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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씨 9/11 Fahrenheit 9/11>
- - 진실이 불타는 온도 화씨 9/11, 이제 당신의 선택은?

[아주 약간의 스포일러 - 영화 장면에 대한 설명 - 가 있습니다. 영화 감상에 있어 스포일러의 영향을 "많이" 받는 분은, 영화를 보신 후에 이 글을 읽으십시오.]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만큼 곤혹스러운 게 있을까. 의지와 의사 표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상황은 절망적이다. 선택의 기회가 있을 때는 의지와 의사에 따라 휩쓸리거나(동참하거나) 또는 배제되는(동참하지 않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에는 일방적으로 휩쓸리고 만다.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사후적인 기회는 있겠지만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 선택의 순간은 늘 절망과 패배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이 땅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은 선택이 아니라 태생의 전제였다. 그것에 의심을 품는 것만으로도 배제와 거세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했다. 북은 배를 곯아가면서도 남침 준비에 혈안이 된 전쟁광들이었고, 베트콩은 죽여도 죽여도 땅굴에서 계속 튀어나오는 무자비한 빨갱이들이었다. 반미는 곧 반체제였고, 반독재는 곧 친북이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신성을 건드리는 것은 곧 배제와 거세로 이어졌다.

이미 선택되어버린 상황에서, 사후적으로 이루어진 저항은 두세 갑절 이상의 고통이 따랐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개혁세력이 정치의 전면에 나섰고, 재판부는 송두율 선생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좋은 소식이다. 경계를 넘나들었던 수많은 피해자들의 상처가 이제는 조금씩 아물게 되는 걸까.

베트남전쟁은 미국전쟁이었고, 베트남패전은 배트남 민중의 승전이었으며, 월남패망은 민족해방이었다. 이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한국전쟁이 미국전쟁이었고, 분단이 미완의 해방이었다는 역사의 진실을 이해하기까지는 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하물며 이라크전쟁이 미국전쟁이며, 이라크패전이 이라크 민중의 해방이라는 믿음을 갖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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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경쟁과 이윤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오늘날 경쟁과 이윤 논리를 재생산하는 것, '총을 든 달러'-'무장한 세계화'-'제국주의'-'미국'이다. 화씨911은 '미국'-'제국주의'-'무장한 세계화'-'총을 든 달러'의 실체를 조목조목 보여주는 영화다. 무어의 진지하고 정열적인 작품 생산에 감사와 연대를 표한다.

1997년 '새로운미국의세기를위한프로젝트'(PNAC)가 출연했을 당시, 그것이 유고슬라비아를, 아프가니스탄을, 이라크를 폭격하는 악의 씨앗일 거라 생각한 사람은 몇이나 되었겠는가. 화씨911의 주요 출연진인 도널드럼스펠드, 콘돌리사라이스, 딕체니, 월포이츠 같은 인간들이 그들이다. 이 희대의 범죄집단의 인생의 목표는 오로지 미국 국방비의 증액이었다. 3백만 고용인의 생존을 보장하겠다고 큰소리 쳤고, 1만 명에 달하는 로비스트와 브로커와 무기밀매상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다.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제노럴다이내믹스, 보잉, 노드롭그루먼 등 군산 메이저들에게 향후 10년 이상 안정된 돈벌이 프로젝트를 약속했다.

2000년, 이들은 부정선거 논란 속에 백악관에 입성했고, 화씨911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부시를 덜 떨어진 대통령으로 묘사하는 것은 진실에 재미를 더하는 무어의 고난이도 테크닉이다. 월포이츠가 머리 빗에 침을 묻혀가며 머리 손질하는 장면을 어떻게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을까. 부시 집안이 오사마 집안과 맺어온 깊은 내력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경쟁과 이윤 논리가 어디서 어디로 흐르고 있는지가 한 눈에 보인다.

'되는 일 없으니 여행이나 떠나자'는 장면은 압권이다. 부시는 취임 후 911테러 때까지 8개월 동안 약 42%의 기간을 휴가로 보냈다. 화씨911의 영향 탓일까, 매년 여름이면 한 달간 크로퍼드 목장에서 휴가를 즐기던 부시가 올해는 2주일로 기간을 줄일 거라고 한다.



애국법(테러방지법) 이야기는 경악이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지만 테러가 무엇인가에 대해 단 한 번도 정식화한 적 없다. 테러가 무어냐고 하면 악의 축이라 하고, 악의 축이 무어냐고 하면 테러집단이라는 동어반복만 해왔다. 애국법을 통해 테러를 환기했고, 테러는 테러심리를 낳고, 테러심리는 테러위협을 낳고, 테러위협은 가상의 테러를 현실의 테러로 둔갑시켜 놓았다. 미국은 시민으로 하여금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하더라도 그 위력과 영향이 미비하기 짝이 없는 테러를 인류 전체의 주적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화씨911은 국가가 동원하는 이데올로기의 위력이 평범한 시민들을 얼마나 비참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으로 전락시키는 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범죄집단은 '덜 떨어진' 부시의 입을 빌려 2002년 1월, 악의 축(axis of evil)을 발표케 한다. 7개 악의 축 나라에 대해 핵무기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핵태세보고서(NPR)를 제출했다. 911 이후 한 달만에 아프카니스탄을 공습하고, 다시 두 달만에 '핵 전쟁에서의 승리'를 목표로 하는 대인류 전쟁 선언을 한 것이다. 북한,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중국, 러시아 등 7개국은 테러국의 오명을, 미국은 테러로부터 세계를 구하는 자유국가의 수호자가 되었다. 그 해 9월 발표한 신국가안보전략(New National Security Strategy of USA, 이른바 부시독트린)에는 힘의 우위에 근거한 미국 우선주의, 일방주의 노선이 노골적으로 담겨 있다. 키워드는 대량살상무기 척결, 국제 테러리즘 분쇄와 우방과의 동맹, 그리고 자유시장과 무역 신봉.

