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로마에서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 이탈리아 총리와 회담했다. 출처: 아르헨티나 공화국 대통령실 페이스북
자칭 ‘아나코-자본주의자’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가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 된 지 1년이 지났다. 그는 연간 인플레이션이 160%에 달하고, 인구 10명 중 4명이 빈곤선 아래에 있으며, 무역 적자가 430억 달러에 달하는 상황에서 권력을 잡았다. 여기에 더해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IMF)에 450억 달러라는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었고, 이 중 106억 달러는 IMF와 민간 채권자에게 상환해야 할 시점이었다.
이전에 집권했던 페론주의 정부는 경제 성장, 안정된 통화, 낮은 인플레이션을 이루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또한 빈곤을 종식시키고 불평등을 줄이는 데도 실패했다. 아르헨티나의 공식 빈곤율은 2023년 상반기에 40%로 상승했다. 세계 불평등 데이터베이스(World Inequality Database)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상위 1%가 전체 순 개인 자산의 26%를, 상위 10%가 59%를 차지한 반면, 하위 50%는 겨우 5%만 보유하고 있었다. 소득 측면에서도 상위 1%는 15%, 상위 10%는 47%, 하위 50%는 14%를 차지했다.
밀레이의 계획은 그의 머릿속에서만큼은 명확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문을 해체하고, 대기업과 외국 투자자들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시장 규제를 완화하며, 통화를 평가절하한 뒤 완전한 달러화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제한 없는 자본주의가 지속적인 경제 위기를 해결할 것이라 믿었다. 이는 이전 정부가 채택했던 개혁주의적이고 반(半)개입주의적인 케인스주의 정책과는 반대로 자유시장 정책을 실험하는 사례였다.
밀레이는 집권 이후 일련의 긴축 조치를 단행했다. 에너지와 교통 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수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했으며, 공공 인프라 프로젝트를 동결했다. 또한 임금과 연금을 인플레이션보다 낮은 수준으로 동결시켰다.
그 결과는 가혹했다. 경제는 깊은 침체에 빠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3.5% 수축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G20 주요 경제국 중 가장 큰 경제 축소폭이며, 갱단에 시달리는 아이티와 내전으로 황폐화된 남수단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다.
밀레이는 생산과 소비를 의도적으로 위축시켜 자본의 비용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경제의 초인플레이션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공공 부문 지출과 일자리, 빈곤층을 위한 보조금을 삭감함으로써 기업의 착취율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아르헨티나 자본의 수익성을 끌어올려 투자를 유도하려 한다.
집권 1년이 지난 현재,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소비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게 되면서 월간 인플레이션은 급격히 하락했다.
그러나 밀레이가 집권했던 1년 전과 비교하면 물가는 여전히 190% 이상 상승한 상태다.
인플레이션 속도가 둔화되면서 아르헨티나 페소의 가치가 강세를 보였고, 차입 비용도 줄어들었다. 또한 밀레이는 세금 사면 정책을 통해 부유한 아르헨티나인들이 해외 은행 계좌나 집 안에 숨겨 두었던 미국 달러 자산을 신고하도록 유도했다. 이로 인해 190억 달러가 아르헨티나 은행으로 유입되어 외환 보유고가 증가했다.
밀레이는 페소에 대한 환율 통제를 해제하려 하지만, 현재 이를 시행할 경우 과대평가된 페소가 폭락해 IMF에 대한 상환이 어려워질 수 있다. 다행히도 밀레이의 정책은 많은 이들에게 비판받아 온 IMF의 만족을 이끌어냈다. IMF는 밀레이의 정책이 “예상보다 빠르게 거시경제 안정을 회복시키고, 프로그램을 확실히 정상 궤도로 돌려놓았다”며 아르헨티나 당국의 "결단력 있는 안정화 계획 실행"에 감사를 표했다. 이에 따라 부유층은 여전히 세금을 부담하지 않고 있으며, 밀레이의 긴축 정책은 IMF와 아르헨티나 대기업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치경제센터(CEPA)와 예산 및 공공재정관리협회(ASAP)의 계산에 따르면, 공공 지출은 인플레이션을 고려한 실질 기준으로 전년 대비 30% 감소했다.
밀레이는 13개의 부처를 폐지하고 연방 공무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3만 명의 공무원을 해고했다. 그는 공공사업을 중단했으며, 교육, 보건, 과학 연구, 연금에 배정된 예산도 대폭 삭감했다. 특히 예산 삭감은 인프라(-74%), 교육(-52%), 사회 개발(-60%), 보건(-28%), 주(州)에 대한 연방 지원(-68%) 부문에 큰 타격을 주었다.
