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 ⟪학교는 그들을 돕지 못했다⟫, 교육공동체벗, 2026
⟪학교는 그들을 돕지 못했다⟫의 저자는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했던 15년차 중등교사다. 이 책은 저자가 학교 현장에서 마주쳤던 많은 학교폭력 사례를 톺아내면서 써 내려간 반성문으로 시작한다. 그에 따르면 학교와 교실은 “개방된 곳이지만 비밀스러운 곳/폐쇄된 곳”이기도 한데, “교사가 알지 못하는 그늘”은 언제나 존재한다. 저자는 그 그늘에서 학생들이 겪는 고통과 괴로움을 때로는 보지 못했고, 목격했더라도 침묵하곤 했으며, 다른 사람의 말 뒤에 숨거나 애써 모른 척하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때로는 다른 교사들과 대립하거나 불편해질 용기가 없어 입을 다물기도 했다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물론 저자는 늘 그렇게 ‘비겁’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 사안을 마주했을 때 적극적으로 해결을 위해 나서기도 했는데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 늘 고민이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 결과가 꼭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폭력법’에 따라 처리하든, 아니면 교사의 판단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하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쾌도난마 같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수많은 번민과 불면의 밤을 보냈을 저자의 맘고생거리들을 갈피마다 펼쳐 보인다.
이 책은 ‘학교폭력법’이 학교폭력을 해결, 일소하기보다는 학교폭력 사안을 효율적이고도 비교육적인 방식으로 학교 공동체로부터 격리시킨 채 처리하도록 고안된 매뉴얼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는 매뉴얼을 통해 평화를 가르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권력관계 안에서의 처세술이다”(31쪽)라는 말처럼 ‘학교폭력법’은 학폭 해결에 이르지 못하고 환부를 도려내는 방식으로 해결했다고 치거나, 해결되었다고 ‘간주’할 뿐이며 평화는 가르쳐지지 않고 그저 도래했다고 간주한다. 권력관계는 교사-학생 사이에도 있고 학생-학생 사이에도 있는데 “교실 안의 계급을 깨지 않고 학교폭력을 없앨 수는 없다.”(51쪽) 이 권력자들의 학교폭력은 신고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해 학생도 가해 학생도 괴롭힘을 인정하지 않으니 신고되지도 않고 사건화되지도 않는다. 이 명백하게 존재하지만 집계되지 않는 폭력에 대해 ‘학교폭력법’은 눈을 감는다.
이렇게 요약하니 서슬 퍼런 학교폭력법 비판서 같지만, 이 책은 ‘학교폭력법’ 무용론은 아니다. “법과 제도는 분명 필요하다. 법과 제도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중요한 점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법을 만들고 나면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이 손을 뗀다.”(133쪽) ‘학교폭력법’이라는 ‘안경’으로는 보이지 않는 지점, 그것으로는 판별할 수 없는 지점들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그 법으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살핀다.
“이거 학폭이에요?” “Yes!”
학교폭력 담당 교사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이거 학폭이에요?”
학생, 보호자, 교사 모두한테서 자주 들었던 질문이다. 사실 대부분 상황에서 질문에 대한 답은 “yes”다….(71~72쪽)
일반적으로 학교폭력이라 하면 (드라마 <더 글로리>나 <참교육>에서 봤던 것 같은) 상해, 폭행, 감금, 협박 등의 무서운 범죄들을 상상하지만 실제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러한 ‘하드코어’와는 거리가 있다. 경미한 여러 사건도 학교폭력으로 신고된다. 그럴 때도 어김없이 질문은 따라 붙는다. “이거 학폭이에요?”
