로운 해운 전환을 계속 실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들은 공정하고 지속 가능한 항만과 해운의 탈탄소화를 추진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만으로는 해운업 배출의 주된 원천, 즉 전 세계를 오가며 화물을 운반하는 거대한 고연료 선박들의 배출량을 크게 줄이기 어렵다. 또한 IMO 협상의 붕괴는 국제 협력의 취약성을 경고하는 신호로 울리고 있다. 이런 흐름은 다음 달 브라질 벨렝(Belém)에서 열리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
엠 펜턴은 이렇게 말했다. “지연과 혼란을 유도하는 이런 식의 전략은 이번 IMO 협상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COP30에서는 훨씬 더 노골적이고 가시적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매우 실망스러운 일이다.”
[출처] Trump Jeopardizes Plan to Reduce Global Shipping Emissions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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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나 사다시밤(Naveena Sadasivam)은 <그리스트>(Grist)의 탐사보도 기자이자 편집자로, 석유·가스 산업과 기후변화를 취재하고 있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