아르헨티나 건설협회(CAC)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건설업체들에게 약 4000억 페소(약 4억 달러)를 지급하지 못하고 있으며, 밀레이 집권 이후 건설 부문에서 20만 명이 실직했다. 국가 연금은 동결되었고, 현재 최저 소득층 연금 수급자는 월 320달러 수준의 연금을 받고 있다. 이는 가구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900달러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국립대학평의회에 따르면, 교직원과 비교직원의 70%가 빈곤선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밀레이는 교사들의 낮은 임금을 보조하던 전국교사장려기금(National Fund for Teacher Incentives)을 폐지했는데, 이 기금은 연방정부에서 주(州)로 교육 목적의 예산을 이전하던 자금의 약 80%를 차지했다. 그는 또한 학교 시설 업그레이드를 중단하고 학생 장학금 프로그램을 69% 삭감했다. 대학 예산 역시 동결되면서 많은 캠퍼스가 난방과 전기를 감당할 자원을 잃었고, 대학 시스템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밀레이는 국가과학기술연구위원회(CONICET) 연구원과 지원 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했으며, 박사 및 박사후 과정 장학금 수를 대폭 줄였다. CONICET의 행정 직원 15%를 해고하고, 국가연구진흥청(National Agency for the Promotion of Research)의 예산을 동결했으며, 산업기술연구소(INTI)와 국가원자력위원회(CNEA) 같은 주요 기관들의 프로젝트도 중단했다. 이로 인해 과학 및 연구직 지원자가 30% 감소했다. 밀레이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68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은 “아르헨티나의 과학기술 시스템이 위험한 절벽으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빈곤 수준은 크게 악화되었다.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은 약 42%에서 53%로 상승하며, 추가로 340만 명이 빈곤층에 편입되었다. 14세 미만 아동의 3분의 2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 밀레이는 사회단체를 통해 관리되던 보조금도 폐지했다. 중단된 지원에는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던 무료 급식소 지원도 포함된다. 근로자 협동조합을 통해 운영되던 고용 프로그램도 취소되었으며, 많은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가족을 제대로 부양할 만큼의 음식조차 살 수 없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전기, 가스, 수도, 대중교통에 대한 보조금이 삭감되었다. 2023년 12월, 중산층 가정은 전기, 가스, 수도, 대중교통에 월 약 30,105페소(약 30달러)를 지출했지만, 2024년 9월에는 이 비용이 141,543페소(약 142달러)로 급등했다.
평균적인 아르헨티나인의 생활 수준에 가해진 이러한 큰 타격과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상승은 소비의 붕괴로 이어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도시권(AMBA)에서는 전년 대비 소비가 12.9% 감소했으며, 2024년 4월과 비교해도 2.3% 줄어들었다. 기타 지역에서는 전년 대비 소비가 15.5% 감소했고, 2024년 4월 대비로도 3.6% 줄어들었다.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상위 10% 소득층은 최하위 10% 소득층보다 1년 전 19배에서 현재 23배 더 많은 소득을 벌고 있다. 최하위 10% 소득층의 실질 소득은 전년 대비 33.5% 감소한 반면, 상위 10%는 20.2% 감소에 그쳤다. 이로 인해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 계수는 0.4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평균적인 생활 수준에 대한 혹독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밀레이는 여전히 일정 수준의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인플레이션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경제 성장을 회복시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안정적인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당연히 밀레이 정부에 대한 지지는 주로 부유한 아르헨티나인들로부터 나오지만, 그의 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최빈곤층조차 이전의 페론주의 정부보다 그에 대한 지지를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
공공 지출을 대폭 줄이고 정부 부처를 절반으로 축소하는 공격적인 정책을 통해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말 2조 페소(약 20억 달러)의 재정 적자에서 올해 10월에는 7500억 페소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16년 만에 처음으로 달성된 재정 흑자다.
밀레이의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까? 그의 정책은 한 나라에서 케인스주의적 거시경제 관리와 비교해 ‘자유시장’ 정책의 성공 여부를 실험하는 사례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제국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취약한 자본주의 경제다. 과거에 막대한 무역 적자를 기록해 왔던 이 나라에서 밀레이가 페소를 평가절하하면서 지난 1년 동안 수출은 30% 증가하며 회복되었다. 동시에 긴축 정책은 국내 수입을 크게 억눌렀다. 부유층에 대한 세금 면제는 페론주의 정부 마지막 해에 발생했던 대규모 자본 유출 이후 소규모지만 순자본 유입을 이끌어냈다.
외환 보유고는 약간 개선되었지만, 여전히 IMF를 비롯한 채권단에 대한 향후 부채 상환을 충당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아르헨티나는 2025년에 약 90억 달러의 대외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IMF가 관대하게 나설 가능성도 있다.
당면한 문제는 페소의 가치가 여전히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페소를 최소 30% 더 평가절하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인플레이션이 다시 급등할 수밖에 없다.
밀레이의 아나코-자본주의 계획은 사실상 ‘창조적 파괴’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1930년대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요제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자본주의에서 새로운 확장을 위한 조건을 마련하려면 침체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하면서 사용한 용어다. 불필요한 지출, 비생산적인 노동자, 그리고 약한 기업들을 ‘정리’함으로써 경제를 더 ‘효율적이고 건강한’ 상태로 만든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금까지 밀레이의 ‘창조적 파괴’는 파괴만을 이루어냈을 뿐이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창조적인 측면은 자본 수익성의 급격한 상승을 필요로 하며, 이는 투자, 고용, 그리고 소득 증가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 침체와 아르헨티나 자본주의 부문의 심각한 약화 상태를 고려할 때, 이러한 전환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더 나아가, 아르헨티나의 경기 침체가 너무 깊어져 이번 10년 동안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질 가능성은 없을까?
아르헨티나는 2000년대 초와 같은 원자재 가격 급등이 일어나면 현재의 혼란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최대 대두유와 대두박 수출국이며, 옥수수 수출에서는 2위, 대두 자체 수출에서는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대두와 옥수수 가격이 크게 상승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리튬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어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핵심 플레이어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리튬 가격이 급락하면서 그 잠재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상당한 셰일가스 매장량도 보유하고 있다. 바카 무에르타(Vaca Muerta) 유전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비전통적 탄화수소 자원 중 하나로, 약 160억 배럴의 석유와 308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대부분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수출이 관건이지만, 이는 페소의 추가 평가절하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는 국내적으로 더 강력한 긴축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을 다시 가속화시킬 위험이 있다. 더 큰 우려는 차기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모든 미국 수입품에 최소 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이는 아르헨티나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로 밀레이가 마라라고(Mar-a-Lago)에서 트럼프와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시간을 쏟고 있는 것도 놀랍지 않다.
[출처] Milei’s ‘creative destruction’ – Michael Roberts Blog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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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