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란툴라 성운(별이 형성되는 영역 )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 출처: NASA, ESA, CSA, STScI, Webb ERO 제작팀, CC BY-SA
우리의 우주는 137억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왔기에 매우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러 실험 결과에 따르면, 우주는 마치 절벽 끝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단 하나의 근본적인 입자, 바로 힉스 보손(Higgs boson)의 불안정성에 있다.
최근 국제 물리학 저널(Physics Letters B)에 게재가 승인된 연구에서 나와 동료들은, 원시 블랙홀(light primordial black holes)이라는 천체를 포함하는 초기 우주 모델들이 옳지 않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였다. 만약 이러한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힉스 보손이 이미 우주를 붕괴시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힉스 보손과 우주의 법칙
힉스 보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입자의 질량과 상호작용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입자의 질량은 힉스 장(Higgs field)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며, 힉스 보손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곧 힉스 장이 실재함을 의미한다.
힉스 장을 마치 고요한 물이 가득 찬 욕조처럼 상상할 수 있다. 이 장은 우주 전체에 걸쳐 동일한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덕분에 우리는 우주의 모든 곳에서 같은 물리 법칙을 관측할 수 있다. 즉, 수천 년 동안 우리가 같은 물리학 법칙을 사용하여 우주를 설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힉스 장의 균일성 덕분이다.
그러나 힉스 장은 최저 에너지 상태(진공)에서 안정적으로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말은 특정한 조건에서 힉스 장이 더 낮은 에너지 상태로 변화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만약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물리 법칙 자체가 급격히 변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상전이라고 불리며, 물이 끓어 기체로 변할 때 기포가 생성되는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힉스 장에서 상전이가 일어나면, 우주 공간 속에 완전히 다른 물리 법칙을 가진 저에너지 거품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거품 속에서는 전자의 질량이 급격히 변하며, 다른 입자들과의 상호작용도 달라진다.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 역시 붕괴할 수 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다면, 이를 경험하는 존재는 더 이상 이 변화를 관측할 수도, 보고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주는 메타안정 상태에 있다
CERN의 대형 강입자 충돌기(LHC, Large Hadron Collider)에서 측정한 입자 질량에 따르면, 힉스 장에서 이런 상전이가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 과정이 일어나려면 수천 조 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자물리학 연구자들은 보통 “우주는 불안정한 것이 아니라 메타안정(meta-stable) 상태에 있다”고 표현한다. 즉, 언젠가 붕괴할 가능성은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의미다.
힉스 장이 거품을 형성하는 조건
힉스 장이 거품을 형성하려면 적절한 조건이 필요하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힉스 장의 에너지는 항상 미세하게 요동친다. 따라서 확률적으로 (극히 드문 경우지만)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거품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러나 외부 에너지원이 존재할 경우, 거품 형성 확률은 급격히 증가한다. 강한 중력장이나 고온의 플라스마가 존재하면, 힉스 장은 이 에너지를 빌려 거품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현재의 우주 환경에서는 힉스 장이 많은 거품을 만들 이유가 없지만, 초기 우주의 극단적인 환경에서는 이런 거품 형성이 촉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주가 극도로 뜨거웠던 초기에는 높은 온도가 힉스를 안정화하는 효과도 있었다. 즉, 뜨거운 환경이 힉스 장의 양자적 성질을 변화시켜 상전이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 주었다.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
원시 블랙홀이 없을 때(위)와 있을 때(아래) 우주의 형성 과정. 출처: ESA, CC BY-NC-SA
원시 블랙홀과 힉스 붕괴
우리의 연구에서는 특정한 열원이 계속해서 힉스 장의 거품 형성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였다. 그것은 바로 원시 블랙홀이다.
원시 블랙홀은 초기 우주에서 공간의 밀도가 국소적으로 너무 높아 중력 붕괴가 일어나면서 형성된 블랙홀이다. 일반적인 블랙홀이 별의 붕괴로 형성되는 것과 달리, 원시 블랙홀은 매우 작을 수 있으며, 심지어 질량이 1g 정도밖에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은 이론적 모델들은 빅뱅 직후 급팽창 과정에서 이러한 원시 블랙홀이 생성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데는 큰 걸림돌이 있다.
1970년대에 스티븐 호킹은 양자역학의 효과로 인해 블랙홀이 호킹 복사를 통해 서서히 증발한다고 밝혔다. 그는 블랙홀이 온도를 지닌 열원처럼 작용하며, 그 온도는 블랙홀의 질량에 반비례한다고 설명했다. 즉, 질량이 작은 블랙홀일수록 더 뜨겁고 빠르게 증발한다는 것이다.
특히, 초기 우주에서 형성된 원시 블랙홀이 질량이 수천 조 g(달의 질량보다 100억 배 작음) 이하라면, 이들은 현재까지 남아 있지 않고 모두 증발했을 것이다.
이러한 원시 블랙홀이 힉스 장과 함께 존재했다면, 마치 탄산음료 속 불순물처럼 작용하여 힉스 장이 거품을 형성하도록 촉진했을 것이다. 블랙홀의 중력과 호킹 복사가 주변 환경의 온도를 높이며, 이 과정에서 힉스 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곧 원시 블랙홀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원시 블랙홀의 존재를 예측하는 우주론적 시나리오는 대부분 배제되어야 한다.
새로운 물리학의 가능성
물론, 고대의 복사선이나 중력파에서 원시 블랙홀의 존재 증거가 발견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약 원시 블랙홀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힉스 장이 이들에 의해 붕괴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새로운 물리 이론이 필요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입자나 새로운 힘이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가장 작은 규모에서부터 가장 큰 규모까지, 우리는 여전히 우주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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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시앙 외르티에(Lucien Heurtier)는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이론 입자물리 및 우주론 연구 그룹에서 일하고 있다. 천체입자물리와 초기 우주 이론을 연구하며 암흑물질의 본질을 탐구하고, 원시 우주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 모델을 연구한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