예를 보자. 친구가 SNS에 자신의 사진을 올리고 비꼬는 말을 한다, 화장실에서 볼 때마다 자기 친구들하고 귓속말을 한다, 원래 같이 놀던 애들인데 요즘 자신만 빼고 자기네들끼리만 모이고 논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 어깨동무를 너무 세게 한다 등등 같은 예다. 저자는 이 사례가 사이버폭력, 따돌림, 폭행 등 ‘학교폭력법’이 규정하고 있는 학교폭력 사안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이 사안들이 ‘학교폭력법’에 따라 신고되었다면 하루 만에 해결되지 않는다. 절차를 따르다 보면 최소 2주에서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화해와 피해 회복은커녕 다툼과 갈등은 증폭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 역시 “저도 신고할게요”로 나아간다. 가해/피해 학생들의 보호자들 역시 험악하게 대응한다. 하지만 신고 접수를 하지 않고 화해와 회복을 꾀하려 하다 보면 사건을 뭉개고 은폐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가장 손쉬운 해결 방법은 교육청 매뉴얼대로 사건을 접수하고 절차에 따라 진행하는 것이다. “효율”의 측면에서 설계된 법적, 제도적 처리인 셈인데 이게 맞는 방법일까?
학교가 돕지 못하는 그들
학교폭력으로 신고되는 대부분 사건이 이같이 경미한 것들이라 해서 심각한 학교폭력이 없다거나 가해/피해가 명백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례들은 학교폭력법의 매뉴얼대로 처리되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떤가? 이 법이 돕고 있는 사람은 누구이고, 돕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학폭 담당’은 교사 모두가 기피하는 업무인데 ‘학교 안 작은 경찰서’답게 사건 접수, 조사, 최종 징계, 피해자 지원 등 모든 업무를 학교 구성원들과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한다. 그런데 누구나 맡기 싫어하기 때문에 기간제 교사나 저연차 교사들이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교무실에도 계급이 있고 힘을 가진 자가 좋은 것을 누린다(학폭 업무를 맡는 조건으로 채용되는 젊은 남자 기간제 교사도 있는 실정이라 한다). 전문가도 아닌 이들이 전문가인 척하면서 사건을 조사, 분석, 설득하면서 학생, 학부모, 교사한테서 오는 항의와 비난에 대응해야 한다.
‘담임 교사’는 어떤가? 학폭 사안에서 담임 교사는 한발 물러나 있다. 학폭 사안과 관련한 모든 진행 절차에 담임 교사는 참여하지 않는다. 학교폭력법은 이를 ‘배려 혹은 효율’이라 부르는데 학폭 사안을 업무로 보는 한에서 이는 맞다. 담임 교사 역시 막대한 업무에 시달리는 ‘항상 바쁜’ 교사인데 어찌 보면 학폭 사안까지 떠맡을 수는 없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쭉 이 사안과 관련해 배제된 채로 있다가 학폭 사안이 마무리되고 나면 담임 교사는 가해/피해 학생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친다. 학급 분위기도 좋지는 않다.
학교폭력 사건이 접수되면 가해/피해 학생은 모두 정해진 매뉴얼대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진술하고 또 진술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담임 교사, 학년부장 교사, 학생부장 교사, 학교폭력 책임 교사, 전담 조사관, 교육청 심의위원 등을 만나야 하고, 징계를 받은 가해 학생은 외부 기관의 교육 담당자를 추가로 만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은 혼자다. 저자는 피해 학생도 가해 학생도 외롭고 두려운 절차를 짧게는 몇 주에서 길게는 몇 개월에 걸쳐 혼자 감당해야 하는데, 이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어떤 배움이 있겠는지 되묻는다.
학부모는 어떤가? 가해/피해 학생의 보호자들은 학폭 사건의 진행과 처리 매뉴얼에 대해 잘 모른다. 그러나 제대로 된 안내는 어디에도 없다. 보호자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불이익을 당할 것만을 걱정한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용서를 말하지 않고, 가해 학생의 부모는 반성과 성찰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아이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징계 결과가 기록될지 안 될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그러니 가해 학생과 보호자는 깨끗한 생기부를 지키기 위해 변호사를 찾고 재판까지 불사해 종국에는 가해 사실도 없게 만든다. 피해 학생과 부모도 변호사를 찾지 않을 수 없다.
‘학교폭력’. 이 네 글자를 포털에 치면 학교폭력 긴급 상담 전화번호가 제일 위에 뜨고 그 아래는 주르륵 모두 학교폭력 전담 법무법인, 변호사들의 광고가 뜬다. 광고 문구가 아주 절창이다. “학폭위/생기부까지 한 번에 해결”, “생활기록부 기재로 남는 학교폭력 문제”, “수사기관을 납득시킬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진술 방향을 알려드립니다.”
