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이후 탄핵 정국으로 형성된 정치 불안정이 극에 달하고 있다. 비상계엄과 군부를 동원한 내란 사태에도 버티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이를 탄핵소추하지도, 퇴진으로 이끌지도 못하는 민주당 등 야당의 정치적 무능으로 국민 불안과 불만이 치솟기 때문이다.
정치 불안정, 국민 불안이 확대하면서 한국 경제도 요동치고 있다. 환율은 치솟고, 증시는 매일매일 곤두박질치고 있다. 한국은행이 내년과 내후년도 성장률을 1%대로 전망한 것이 바로 10여 일 전인데, 이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잠재성장률은 더 떨어질 것이고 성장률이 더 후퇴할 것은 자명하다. 이에 따라 이미 벼랑 끝에 서 있는 국민, 서민들의 삶도 한 발짝 뒤로 밀리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확대한 불평등은 더 커질 것이고, 실질 소득 감소, 가계 부채 확대는 역사상 고점을 연일 갱신하리라.
사실 정치의 근본 문제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사태가 표면적으로는 민주당과 대통령의 정치적 갈등이 비화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그 기저에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정이 있다. 재벌 주도 성장의 한계, 금융자본주의로의 재편, 인플레이션 대응 실패와 소득 감소, 불평등 확산 등 이미 우리 삶의 근본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군부를 동원한 이카로스의 날갯짓에 불과했던 것이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물론 모든 장관과 부처가 이번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의 부역자가 되지 않을까 숨을 죽이는 가운데, 오직 경제부처만이 경제를 살리자며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회가 경제와 민생을 죽이고 있다며 예산안의 조속한 처리와 경제 관련 입법 처리에 대해서는 빨리 처리하라고 호통까지 치고 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8일 열린 관계부처 합동 성명에서 “국내 투자자를 보호하고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도 시급하다”며 “글로벌 반도체 전쟁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한 반도체특별법 논의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위원장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증권안정펀드와 채권안정펀드를 투입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지금 국면에서도 현 정부가 구제하려는 것은 민생이 아니라 재벌과 금융자본이다. 코로나19 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주식, 채권 등 금융시장 구제에 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대자본이 세금도 제대로 내지 않는 국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살리기 위해 증권안정펀드 10조 원, 채권안정펀드 40조 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게다가 재벌 특혜와 규제 완화로 가득한 반도체 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 달라고 한다. 산업재해와 환경재해를 유발하는 반도체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해제, 완화하는 것은 물론, 100조 원 규모 반도체기금 조성, 각종 세제 혜택, 용수, 전기 등 인프라 지원, 직접 보조금 등 사실상 국가의 미래를 반도체 산업에 배팅하는 ‘반도체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반도체 생산에는 이제까지 드러난 노동자들의 방사선, 산재 피해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새로 만드는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용수)과 전기를 사용할 예정이다. 용인 반도체클러스터에 하루 약 80만t의 용수를 공급해야 하는데, 대구시 전체 하루 물 사용량(78만t)보다 많다. 이걸 정부가 한강 일대에 새로 댐을 짓거나, 기존 댐에서 용수와 전기를 용인까지 끌어온다. 송전선로만 하더라도 한전은 2024년부터 용인클러스터에 14개 노선, 총연장 1153㎞의 345㎸ 송전선로를 건설할 계획이며, 송전망 건설 비용만 약 3조 7,100억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게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 전용송전망 길이를 줄여주는 방식으로 삼성과 하이닉스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대폭 삭감해 결국 1조 원만 지급받는 것으로 줄여주었다.
왜, 우리 국민들이 장시간 노동, 산업재해, 환경오염으로 땅, 물, 사람까지 죽어가면서 삼성과 SK 재벌에 일방적인 이익만을 보장할 뿐인 반도체 산업 부흥을 위해 수백조 원이 넘는 국가의 자원과 국가의 미래를 국민이 빚을 지며 사실상 무상으로 재벌에 넘겨줘야 한단 말인가.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사태에서 대통령의 직무와 집행이 정지되어야 할 문제는 군 통수권과 공무원 임명권보다도 재벌과 금융자본만을 살리는 이런 경제 정책들과 윤석열 정권이 일방적으로 추진해 온 의료, 연금, 노동, 교육 등 4대 개혁이다.
여당은 물론 야당인 민주당조차 경제부처의 이런 정책 추진과 촉구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 민주당은 금투세 폐지를 확정했고, 가상자산 과세는 2년 유예했다. 반도체 특별법도 장시간노동 규제 완화를 제외하고는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에서도 거의 그대로 추진해 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궁극적으로 이런 정책들을 일사불란하고 신속하게 처리하는 데에도 목적이 있다면, 민주당조차 이번 계엄 사태를 유발하고 미필적으로 동조한 부역자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나라 경제를 살리고, 우리 삶을 살리고자 한다면, 재벌 주도 수출경제로 수직 계열화, 하청화되어 있는 한국경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고, 재벌 손아귀에 있는 주요 산업을 다시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일일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사태, 탄핵 실패 등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여야 정치권 전반의 무능도 다시 확인한 한 주였다. 경제살리기란 미명으로 다시 이 정책들이 추진되어서는 안 되고, 대통령실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가 국회에서 마감되도록 해서도 안 될 것이다.
윤석열 퇴진은 한국경제의 민주적 구조개혁을 위한 첫걸음으로 삼아야 하며, 그것만이 2017년 미완의 혁명인 박근혜 퇴진 촛불을 완성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