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의 시대인가? 다들 감세를 말한다. 감세! 싸워야 한다. 그런데 흥이 돋지 않는다. 김이 샌다. ‘이게 가능한 얘긴가?’ 싶은 생각이 먼저 들기 때문이다. 이것도 자유민주주의를 내건 윤석열 정권의 특징이다.
짧게 보면, 시발점은 대통령 정책실장의 일요일 TV 출연이었다. 성태윤 정책실장은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30% 내외로의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상속세 공제 한도 상향, 유산취득세 및 자본이득세 도입 등을 주장했다. 종부세는 ‘사실상’ 전면 폐지를, 금융투자소득세는 분명한 폐지 방침을 재확인했다. 성태윤 실장의 발언 이후 대통령실과 기획재정부는 언급된 바는 검토 대안 중 하나일 뿐이며 구체적인 개편안은 의견 수렴 이후인 7월 이후 결정하겠다는 취지의 해명자료를 냈다. 하겠다는 건지 안 하겠다는 건지, 한다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성태윤 실장 발언 의도를 놓고 여러 해석이 교차했다.
일단 하겠다는 걸로 전제하면,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상속세율 인하는 비유하자면 재벌과 초고소득층의 민원 사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태윤 실장은 “서울 아파트 한 채 정도를 물려받는데 과도한 상속세 부담을 갖지 않는 정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일부 언론은 이 발언에 장단을 맞춰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중산층도 상속세 걱정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처럼 보도했으나, 정말 그런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해봐야 한다.
출처 : Unsplash, The New York Public Library
한겨레의 17일 보도를 보자. 국세통계연보에 의하면 2022년 기준 전체 피상속인은 34만8159명인데 상속세를 낸 사람은 1만5760명, 전체의 4.5%였다고 한다. 이들 상속세를 낸 사람 중 최고세율인 50%(과표 30억 원 초과)가 적용되는 사람은 955명이다. 상속세 납부 대상자 기준으로 하면 약 6% 정도, 전체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하면 0.27%인 셈인데, 이들의 1인당 평균 상속세 과세가액은 약 420억 원이고 이들이 내는 상속세가 전체 상속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넘는다. 이들 중에서도 과표 500억 원 초과 피상속자만 따로 분리하면 20명 정도인데, 이들이 납부한 상속세는 전체 상속세수의 76.8%인 14조7958억 원에 이른다. 1인당 상속세 과세가액은 평균 1조6천억 원이다.
나머지 전체 상속세수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사람 중, 법정세율 40%가 적용되는 과표 10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에 해당하는 피상속인 수는 2593명이다. 이들이 내는 세금이 전체 상속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이다. 상속세율 30% 적용 대상부터는 상속세 부담이 있더라도 (물론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미미한 것이다. 명목세율 20%가 적용되는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 구간 납부자에 대한 실효세율은 3.5%였다. 세율 30%인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 구간의 경우 실효세율은 8.4%였다. 물려 받을 재산이 있더라도 일괄공제 5억 원에 배우자 공제 및 그 밖의 각종 인적공제를 활용하면 사실상 실효적 의미의 상속세가 부과되는 일은 많지 않다는 얘기다.