이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책 제목, ⟪학교는 그들을 돕지 못했다⟫에서 가리키는 학교가 돕지 못한 ‘그들’은 피해 학생만이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피해 학생만이 아니라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통해 화해를 이루고 다시 학교생활을 해나가야 할 가해 학생, 그리고 격무에 시달리면서 점점 행정 처리에만 능숙해지는 교육 기술자가 되어 가는 교사들, 그리고 학폭 사건에서 배제된 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전투적으로 법률 시장을 찾는 학부모들이 모두 ‘그들’에 해당한다. ‘학교폭력법’은 학교가 품을 수 없는 환부를 찾아내 도려내어 퇴학과 강제 전학시킴으로써 해결했다고 자위하게 만드는 일종의 당의정 같은 것일 뿐이다.
복수를 넘어서 공동체적 해결로
‘학교폭력법’으로 학교폭력은 해결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학폭 사건이 신고되고 일정한 과정을 거쳐 결론이 났다고 해서 화해와 상처 회복, 적응과 반성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저 정해진 프로세스대로 사건은 처리되고 해결되었다고 간주될 뿐이다. 그리고 다시 도돌이표다. “선생님 이거 학폭이예요?”
저자의 말처럼 “가해자인 학생은 언제까지나 가해자고 피해자인 학생은 언제까지나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한 학생이 동시에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하고, 한때 가해자 혹은 피해자였다가 어느 때에는 피해자 혹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불분명할 때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는 “학교폭력 가해와 피해로 명명할 수 없는 것들”이겠다. 국가와 법률의 언어, 형벌과 단죄의 언어 세계와 달리 우리의 일상 세계를 가해와 피해를 칼로 내려치듯 명확하게 나누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또 그렇게 한다 해서 해결에 이르기보다는 상황만 더 악화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학폭 사건 주변에는 복수의 마음이 들끓는다. ‘회복이라는 단어는 피해자에게만 쓸 수 있는 단어이지, 가해자가 일상을 회복한다는 것은 언감생심 그래서는 안 될 일이다. 가해자는 영원히 괴로워야 한다. 가해자는 철저히 망가지고 아파야 한다. 적어도 피해자가 아팠던 만큼.’ 이게 요즘의 정서인 것 같다.”(177쪽) 그래서 가해자가 되면 안 되고 꼭 피해자가 되어야 한다. 맞신고와 맞고소로 맞선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애매한 경우도 허다하지만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꼭 피해자여야만 한다.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폭력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저 상대를 도려내어 이 근방에 얼씬도 못 하게 조리돌림을 시켜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에 ‘용서’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단어다. “용서라니, 용서라니.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가해자를 어떻게 용서한단 말인가, 설사 반성과 사과를 한다고 해도 용서할 수 없다고 외칠지 모른다.”(178쪽)
하지만 저자는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방법을 통해 함께 공동체적 해결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어떤 방법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놀이와 감정 표현 등을 통한 신뢰 구축, 깊은 상담, 조정의 시간, 문제 해결 서클을 여러 차례 진행하는 등의 어떤 교육방법론인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용서는 이 모든 불타는 감정들을 씻어 주는 해독제가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해결의 순환이 학교를 더욱 공동체로 키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정답은 없다. 길을 찾는 시간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쉬운 길은 아니고 어려운 것이 맞다.
한창 드라마 <참교육>이 온갖 이야기를 세간에 회자시킨 다음에 이 책이 출간됐다. 좀 더 빨리 나왔더라면 이 책이 ‘담론적 개입’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참교육>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지나간 시점에서 차분히 교육 현장을 들여다볼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그렇게 이 책을 통해 학교 현장을 들여다보니 그 모습이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다. 상대를 절멸시키겠다는 태도와 언어가 살벌하다. 갈등과 대립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시간을 거쳐 용서와 화해, 회복과 성찰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우리 스스로 달라지지 않는다면,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렇게 달라진 서로를 힘껏 얼싸안을 수 없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변한다는 것을,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학생의 의젓하고도 꾸밈없는 고백, 반성, 용서, 화해 같은 일이 우리 주변에도 동화처럼 가득하면 좋겠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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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돌규는 노동자역사 한내의 운영위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