화씨911은 이들 범죄집단이 부시집권 초기에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질만한 능력이 안 되는 나라라고 하나같이 호언하는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이 범죄집단은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멀게는 1991년 걸프 전 이후 1998년까지 250여 차례나 현장조사가 진행되었다. 이 때 웬만한 무기는 다 폐기처분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1년 전부터 유엔무기사찰단이 샅샅이 뒤져도 안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공을 앞두고 대량살상무기 있다고 빡빡 우겨대기 시작했다. 이윽고 대량살상무기 척결, 이라크민주화, 후세인 응징을 명분으로 삼아 2003년 3월 20일 마침내 이라크를 침략했다.



동맹국? 화씨911은 동맹국을 비웃는다. 부시가 보면 좀 야박해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영국, 일본, 폴란드, 터키 같은 나라도 있는데.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모로코의 지뢰 제거 원숭이군단, 그밖에 잘 안 알려진 나라들 정도만 소개하다니. 어쨌든 동맹국에 대한 비아냥은 우방을 강조하는 '신국가안보전략'의 허무맹랑함을 보여준 것.

2003년 215와 320 국제반전운동은 미국의 질주에 제동을 걸었다. 2월 15일에는 1천만 명 이상이 동시에 참가하는 반전 시위가 펼쳐졌다. 유럽사회포럼의 제안과 세계사회포럼의 결의로 진행된 반전 시위는 부시와 블레어의 정치적 패배를 예고했다. 미국은 40일만에 종전을 선언했지만 1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이라크 민중의 저항은 계속된다. 지난 4월 팔루자해방은 이라크 민중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6월 28일 주권이양을 경과하면서 이라크 민중은 승리한다는 확신을 보여주고 있다. 동맹국들은 하나같이 항복을 선언하고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블레어, 고이즈미는 이미 나가떨어졌고, 노무현은 상태가 안 좋으며, 부시가 올 겨울 대선에서 이길 거라 점치는 도박사는 몇 안 된다.

화씨911은 이라크 현장을 보여준다. 민가 습격, 알라신에 대한 어머니의 호소, 불에 탄 시체, 포로 학대... 그리고 피범벅된 아동, 여성...... 극장 안, 숨이 멎는다.

지난 5월 아브그레이브 포로수용소는 미 제국주의가 이 시대 가장 반동적이고 반인륜적인 억압 체제라는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미 제국주의가 백주 대낮에 저지른 이 범죄는 이라크 민중들을 실의와 도탄에 빠뜨렸고, 전 세계 민중들의 가던 길을 멈추게 하였고, 심장을 멎게 하였다. 억압과 착취, 침략과 폭압의 서슬 퍼런 광기에 휩싸여 앞과 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흉악한 제국주의자의 모습이었다. 화씨911은 아부그레이브에서의 포로 학대가 알려지기 훨씬 전에 이런 장면을 영상에 담았다.

화씨911은 후반부 많은 부분을 애국주의를 자랑하는 '미국보수군인집안'의 한 어머니에게 할당했다. 전쟁터에 아들을 보낼 때까지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던, 반전 시위대를 혐오하던 '미국보수군인집안'의 한 어머니가 아들을 잃고 애국이 얼마나 허망해하는가를 드라마처럼 보여준다. '미국보수군인집안'의 한 어머니의 슬픔이 '이라크보통사람집안'의 수천 수만의 어머니의 슬픔이라는 사실을 굳이 환기할 필요가 있을까? 계급 사회 유지를 위해 빈곤을 재생산한다는 '1984' 인용 나레이션은 화씨911이 마지막까지 누구의 이해를 옹호하고 싶어하는 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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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전쟁을 선택했고, 노무현은 미국을 선택했고, 신기남은 한-미동맹을 선택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던 시대, 그 경계를 넘나들며 사후적으로 저항해왔던 개혁세력의 절대 다수가 한-미동맹을 선택하고, 미국을 선택하고, 부시를 선택했다. 지금 개혁지배세력은 '총을 든 달러'-'무장한 세계화'-'제국주의'-'미국'을 실용주의, 현실주의라고 부른다. 지금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강변한다.

화씨911, 올 여름 가장 빨리 선택해야 할 영화다.

유영주 (미디어 참세상 편집장)

- 사진 출처 : <화씨 9/11> 미국 홈페이지
화씨 9/11 한국 홈페이지
화씨 9/11 미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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