결국 상속세 최고세율을 인하하자는 주장은 “서울 아파트 한 채 정도를 물려받는” 중산층을 겨냥한 게 아니라 물려받을 돈이 명목상으로는 30억 원 이상, 실질적으로는 몇백억 원 이상 정도가 되는 계층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유산취득세와 자본이득세 도입까지 더해보면 타깃이 어디인지가 더욱 분명해진다. 지금도 이런 판에 ‘물려주는 재산’ 기준이 아니라 ‘물려받는 재산’ 기준으로 과표를 정하자는 취지의 유산취득세를 도입하면 누가 수혜를 보게 될지는 더욱 명확해진다. 선대 회장이 세상을 떠날 때마다 지분을 매각하고 배당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형제의 난’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흙탕물 싸움을 벌여야 하는 재벌 2, 3, 4세들의 전근대적 걱정거리를 한시름 덜어주는 정도의 효과를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습과 승계라는 이 전근대적 행위의 걸림돌이 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상속세의 최대주주 할증이다. 최대주주가 주식을 상속할 때 지분 평가액의 20%를 가산해 최대 60%의 세율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를 폐지하는 것은 재계의 오랜 숙원이다. 그런데 자본이득세는 회사를 물려받더라도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고, 지분을 매각하는 등의 이익을 실현했을 때 이에 대하여 과세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재벌의 경우 회사를 파는 일은 앞서 전근대적 무리수가 꼬리를 무는 상황이 아니라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자본이득세를 도입하면 세습과 승계의 걸림돌은 완전히 해소된다. 정부가 이러한 제도의 도입을 주장할 때에는 ’가업 승계’를 명분으로 하겠지만, 규모가 일정 이상이 되지 않는 기업의 경우 이미 가업상속공제제도를 활용해 상속세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결국 재벌 대기업의 ‘소원 수리’가 아니라면 이런 시도의 배경을 추정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함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배임죄 폐지 주장을 함께 덧붙여보자. 윤석열 정권이 야심차게 준비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이복현 원장 등이 거론하고 있는 게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추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경우 이사들의 배임죄 처벌을 목적으로 한 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데, 이복현 원장은 이에 대해 배임죄를 폐지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배임죄 폐지 자체에 대해서는 법조계에서도 이런 저런 논쟁거리가 있다고 한다. 다만 이것도 세금 문제와 마찬가지로 배임이라는 죄 자체의 문제만을 얘기하기보다는 이를 폐지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을 고려하면서 논의를 해나가야 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의 경우 재벌 오너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해 계열사를 동원하는 일이 일반화되어 있는데 배임죄의 존재가 이러한 행위를 견제해 왔다는 지적이 있다는 거다.
이 점에 착안해 앞서 상속세와 관련한 논의를 상기해보자. 멀지 않은 미래, 상속세가 자본이득세로 대체된 ‘윤석열 월드’에서 어떤 재벌 3세가 상속세도 내지 않고 회사를 물려받은 후, 최선을 다해 경영을 하는 게 아니라 현상 유지에만 매달리면서 배임에 해당하는 여러 부적절한 일들을 저지르며 회사 자산을 소진해버린다면? 재벌 일가에는 이보다 좋은 세상이 없을 테지만, 나머지 절대 다수의 시민들이 볼 때는 불공정과 몰상식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되는 거다. 가만 두고 볼 수 있겠는가.
출처 : Unsplash, Evan Dennis
그런데, 이런 ‘윤석열 월드’는 현실이 되는 것일까? 그게 아닌 것 같은 게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목이다. 일단 이복현 원장은 이 문제와 관련한 책임있는 당국자라고 볼 수 없다. 배임죄 폐지와 관련한 주무부처는 법무부다. 심지어 금융감독원은 행정부에 속하지도 않는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위와 증권선물위의 지도 감독을 받아 금융기관에 대한 검사 감독 업무 등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무자본특수법인이다. 그러면 이복현 원장의 발언은 뭘까? 정권 차원의 의지가 실린 걸까? 정권이 의지를 실었다면 굳이, 하필 이복현 원장에게 이런 얘길 시켜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마냥 무시하기도 어려운 게, 이복현 원장은 검사 시절부터 인연이 있는 대통령 최측근 인사다. 하는 건가, 마는 건가? 아니면, 간이나 보고 말겠다는 건가?
상속세 문제도 비슷한 느낌이다. 대통령 정책실장이 직접 방송에 나와 내놓은 거라는 점에서 발언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문제는 이런 구상이 실제 추진되기 위해선 국회의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거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재벌과 초고소득층에 편향된 형태로 설계된 제도를 언급하면 더불어민주당이 수용하기 쉽지 않다. 할 마음이 있는 건가, 하는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거다.
종부세 문제도 마찬가지 느낌이다. 언론 보도를 보면 최근까지 대통령실이 드라이브를 예고한 종부세 폐지 문제에 대해선 기획재정부도 난감한 표정이라는데,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첫째, 윤석열 정권에서 이미 실질적으로 세 부담을 느낄만한 종부세 중과 대상을 거의 99% 감소시킨 상태다. 둘째, 종부세를 재산세와 통합하는 방안 등을 추진했을 경우 부동산 교부금이 사라져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자체에서 세수 부족 문제가 크게 불거질 수 있다. 셋째, 1주택 실거주자에 대한 폐지만을 추진하더라도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 등 추가적인 부동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넷째, 그렇잖아도 전반적인 세수 부족 문제가 심각하다. 그런데도 대통령 정책실장은 왜 종부세 폐지를 말하는가? ‘보유가액 총합이 높지 않은 다주택자’를 거론하면서 “세부담이 임차인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한 것에 힌트가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1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면제를 사실상 주장해왔다. 선거 때마다 수도권 주요 승부처에서 ‘종부세 폭탄론’ 때문에 수세에 몰린다는 피해의식이 반영된 행보로 풀이된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보수층 ‘오피니언 리더’들의 여론은 비교적 호의적이었다. 조선일보는 연금개혁 국면에 이어 종부세와 상속세 부담까지 더불어민주당이 완화할 수 있다면 수권능력을 인정받게 될 거라고 사설에서 평가했다. 이전의 연금개혁 국면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타협안’을 제시한 데 대해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이 “이 대표가 굉장히 ‘프레지덴셜’해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일부 호사가들은 ‘이재명의 민주당’이 만드는 이러한 흐름을 대선 이후까지 겨냥한 ‘중도층 공략’의 포석으로 봤다. 2026년 지방선거, 2027년 대통령 선거, 2028년 국회의원 선거를 모두 겨냥한 단계적 행보가 시작되었다는 식이다.
이러니 보수적 논자들의 호의적 평가에도 이면에선 ‘위기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금도 감세도 모두 본래는 보수 의제인데 더불어민주당에 빼앗기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는 거다. 조선일보 등의 보수언론은 정권과 여당에 상속세와 금융투자소득세 등의 개선 방안과 관련한 이슈파이팅에 나설 것을 거의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용산이 어느 날 갑자기 ‘종부세 폐지’를 꺼내든 데 이어 이번에 정책실장을 직접 내세워 상속세, 종부세, 금투세 등에 대한 명확한 감세 방향을 제시한 것에는 이러한 맥락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복현 원장의 앞뒤를 알 수 없는 폭주(?)에도, 의도가 작용했다면 이런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권 입장에서 중요한 건 실제 구상을 관철하는 것보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중도층 공략’에 맞불을 놓는 일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종부세 감면 드라이브에 혹할 중산층 일부에 대해 “민주당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들의 아군이다”라는 메시지를 확실히 주자는 거다. 될 리가 없는 주장을 마구 던지는 용산의 태도는 그렇게 봐야 이해가 된다.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 논의는 서로 핏대를 높이며 악만 쓰다가 끝날 가능성이 높다. 조금은 안심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불의의 일격’의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이 양보와 타협(?)을 통해 어느 수준에서든 서로 각자 겨냥한 지지층에 생색을 낼 수 있는 감세 패키지의 입법에 합의하는 거다. 그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만 이 가능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요인은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적 리스크와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여당 당권의 향방이다. 이 두 요소가 양대 정파의 적극적인 확장에 방해가 될 것이다. 오리지널 진보 세력(그런 게 있다면…) 입장에선 아이러니고, 조금은 다행스러운 일이면서, 또한 서글픈 일이다. 당분간, 아니 상당 기간 동안 이런 소모적이면서도 허망한 정치에 익숙해져야 한다. 뭐 어쩌겠는가. 이제와 누구를 탓하겠는가.
- 덧붙이는 말
-
김민하는 정치·사회 평론가, 칼럼니스트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진보정치가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했으나 무엇이 잘못됐는지 기대만큼 잘되지 않았다. 지은 책으로는 『저쪽이 싫어서 투표하는 민주주의』, 『냉소 사회』, 『레닌을 사랑한 오타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